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보은이 아줌마와 친해지게 된 것은 우리 시(市)에 생긴 경마장 때문이었다. 2년 전 서울 근교에 큰 경마장이 새로 만들어질 예정이라는 뉴스 앵커의 말에 엄마는 “걱정이다. 이제 대놓고 노름판을 짓겠다는 거지. 저거 지어지면 집 값 다 떨어지지. 안 봐도 비디오야.”라며 저녁 준비를 위해 대파를 썰던 칼을 내려놓으시며 혀를 끌끌 차셨다. 며칠 뒤 뉴스에 나온 서울 근교의 지역이 우리 집 근처라는 걸 알게 되셨을 때는 칼 대신 수화기를 들어 칼보다 더 날카롭고 예리한 목소리로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치맛바람을 휘날리며 온갖 학교 일을 도맡아 했던 철물점 남경이 아줌마를 필두로 하여 조직적인 시위가 결성되었다. 오전과 오후로 나뉜 2인 1조에 교대 근무까지 있는 나름 전문적인 시위에 주축 인물이 되었을 때, 엄마와 한 팀이 된 사람이 바로 보은이 아줌마였다. 엄마는 이틀에 한 번 시청 앞 넓은 은행나무 앞자리에서 나무 피켓에 ‘결사반대. 유흥 시설 웬 말이냐.’‘아이들 팔아 도박장 짓지 마라.’의 표어를 번갈아 가며 챙겨가고는 했다. 엄마가 피켓의 문구를 바꾸기 위해 빨간 페인트 통에 붓을 담그며 “피처럼 보여야 해.”라고 중얼거릴 때는 공포영화에 여주인공 같은 광기가 느껴졌는데, 영화 미저리의 주인공이 딱 저랬다.
일명 미저리 시절부터 2년에 걸친 투쟁을 마치고 아줌마와의 관계가 언니 동생으로, 그리고 윗집 아랫집 사이로 변한 건 경마장이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였다. 보은이 아줌마에게는 딸이 2명 있었는데, 첫째 보은이 누나와 둘째 서나였다. 피로 맺어진, 사실은 빨간 페인트로 이어진 보은이 아줌마와 엄마의 관계는 때로는 친구이자, 때로는 자매이기도 했으나 윗집과 아랫집으로 나누어진 두 아들과 두 딸을 키우는 엄마들이기도 했다. 어느 날 엄마가 섭섭한 말투로 보은이 누나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스무 살이 된 보은이 누나가 경마장 근처에 새로 생긴 간호조무사 학원을 등록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중학교 입학을 앞둔 내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랫집 보은이 누나는 벌써 간호사가 되기 위해 준비한다는 말에 알 수 없는 조급함과 부러움으로 목이 턱 막히기도 했다.
한편 엄마는 경마장 근처까지 꼭 간호사인지 조무사인지 때문에 그 위험한 곳까지 가야 하는지에 대해 보은이 아줌마에게 이야기하였으나, 보은이 아줌마의 “자식 고집을 어떻게 꺾어. 언니는 꺾을 수 있겠어요?”라는 말을 듣고는 침묵했다고 했다. 그때 어쩌면 엄마는 2년 동안 반대를 목놓아 함께 외치던 보은이 아줌마와의 추억이 깨져 버릴까 두려웠던 것이 아니었을까. 혹은 엄마는 침묵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가 반대했던 경마장 근처에 있는 학원을, 그것도 보은이 누나를 보내는지에 대한 배신감이 들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사실 따지고 들어가면 경마장에 일을 하러 보내는 것도 아니고, 그 근처에 학원을 보낸다는 건데 무슨 배신감이 들어요?라고 보은이 아줌마가 되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말할지 몰라 엄마는 그저 나를 붙잡고 서운한 말투로 보은이 누나가 간호조무사 학원에 등록했다는 말을 두 번, 세 번 되풀이했던 것은 아닐까. 그 순간 나는 피켓을 들고 뙤약볕이 내리쬐는 시청 앞에서 보은이 아줌마와 함께 결사반대를 목놓아 외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문득 겁이 났다.
