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와 서나 - 2 (完)

by 장원석

몇 일 사이 겨울의 해가 짧아져 새벽녘 밝은 빛이 바로 전날보다 느리게 뜨던 날, 새벽과 함께 눈이 떠졌다. 서나는 집에 들어왔을까. 아직 어두컴컴한 창문 밖의 세상에서 서나는 어디에 있을까. 서나는 괜찮은 걸까. 짧은 걱정과 불안으로 쉽사리 다시 잠들지 못했다. 서나는 정말 남자친구가 생겼나. 다시 눈을 감았다. 20분이 지나가 버렸다. “일어나야지!”. 엄마의 호통소리와 함께 머리를 대충 물로 헹구고 아침 식사를 건너 뛴 채 때가 탄 교복 셔츠의 옷 깃을 대충 접어 입었다. 바지 안으로 셔츠를 넣었으나 셔츠 아래의 옷깃이 삐져 나왔다. 몇 일 전 엄마가 새로 사준 떡볶이 코트 안에 남루한 교복을 숨기고 신발을 구겨 신은 채 달려가야 했다. “엄마 나 지각이야! 엄마 때문이야!” 짧은 원망 섞인 말을 던지고 문을 박차고 나서 찬 공기가 막 밀려와 들숨을 크게 쉬어야 했던 그 때 서나가 내 앞에 있었다.

서나가 말했다.

“함께 가줘.” 내가 말했다.

“어? 학교를?” 서나가 다시 말했다.

“아니 한스를” 내가 다시 말한다.

“지금? 그럼 우리 학교는?” 서나가 말한다.

“아니 학교 끝나고”

“그래”

서나와 함께 하는 등굣길에서 나는 한스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다. 아니 묻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서나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수업 중에도 계속해서 교실 뒤편에 있는 시계를 쳐다 보고는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한스가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한스는 미국인일까. 독일인일까. 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시장 안쪽에는 러시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도 있다고 하던데, 옆 반에 체냐라는 아이가 전학을 왔었다고 했었다. 서나가 체냐라는 러시아 아이와 친했던가. 체냐는 우즈베키스탄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우리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 서나는 시장 안쪽에 살았다고 들었던 것 같다. 한스는 체냐와 친한 친구인가. 질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수학 선생님의 고차원적인 그래프와 도형들이 칠판에 펼쳐졌을 때 나는 질문들의 꼬리를 자른 채 서나와 다시 재회한 사실에 집중해야 했다. 지난 날 서나가 눈물을 흘렸을 때 서나에게 용기를 내어 괜찮냐고 물어봐야 했다. 화장실 앞에서 너의 험담을 그냥 지나쳤을 때. 경수가 쥐똥같은 소문을 가지고 너를 언급했을 때 서나 니가 없는 곳에서 너에 대한 험담을 왜 함부로 하는지 너를 대신해 화를 냈었어야 했다. 몇 가지 후회들이 스쳐 지금에서야 서나에게 괜찮냐고 물을 기회가 온 것이다. 나는 그 기회를 잡아야 했다. 나는 서나 너에게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을 쭉 정리해야 했다.

마지막 수업 종이 울리고 서나에게서 문자 한통이 왔다. “끝나면 개미분식 앞으로 올 것” 종례시간을 끝으로 제일 먼저 뒷문으로 뛰어나갔다. 매일 하교를 함께 하던 종민이가 나에게 무어라 외쳤지만 듣지 못했다. 개미분식 앞에는 서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서나가 나를 보며 무심하게 손을 흔들더니 지금 막 버스정류장으로 다가오는 버스를 타자고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서나와 함께 하기로 하였으므로 서나의 당당한 손가락 방향에 따라 다가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서나의 흰 운동화에 오른쪽 신발끈이 풀렸으나 그녀의 결심어린 뒷모습과 너무 빠르지 않지만 당찬 걸음걸이에 압도되어 엄마를 따라 놀이동산에 처음 가는 신이 난 기분으로 어린아이처럼 그저 뒤를 졸졸 쫓아갔다.

