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에는 초반부, 주인공이 알약을 먹고 마침내 현실 세계를 자각하며 깨어나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은 알처럼 생긴 곳에 누워 머리부터 발 끝까지 연결된 호스에서 생명을 유지 시키는 액체들을 투여받는다. 주인공이 현실을 자각할 때, 마침내 그것들이 모두 끊어지며 주인공은 매트릭스라는 허구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들어간다.
오늘 나는 요양원 중환자실 안, 침대에 누워 호스를 꼽은 채 겨우나마 생명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의 코와 입에 흘러 들어가고 있는 수액들은 그들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었다. 침대 앞에는 똑같은 옷을 입고 대부분 비슷하게 호스로 연결된 사람들을 구분하기 위해 자그맣게 이름표가 붙혀져 있었는데, 이름과 나이, 성별, 그리고 어느 한 문구가 눈에 띄었다. "욕창 위험군" 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80세가 넘으셔서 그 욕창 위험군에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창문 앞 침대에 누워계셨다. 젊은 시절, 지독하게도 부지런했던 할머니는 높은 언덕 위에 집에 살고 계셨는데 어느 겨울 날 흰 눈이 쌓여 추운 바람이 바닥을 모두 얼어붙게 한 날. 아들과 딸들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평생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터득해야 했던, 그 미련한 부지런함을 참지 못하시고 경로당에 가기 위해 언덕을 내려가다가 그만 미끄러지고 마셨다. 부러진 고관절을 수술해야 했고, 그 이후 할머니는 회복하시지 못한 채 지금까지 누워 계셔야 했다.
중환자실 안에서 잠이 들어 눈을 감으신 모습을 바라보며 동생이 말했다. 형 할머니 깨울까. 아냐 그냥 조용히 있자.
10여 년 전, 우리 집은 할머니가 살고 계신 집 아래층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할머니는 그때마다 아래층에 있는 우리를 보러 쉼 없이 계단을 내려오셨다가 다시 오르셨다. 동생과 내가 없을 때면 청소를 하러 내려오시기도 하셨고, 밥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내려오셔서 밥 먹으러 올라오라고 권유를 하곤 하셨다. 이사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는 함께 할머니와 함께 밥 먹는게 좋았지만,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길 때면 할머니의 권유를 거절하는 것이 반복되어 버렸다. 언젠가 할머니가 우리 물건을 옮겨 놓는 것에 대해서 엄마에게 불평불만을 털어 놓던 날, 더 이상 할머니가 우리 집에 내려오시는 일이 없어져 버렸다.
결혼을 하고 독립을 한 뒤 할머니를 보러 가게 되는 일은 연례행사와도 같이 변해버렸다. 할머니가 고관절을 다치셨다는 엄마의 말에 회사가 바빠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변명하던 나였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 다음 달에는 꼭 찾아뵐게라며 뒤로 미뤄 버렸었다.
몇 년이 지나,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나 돼서야 나는 차를 끌고 면회를 가게 되었는데, 몇 년만에 뵙게 된 할머니는 너무나도 변해있으셨다. 마치 타올랐던 초가 꺼지는 순간처럼 수척해진 모습으로 누워서 나에게 손을 흔들며 가늘어져버린 목소리로 말하셨다. “원석이 왔구나.” 모든 뼈들은 윤곽을 밖으로 드러내었고, 불이 타기 위해서 공기 중에 산소를 끌어가듯 할머니는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의 살갗들을 어디론가 끌어가시는 것 같았다.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해요. 할머니.”
할머니는 이제 삶의 기로 마지막에 서 계신 것 같이 보였다. 슬픔마저 잔잔해진 채 생명력을 잃어버린 요양원의 중환자실을 나오며, 마지막 순간 마침내 그 촛불이 전부 타올라 초가 꺼지게 될 때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리 만무하지만, 할머니가 또 다른 삶으로 깨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디 새로운 삶에서는 연결되어 있는 호스들을 모두 걷어 내버리고 할머니를 괴롭게 했던 지긋지긋한 욕창도 떼어버리셨으면. 이번엔 미련한 부지런함을 버리고 현명한 게으름을 가지고 언덕 아래 집에서 살아가셨으면 좋겠다. 너무 많이 걷지 않고 편안한 안락의자 앉아 나중에 올 우리 엄마랑 나랑 동생을 기다리며 느긋이 앉아 계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