보은이 아줌마의 둘째 딸 서나는 나와 동네에서 유일한 동갑내기 친구로, 통통한 살집에 거무티티한 피부가 영락없는 시골 소녀였으나 붙임성이 좋은 아이였다. 처음 본 나에게도 밝게 웃어주었는데 동네에서 인사성이 좋아 어딜 가도 환영받았다. 특히 집 앞 슈퍼 아줌마가 서나를 참 좋아했다. 내가 슈퍼에 들어갈 때면 무심히 앉아 파리채를 들고는 문을 여닫았을 때 침입한 벌레들을 향해 허공에 휙휙 파리채를 휘두르던 아줌마가 서나를 볼 때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나에게 다가갔다. 서나의 작은 얼굴을 쓰다듬거나 곱게 딴 머리를 만지며 “서나는 어찌 저렇게 싱글벙글할까. 웃는 모습이 참 이쁘다 이뻐.”라며 아빠의 심부름으로 초록색 병을 사러 온 서나에게 작은 콜라를 선물처럼 주고는 했다. 그러나 서나가 초록병을 사러 오는 나날들이 일주일에 한 번, 삼일에 한번 그리고 매일로 변하게 되자 아줌마는 “오늘도 또 왔구나. 아이고 우리 이쁜이”라며 작게 미소를 짓고는 자리에서 계산을 하고 앉아 있었다. 초록색 병 두 개만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차게 식어 검은 봉지 안에서 뒤엉켰다.
서나와 같은 중학교에 입학한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들었을 때는 어떤 안도감이 들었다. 첫 등교를 함께 하는 것으로 낯선 시작을 서나와 함께 할 수 있어 좋았으나 먼저 밖으로 나와 철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서나가 나와는 다르게 넓게 퍼진 교복 치마를 입고 있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여름날의 시작을 알리는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들릴 때쯤 이름도 잘 모르는 어떤 녀석이 서나를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네가 서나 남자친구냐?”라고 놀려대는 소리에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휩싸여 숨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 반갑게 아는 척을 하며 집에 같이 가자고 외치는 서나를 뒤로 한 채 이질감이 섞인 창피한 마음으로 얼굴을 홱 돌려 집으로 도망쳐 버린 날. 학교 안 벚꽃 나무의 초록 풀잎 사이로 세차게 울어대는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왕왕’하고 울고 웃었다.
다음날 등굣길에 서나가 언제나처럼 일찍 나와 1층 마당에서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아 ‘쪽쪽’하고 마시면서 기다렸을 때, 나는 정말 서나만 있다면 학교의 그 ‘왕왕’ 거리는 매미 소리들을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어느 날 짝꿍 경수 녀석이 나에게 “옆 반 서나 알지. 너랑 친한, 서나가 매일 한스라는 애를 만나러 가겠다고 한 대. 걔가 노랑머리 남자친구래.”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선뜻 아니야라고 외치지 못했다. 서나가? 노란 머리 남자친구? 서나가 집에 같이 가는 남자라면 나 말고는 없을 텐데. 그러나 이런 한낱 쥐똥같은 소문에 점점 먼지가 들러붙어 소똥처럼 크게 번졌을 때, 나조차 그 소문에 압도되어 한스에 대한 존재에 대해 궁금해지고 나서야 알 수 없는 배신감이 밀려 들어왔다. 그것이 경수에 대한 배신감이었는지, 서나에 대한 배신감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허나 하굣길 들리지 않던 귀뚜라미 소리가 크게 ‘또르르’하고 울렸을 때 이번에는 정말 서나가 나와 함께 학교에 같이 가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가슴 안에 툭 하고 던져졌다. 하루와 이틀이 지나기 전 사이 주말 저녁 우유를 사러 가는 길에 집 앞 슈퍼 앞에서 서나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서나의 눈물을 마주하였을 때 나는 남자답게 서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 알 수 없는 배신감과 귀뚜라미 소리에 가슴이 턱 하고 막혀 서나를 못 본 채 하고 도망친 뒤로, 정말로 서나는 더 이상 나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나와의 관계는 여름 매미들의 울음소리를 지나 가을 귀뚜라미를 스쳐 겨울의 초입에 들어선 바깥의 아침 공기와 같이 쌀쌀해졌다. 어느 날 보은이 누나가 나에게 한스에 대해서 아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았을 때도 나는 서나와 이제 영영 인사를 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소문으로만 듣던 서나의 남자친구에 대해서 보은이 누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서나에 대한 어떤 마음의 정의도 내리지 못한 채, 스스로 서나와는 마치 서로 인사를 하지 않기로 약속한 듯 행동해야 했다. 등굣길에 서나와 마주쳤을 때에도 각자 갈 길을 가고는 했는데 나는 내 나름의 배려라 여기고 현관문 앞에 서나와 마주 칠 때면 집 앞 슈퍼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언덕을 내려가고는 했다. 슈퍼의 굳게 닫힌 은색 셔터문을 괜히 발로 툭툭 차며 쌀쌀맞게 허공에 파리채를 휘두르던 아주머니를 떠올리며 슈퍼를 한 바퀴 그리고 두바퀴 돌고는 했다. 괜스레 밀려오는 서운함과 미안함이 뒤섞여 서나를 향한 마음이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사라지는 마음까지 헷갈리게 될 때 나는 서나에게는 비밀로 했던 배려들을 자위하며 그 긴 언덕을 내려가야 했다.