버스의 맨 뒷자리에 서나와 함께 나란히 앉자마자, 팽팽한 풍선 안에 공기가 가득 차 터질 것처럼 서나에게 외쳐야 했다. “서나야 그때 말이야 사실은.” 서나가 말했다. “아빠를 죽이고 싶어.” 차분하고 공허한 음성으로 아빠를 죽이고 싶다는 서나의 말에, 정리하던 수십가지의 변명들이 사라졌다. 서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서나의 집에 그동안의 태풍이 다녀간 자리. 그 흔적들을 매번 마주했기 때문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서나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서나의 치맛자락 끝에 언뜻 보였던 파란 멍 자국이, 철제 계단에 초록색 병 하나가 또르르 굴러 계단의 난간 틈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남은 액체들이 병 입구에 끝에 맺혀 한방울, 두방울 떨어지던 모습이. 비명과도 같은 전자기타의 음악 소리 사이로 서나와 서나의 엄마, 보은이 누나의 절망과도 같은 울음 소리들이 스쳐 지나갔다.

몇 번의 덜컹거림과 누군가 내리는 하차벨 소리가 반복될 때 서나가 말했다. “한스를 꼭 봐야겠어.” 나는 서나 입에서 처음 듣는 한스라는 소리에 가슴이 콩닥콩닥 하고 뛰었다. 지난 여름 엄마가 피가 가득 담긴 선지국을 입 안 가득 넣고 먹었을 때가 떠올랐다. 나는 이제는 용기를 내어 말해야 했다. “한스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 미국? 아니면 러시아?” 내 질문에 서나가 내 눈을 바라보더니 기침을 할 것 같은 표정으로 눈웃음과 함께 하하 하고 웃음 소리를 내었다. “내가 말 안 했나? 한스에 대해서?” 나는 왠지 모를 안도감과 함께 덜컹거리는 버스 뒷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자리에서 한 뼘 정도 서나와 가까이 엉덩이를 붙이고 한스에 대해 귀기울일 준비를 하였다. 서나는 한스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았다. “저 근데 우리 어디서 내려?” 버스의 종착지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나도 모르게 불쑥 서나에게 물었다. “한스에 대해서 너는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았지.”

서나가 한스를 처음 본 건 보은이 누나와 함께 간호조무사 학원에 갔었을 때였다고 했다. 보은이 누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가장 빨리 딸 수 있는 자격증을 선택해야 했는데, 서나는 보은이 누나가 간호조무사 등록을 위해 상담을 하러 간 사이 접수처 입구에 앉아 비타민 음료를 마시며 한스를 처음 보았다고 했다. “처음 봤었을 땐 엄청 큰 말벌인 줄 알았어. 말벌이 글쎄 모래바람을 만들어 만들어내는거 있지.” 4층 높이의 학원 창문에서 창 밖을 바라보며 서나는 경마장 안에 어떤 노랗고 검은 것이 왔다 갔다 하길래 말벌로 착각했다고 했다. 노란색 갈기털에 검은색 살결을 가진 커다란 말이 자유롭게 뛰어 다녔는데 그 말이 바로 한스였다고 했다. “말?”

“어 말”

“히이잉 그 말?”

“어. 한스.”

서나는 한스를 처음 본 이후 보은이 누나가 간호조무사 학원에 갈 때 마다 함께 따라가 접수처에 앉아 지켜보았다고 했다. 한스를 지켜본 날들이 길어질수록 서나는 한스의 자유로움이. 달리는 뒷모습이 부러웠고, 그곳에 있는 수 십 마리의 말들보다 한스가 가장 두껍고 컸으며 어른 같았다고 했다. 어떤 날엔 그 커다란 한스가 ‘땅’하는 소리와 함께 있는 힘껏 달려 마지막 지점에 당도했을 때, 서나는 자신도 언젠가 있는 힘껏 달려 어딘가로 도달할 수 있겠다고, 그 희망을 꿈꾸게 했다고 했다. 그러나 보은이 누나를 따라 몇 번이고 한스를 보기 위해 학원에 갔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점점 보이지 않았을 때. 4층의 창가에 앉아 기다리면 창밖으로 곧 다가올 것 같았던 한스가 사라졌을 때. 한스에 대한 희망이 무너질 것 같았던 마음안에서 되려 꿈틀거리는 용기가 서나의 마음 안에 생겼다고 했다. 서나는 마지막으로 한스를 봤을 때 한스와 눈이 마주쳤다고 했다. “한스가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에게 함께 가자고 했어. 분명히.” 그때 앞 자리에 앉아 있던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내게 벨을 눌러 달라고 했다. 벨을 눌렀으나 할머니는 내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뒷문이 열린 채 한참을 기다린 기사가 “안 내려요?” 하고 크게 소리를 쳤다. 할머니는 모르쇠 하며 창밖을 보고 있었다. 서나는 한스와 정말 눈이 마주 쳤던 것일까. 정말 한스가 존재하기는 한 걸까.

