기억의 샤워꼭지

by 장원석

샤워를 하는데 있어 온수와 냉수 사이를 적절히 맞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미온수의 적당한 온도로 샤워기 꼭지를 좌우로 조절하다보면 완벽하다 싶은 그 날의 물온도가 맞춰진다. 요즘처럼 더운날에는 좀처럼 샤워기 꼭지가 좌측으로 돌아갈 일이 없었다. 그런데 어제 나의 온도가 차가워져 있었나. 뜨거운 물이 내 어깨부터 시작되는 기분이 좋아 '오늘은 온수 목욕이다'를 속으로 외쳤을때 습기 가득 보이지 않는 거울에서 고등학교 3학년 19살의 나의 모습이 기억났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나는 좁은 바늘구멍에 실을 꿰듯 어렵사리 대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방과 후 학원에 다니기로 했다. 학원의 큰 강의실에서 약 100명 정도가 모여 앉아 나름대로 들의 목표를 가지고 연필과 펜들을 손에 쥔채 꿈을 펼쳤다. 사회지리 수업이었다. 안경 쓴 사각턱의 선생님이 칠판 앞에 서 있었는데 그날의 주제는 몽고반점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몽골인의 특징인 몽고반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소수만 중국 한족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순간 사각턱의 네모난 안경을 쓴 선생님과 내가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의 흔들리는 동공이 곧 나에게 말을 걸 것 같았다. "여기 약 100명 학생이 있지요. 저기 보이는 주황색 옷 입은 학생. 저 사람이 100분의 1입니다. 너 짜장 좋아하지?" 99명의 눈초리가 나를 향했다. 내가 말했다. "짬뽕 좋아하는데요"

남들과 다르다는 점을 콕 찝어준 그 사각 선생님이 기억에 남았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그다지 칭찬이라고 할 수 없는 중국사람을 닮았다는 말이, 99명의 몽골인들과 다르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었나보다.

온수의 온도가 너무 뜨거워 잠깐 샤워꼭지를 우측으로 돌렸다. 습기가 아주 조금 사라져 거울에 반사된 빛 안에는 반장선거를 앞두고 있던 초등학교 6학년인 내가 서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 한 후부터 특출나게 공부를 잘했던 것도 아니였다. 그렇다고 어떤 특기생이나 학교에서 상을 탄 적도 없는 학교 안에서 무명(無名)인 내가 6학년에 들어와 반장선거를 나간다는 말은 집 안에서나 학교 안에서도 적지 않은 충격선포 였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에 학생회나 부녀회에 참가한 적이 없었고, 일례로 4학년 담임선생님은 가정통신문이나 학교 숙제를 단 한번도 해간 적이 없던 나를 보며 학기를 마치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고 했다. “어머님이시죠. 죄송하지만. 편부가정인 줄 알았어요.” 이 얼마나 실례되는 말인가. 하지만 엄마는 오히려 죄송하다고 선생님에게 고개를 숙이며 연신히 죄진 듯 답했다.

학교를 주제로 한 드라마나 영화에 나올 법한 학생13의 역할인 나는 그 때 왜 반장선거를 나가겠다고 한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도전은 모두가 예상하듯 참패의 길을 맞이했다. 13살의 내가 내린 결심은 집 안에서 집 밖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도저히 이해가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20년이 넘은 지금 샤워기의 꼭지가 오른쪽으로 돌아 갈 때 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의 모습이 기억이 난 것일까.

내가 남들과는 다르다고 했던 사회지리의 선생님의 말은 ‘나’를 알아 주었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면,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반장선거를 나가겠다는 오로지 ‘나’의 선택 또한 내가 주체가 되었던 경험인 셈이었다. 오늘의 최적의 온도가 약간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것처럼, 샤워기의 물의 온도를 맞추는 행위 자체가 오로지 ‘나’를 위한 행위인 것이었다.

나를 위한 행위를 하며 비로소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선택의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아무도 이해할 수 없더라도 나를 위한 선택을 더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지금의 샤워꼭지를 오른쪽 왼쪽으로 옮기 듯 나를 위한 최적의 온도를 잘 찾을 수 있었으면. 습기 찬 거울 밖의 내가 꼭 그렇게 살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샤워 꼭지를 아래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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