그 무렵 저녁 10시쯤이면 아래층에서 전에는 들리지 않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서나의 아버지가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올 때쯤이었다. 그쯤이면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 헤드폰을 끼고 은색 아이리버 시디플레이어에 미국 락 밴드인 메탈리카의 CD를 넣고는 그 시끄러운 기타 소리에 집중해야 했다. 두꺼운 떡볶이 코트를 사달라고 엄마에게 졸랐던 날. 그날은 이상하게 아랫집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헤드폰으로 들려오는 기타 소리를 잠재웠는데 헤드폰을 막 벗었을 때였다. 기타 소리의 잔영이 미처 가시지도 않았을 때 쨍그랑하고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그 잔영을 덮어버렸다. 누군가 우는 소리, 저항하는 절규 소리와 고함을 지르는 소리. 미국 락밴드 본조비의 보컬이 내는 초고음을 내지르는 목소리 같은 아래층의 슬픔을 마주했을 때 나는 양손으로 두 귀를 막고 몸을 잔뜩 웅크리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서나는 밤새 운 것처럼 눈이 부은 채 정돈되지 않은 긴 머리카락으로 교복 치마를 무릎 아래로 내려 입었다. 치맛자락 끝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시퍼렇게 멍이 든 다리를 끌어 그 가파란 언덕을 가로질러 학교로 향하는 서나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또다시 애써 굳게 닫혀 있는 슈퍼의 은색 셔터문을 발로 두 어번 차고는 했다.
복숭아뼈까지 내려오던 교복바지의 밑단이 발목까지 올라왔을 때 더 이상 기타 소리 만으로는 서나의 비밀을 지켜줄 수 없었기에 시끄러운 드럼 소리와 베이스 소리, 절규와도 같은 하울링이 가득한 마릴린 맨슨의 음악의 앨범을 듣기 시작했다. 그 해 여름에는 유독 태풍이 세게 불었는데 티비 뉴스에서는 어느 곤충의 이름을 지어 태풍의 이름을 부르기까지 했었다. 우리 동네는 시에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여 비로 인한 피해는 적었으나 바람을 가장 정면으로 마주하였다. 태풍이 가장 심할 것이라고 했던 날 옆 동네 성근이 형이 태풍을 이기겠다며 밖으로 나가 춤을 추다 공중으로 떠 날아간 적이 있었는데, 철제로 된 주차장 차단문에 왼쪽 허벅지가 찢어지는 사고가 나 구급차가 오기도 했다. 나중에 서야 알게 되었지만 태풍의 이름을 짓는 데는 태풍의 시작점을 찾은 나라에서 가장 먼저 이름을 짓고는 하는데, 이때 주로 빠른 소멸과 적은 피해를 바라는 마음에서 동식물이나 곤충 등의 이름을 붙인다고 했다. 나는 서나의 집에 매일 밤마다 찾아오는 태풍에서 서나는 잘 이겨내고 있는지 성근이 형처럼 서나도 어딘가 찢어진 것은 아닌지 궁금했으나 하루빨리 서나의 집에 태풍이 소멸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루는 여치가 오기를, 하루는 나비가 오기를, 하루는 매미가 오기를 기도했다.
학년의 마지막 시험을 앞둔 어느 날, 반에서 10등 위로 올라간 적이 없던 나는 밤을 새워서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호기롭게 결심 한 다음날 첫 시험을 마치고 집에 가려는 버스에서 깊게 잠이 들어버렸다. 꿈에서 초록 풀밭에 노란 나비 한 마리가 나왔는데 자꾸 하늘로 날아가려 했다. 노란 나비를 잡고 싶어 그 초록 풀밭을 가로질러 새 차게 달렸다. 내가 다가가려 하면 할수록 나비는 정확히 그 거리만큼 거리를 두고 날아가려 날갯짓을 했다. 노란 나비의 날갯짓에 작은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손을 조금만 더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손을 뻗은 만큼의 거리로 또다시 날갯짓하며 멀어지던 나비.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 또한 내가 조종할 수 없는 이와 같을까. 서나와 나와의 거리가 딱 날갯짓하는 나비만큼의 거리라는 생각에 꿈속에서 슬픈 마음이 들었다. 속눈썹에 잠긴 눈물이 슬픔에 반쯤 차올랐을 때, 검지와 중지 끝에 아슬아슬하게 닿을 뻔할 때 잠을 깨고야 말았다. 눈을 뜬 곳은 경마장 근처 어딘가였다. 황급히 내려 알 수 없는 두근거림과 슬픔이 공존한 답답한 상태에서 다시 집으로 가려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았다. “엄마가 이쪽은 오지도 말라고 했는데.” 금단구역이 되어버린 경마장 근처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마주했던 것은 길 건너 서나의 아버지 기호형 그리고 옆집 3층 살던 재봉이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며 경마장 입구에서 나오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른쪽 눈물샘 아래 눈곱이 덕지덕지 붙어 눈을 비벼 경마장의 입구를 다시 확인하던 찰나, 버스 정류장에 막 들어온 버스에서 누군가가 내렸다. 보은이 누나였다. 오랜만에 본 보은이 누나는 서나와는 다르게 하얀 얼굴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로 귀엽고 이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릴 적 나는 서나를 보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보은이 누나를 보러 간 적도 몇 번 있었을 만큼 보은이 누나는 예쁘장했다. 서나가 항상 웃는 모습으로 대하는 것과 달리 보은이 누나는 꾹 다문 입과 아주 살짝 아래로 쳐진 입꼬리로 내게 차가운 인사를 건넸다. “소문 네가 내고 다닌 거니?”