서나가 한스를 다시 본건 어느 날 아빠가 손에 들고 온 경마장의 찌라시 종이였다고 했다. 서나의 집에 태풍이 불던 날이였다. 서나가 집을 나갔다고 했던 그 날이였을까. 서나는 술에 잔뜩 취한 아빠가 가져온 전단지와 비슷한 일종의 경마장 찌라시 안에서 한스를 다시 보았다고 했다. “거기에 써있었어. 한스가." 서나가 말했다. 서나는 종이에 13번이라는 숫자 옆에 이렇게 적혀 있다고 했다 “노란색 머리에 검은색 피부. 빵빵하나 나이가 많은 잡말. 최근 걸음이 늘었으나 배당빵 제외” 서나는 그날 밤 아빠가 가져온 종이를 읽으며 무슨 말인지 모를 알 수 없는 용어들이 궁금했다고 했다. “너 아빠가 오는 발걸음 소리 들어봤어? 어두 컴컴한 밤에 아빠가 술을 마시고 오면 내는 그 발걸음 소리. 나는 아빠 발걸음 소리만 듣고도 아빠가 어느 정도 취했는지 알고 있어.” 서나는 소리만 듣고도 태풍의 강도가 어느 정도 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근데 그 날은 있잖아. 나는 꼭 물어봐야 했어.” 서나는 엄마와 함께 사전에 모의 연습을 해야 했을 만큼 태풍이 가장 강하게 올 날 일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날은 꼭 아빠에게 물어보아야 했다고 했다. 종이에 써 있는 걸음이 느리다는 말이 무엇인지, 빵빵하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인지, 어디에 가면 한스를 만날 수 있는지, 경마장에 가보면 안되는지, 아빠가 나와 함께 해 줄 수는 없는지. 아빠가 내 손을 잡고 경마장에 함께 가 줄 수는 없는지. 함께 가 줄 수는 없는지. 함께. 서나는 곧 불어닥칠 태풍 앞에서 작은 소용돌이가 되어 자신도 태풍이 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곧 사라질 마음을 담아 한스에 대한 작은 희망과 함께 아무렇게나 바닥에 놓인 찌라시 종이를 손에 꼭 쥐고 아빠에게 다가갔다고 했다.

서나를 바라본다. 그때 서나의 눈에서 무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절망이 담긴 불꽃이었다. 서나가 불꽃을 피우고 내게 말했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해.” 경마장 입구가 보이는 종착지였다. 그 순간 가슴이 일렁였다. 엄마가 결사코 반대하던 경마장을 바라보았다. 버스에서 내리면 엄마가 붉은 피로 그린 피켓을 들고 서있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러나 나는 오로지 서나의 외침, 변명과 금기 따위는 잊어버려야 했던 서나의 불꽃에 집중했다. 결국 나는 서나와 함께 한스를 만나야 했다. 서나가 행복해지기 위해, 서나의 집에 더 이상 태풍이 몰아치지 않기 위해. 때마침 창문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막 내리는 이슬비에 창밖을 보는 서나의 뒷통수를 보았다. 검은 머리끈으로 묶은 단정한 머리. 서나의 뒷통수에서 목덜미 까지 내려오는 곡선과 잔털들. 버스의 덜컹거림에 따라 서나의 몸도 함께 들썩거렸는데, 마치 서나가 울기 시작한 듯 보였다. 서나는 아빠를 죽이고 싶은 것일까. 어쩌면 서나의 눈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은 한스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함께 해달라고 애원하는 곧 사라질 메아리와도 같은 서나도 모르는 알 수 없는 부성애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절망과도 같은 서나의 눈에 담긴 불꽃을 보며 나는 한스에 대한 갈망처럼 올라오는 질문을 꾹 참고 나서야 서나의 눈에서 마침내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스와 서나 - 2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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