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어나는 데는 적정한 온기가 필요하다

by 장원석

꽃이 피어나기 위해서는 저마다의 적정한 온도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이 ‘적산온도’를 채우기 위해 꽃은 있는 힘껏 몸을 웅크려 온기를 머물게 한다는 것이다. 매화는 꽃을 피우기 위해 700도가 넘는 온기를 품어야 하며, 진달래는 94.5도, 개나리는 82.7도만큼의 온기를 품어야 한다. 꽃이 개화하기 위해 고뇌하며 담아내는 기다림의 시간을 우리는 오롯이 바라본 적이 있을까. 과거에 나는 어느 사막을 횡단하며 온기를 품은 꽃을 마주한 적이 있다. 피어남의 아름다움을 목도했던 때 그때 난 딱 스무 살 만큼의 온기를 지니고 있었다.

첫 해외여행으로 배낭을 등에 맨 채 홀로 인도로 떠났다. 공항을 거쳐 기차역에 내려 제일 먼저 마주한 것은 매연 가득한 뿌연 스모그 안개였다. 첫 해외여행의 기대감이 흐릿해지던 찰나. 천둥소리와 같은 무질서한 클락션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처음 느껴보는 인도의 뜨거운 열기와 낯선 이방인에 대한 불친절함에 몸과 마음은 빠르게 지쳐갔다. 스무 살 나의 호기로운 선택에 딱 그만큼 지니고 있던 온기가 빠르게 식었다. 고통과 아픔이 몰려왔고 무엇보다 혼자라는 외로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집으로 가야 해.’ 도착 이틀 만에 바나나 하나를 먹고 난 뒤였다. 빼곡히 쓰여 있던 일정표를 모두 찢어버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 했다. 유일한 동반자이자 조언자인 ‘론리플래닛’이라는 책에 나온 대로 일명 ‘전화방’에 들러 엄마의 목소리를 꼭 들어야 했다. “뚜, 뚜.” 몇 번의 신호음, 연결음이 들리고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들 괜찮아?” 여행 한지 고작 이틀 밖에 안 되었을 때였지만, 엄마의 목소리는 2년 넘게 듣지 못한 것처럼 가슴속에 사 묻혔다. 목이 턱 하고 막혀 ‘나 안 괜찮고 집에 갈래’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울먹임이 차올라 내가 말했다. “어. 괜찮아. 걱정하지 마.” 엄마에게 그 말을 꺼냈을 때 사라졌던 온기가 1도 정도 차올랐다.

1도만큼의 용기로 나는 두 번째 도시를 가리라 마음먹었다. 두 번째 도시는 사막이 가득 한 곳으로 이곳의 백미는 낙타를 타고 사막을 횡단하여 중간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래 이것만 하고 집에 가는 거야.” 스스로 최후통첩을 한 뒤 나는 사막횡단 프로그램을 신청하였다. 프로그램의 시작은 차를 타고 사막의 입구까지 이동하는 것부터였다. 나를 포함한 5명 정도의 외국인들이 함께 지프차에 탑승했다. 얼핏 봐도 운전석을 포함하여 5명이 딱 들어갈 정도의 지프차였으나 그곳에는 8명이 모여 있었다. 뒤이어 가이드가 인도말로 무언가를 말하더니 뒷문 쪽 범퍼에 인도인 3명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리고 나서야 차가 출발했다.

1도의 용기가 다시 줄어드려는 순간, 요란한 엔진소리와 울퉁불퉁한 노면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안이 조금 시끄러워졌다. 조수석에 탑승한 외국인과 가이드가 대화를 주고받았다. 차 안이 시끄러워 잘 안 들렸지만 추측하건대 트렁크에 매달려 가는 인도인 3명에 대한 이야기 같았다. 이내 차를 멈춘 뒤 인도인 가이드가 뒤를 돌아 우리에게 합장을 하고는 그 큰 두 손을 흔들며 이야기했다. “사막에서 일하는 아이들의 일당이 얼마인지 알아? 200루피야. 이해해 줘.” 당시 200 루피면 한국 돈으로 3400원 정도였다. 투어 비용으로 지불한 돈이 2000루피 정도 되었으니까 10분의 1의 가격인 셈이었다. 몸을 돌려 뒷 창문을 쳐다보았는데 그때 사막의 모래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인도인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엄지를 들어 무언의 손짓으로 괜찮은지 물어보자 그는 모래바람에 눈도 잘 뜨지 못한 채로 투박한 오른손의 엄지를 올렸다. 뒤이어 나는 그에게서 꽃이 피어나는 장면을 마주하였다. 진갈색 피부에서 아주 흰 꽃이 피어난 것이다. 그가 잇몸을 보이며 흰 건치로 만개한 웃음을 나에게 건네었을 때 나는 세상에 행복이 존재한다면 인도의 사막 위에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의 만개한 웃음을 보았을 때 나는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온기가 차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기차역을 내려 처음 마주한 스모그 안개, 낯선 이방인을 바라보는 시선들, 노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 그리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외로움. 바나나 한 송이, 엄마를 향한 그리움, 처음 겪는 모래바람, 이해할 수 없는 미소 그리고 피어난 흰 꽃과 함께. 점점 온기가 가득 차 내 마음 안에서도 마침내 꽃이 피어난 것이다. 나는 우리가 진정으로 피우고자 하는 꽃이 있다면 용기를 내보라고 권하고 싶다. 딱 1도만큼의 용기만 낼 수 있다면 마음안에서 꽃이 피어날 수 있는 온기는 모두 준비된 셈이니 말이다. 이틀 만에 끝날 것 같았던 스무 살의 첫 해외여행이 한 달이 넘어 두 달이 넘도록까지 이어진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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