내가 서나 앞에서 더 이상 웃을 수 없던 때, 서나의 눈물을 외면한 날, 서나에게 노랑머리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문이 학교 안에서 무성히 돌고 있었을 때였다. 종민이와 내가 당번을 섰던 날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청소를 하기 위해 종민이와 교실에 의자를 책상에 반쯤 올려놨을까. 나는 교실 뒤편 사물함 옆에 놓여 있는 걸레함에서 파란 걸레를 손에 쥐고 손걸레를 빨기 위해 뒷문으로 나가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앞에서는 서나와 같은 반 친구 몇 명이 소곤거리며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 파란 걸레를 가지고 화장실로 다가가자 아이들은 속삭임을 멈추고는 다가오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중 제일 머리가 큰 아이가 나를 보더니 킥킥하고는 웃음 짓고는 소리 죽인 채 세차게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들릴락 말락 한 작은 목소리로 누군가의 흉을 보는 듯했다. 나는 왠지 모를 긴장감으로 그들의 레이더에 내가 들어왔다고 느꼈는지 애꿎은 파란 걸레를 한 손안에 가까스로 우겨 쥔 채 화장실로 향해 걸어갔다. 그때 다시 한번 머리가 제일 큰 아이가 옆으로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웠다. “네가 서나 남자친구야?” 우겨 쥔 손가락에 힘이 풀려 파란 걸레가 손에서 빠져나가 시멘트 복도 바닥 위에 살포시 덮였다. 바닥에 덮인 파란 걸레를 손으로 쥐려고 숙이자 옆에 있던 또 다른 아이가 나의 허리와 뒤통수 부근에 대고 이야기했다. “야 쟤는 한국 사람이잖아. 서나 남자친구는 노란 머리 외국인이라고 했어.” 서나의 남자친구가 되었다가 탈락해 버린 사이 파란 걸레가 다시 나의 손아귀로 돌아왔다. 나는 화장실 앞에서 서나의 험담을 하고 있던 머리 큰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싶었으나 애꿎은 파란 걸레를 다시 한번 꽉 쥐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소문이요? 잘 모르겠는데요.” 보은이 누나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휙 하고 돌아서더니 뒷모습으로 나에게 말했다. “서나는 니가 알고 있다고 하던데. 한스에 대해 아니면 말고.” 새침한 뒷모습만 남기고 보은이 누나는 사라졌다. 보은이 누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서나가 노랑머리 외국인 남자친구와 만난다는 소문의 근원지가 나라는 생각과 함께 어디인지 모를 이곳에 떨어진 나의 억울함이 겹쳐 서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서나도 그렇게 생각하나.” 혼잣말을 내뱉자 서러운 마음이 서나에게로 향했다. 당장 서나에게 가서 소문을 낸 것이 내가 아니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서나가 정말 외국인 남자친구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닿지 않은 노란 나비의 날갯짓과 함께 그날 밤 태풍이 또다시 서나에게 찾아왔고, 바깥 겨울의 칼바람과 같은 싸늘한 소리에 또 한 번 가슴이 미어질 듯 두근거렸다. 그 두근거림이 서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서운함이 섞인 억울한 마음 때문인지 알지 못했다. 다음 날 엄마가 이야기했다. 서나가 집을 나갔다고 했다. 서나가 외국인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을 서나의 아빠에게 들켰다고 했다. 그 외국인 이름은 한 뭐라고 했다. 엄마는 내가 경마장 근처에 간 것도 모르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 한스와 서나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