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1988년에 지어진 낡은 복도식 아파트였고, 진영은 7층에 살았다. 엘리베이터는 간신히 한 개만 작동하고 있었으며 7층 복도에 유일한 불빛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백색의 빛 뿐이었다. 백색의 빛은 오래 비추지는 않았는데, 다른 아파트보다 엘리베이터 문의 열고 닫히는 속도가 빨랐으므로 발산된 흰빛은 빠르게 다른 층으로 이동해버렸다. 진영은 705호에 살았다. 진영이 어딘가로 나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향해야 했다. 해가 지면 어두컴컴한 복도와 701호를 넘어야만 엘리베이터의 빛이 진영을 맞이했다. 진영은 이른바 담배광(狂), 담배 애호가였다. 매일 같이 복도를 헤쳐나가 1층으로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복도에 오고 가는 바람이 싸늘하고 차게 바뀌었을 때 7층의 복도는 꽤나 혹독했는데, 어두웠고 음습했고 냉혈했다. 그런 복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걷고 걸어야할 만큼 담배는 진영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진영은 미련할 만큼 성실했다. 스무살이 넘어 직업훈련 학교에서 배운 제빵일을 좀처럼 쉬지 못했다. 진영은 그런 사람이었다. 어떠한 냉혹한 한기도, 칠흑같은 어둠의 복도도 무심히 건너갈 사람. 담배라는 친구를 결코 매일 같이 보고야 마는 사람. 미련한 사람.
새벽 4시, 암전된 복도에 출근을 하는 진영이 보였다. 진영은 자신의 몸에서 발산하는 열과 빛 그 사이, 형체가 뚜렷하지 않은 윤곽을 움직이고 역동하고 있었다. 종착점인 엘리베이터에 다다랐다. 문이 열렸다. 발광하는 백색의 빛이 진영의 몸을 삼켰다. 문이 닫히고 빛이 아래로 움직이자, 복도의 어둠 속에 진영의 그림자가 발자국처럼 남아 있다가 먹혀버렸다.
701호 안방에서 옥주는 눈을 떴다.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뻐근하였고 결정적으로 소변이 마려웠다. 옥주는 방문을 아주 조심스레 열었다. 어두컴컴한 마루를 지나 화장실로 향할 때 성훈의 열린 방문 사이로 컴퓨터 모니터가 내뿜는 형형색색의 광체가 번들거렸고. 성훈의 방으로 당장이라도 뛰쳐들어가 한바탕 속상함을 퍼붓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른 채 지나쳤다.
‘외면해야 내가 산다.’ 옥주가 혼잣말을 하며 다짐하던 날, 휴대폰 대리점을 정리하고 집에 들어온 성훈이 방에서 밤새 컴퓨터만 붙잡았던 2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였다.
옥주는 시원하게 소변조차 누지 못했다. 아랫배가 아팠고 허리에 뭔가 묵직한 것이 들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거울을 보니 굽은 허리가 더 굽은 것 같았고, 얇아진 머리카락 사이로 듬성듬성 살빛이 내보였다. “어째 엄마랑 똑같이 생겼네.” 흰 저고리를 입은 엄마가 떠올랐다. 너무 닮아 있었다. 핏줄이란 그런 것인가. 옥주의 엄마는 고관절이 부러져 걷지 못하다가 요양원에서 죽었다. ‘나도 이렇게 살다가 걷지 못해 죽겠구나.’ 생각했다. 불안했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오른발이 저려 절뚝이며 방에 왔지만 성훈은 나와보지도 않았다. 핏줄이란 그런 것인가. 방으로 들어온 옥주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야 했다. 허리디스크에 도움이 된다는 운동을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면 이 마음도 달아나겠거니. 투명한 훌라후프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허리를 오른쪽으로 20번, 왼쪽으로 20번 돌릴 예정이었다. 손 끝에 힘이 잘 안들어갔지만 손 끝으로 쳐진 양 허리의 살들을 바치고 허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10번, 왼쪽으로 10번. 그리고 오른쪽으로 5번 정도 더 돌렸을 때. 옥주는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금새 타오를 것 같은 불안함과 늙어버린 자신의 몸뚱이가 숨막히듯 싫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누울까도 생각했다. 근데 누우면 왠지 그 자리에서 엄마를 따라 갈 것 같았다. 붉어진 얼굴과 몸을 식혀야 했다.
옥주는 오래된 나무 서랍에서 거들을 꺼냈고, 두꺼운 바지를 꺼내었다. 내복을 입기에는 답답한 나머지 옷을 2~3겹 입기로 했다. 내의를 꺼냈고, 긴팔을 꺼내었다. 빨간색 얇은 조끼도 꺼내었고, 마지막으로 장롱 속 잠바를 꺼내려할 때, 도망가고 싶다는 두근거림이 심해졌고 옥주는 손에 집히는 아무 잠바나 걸치고 밖으로 나서기로 했다.
진영이 아파트를 벗어나 새벽 첫차를 타기 위해 분주히 정류장으로 걸었고, 진영의 시야에 정류장이 눈에 보였을 때였다. 무언가 떠올랐다. 7층 어두운 복도 안에 놓고 온 것, 자신의 그림자 속에 놓고 잊어버린 것. 새벽 공기에 평소 입지 않던 목 부근이 양모로 되어있는 검은 자켓을 입어버렸던 것. 전날까지 입었던 기능성 바람막이 잠바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것. 연인처럼 새벽 공기를 뚫고 입으로 갔다 대었던 것. 그 감촉. 오늘은 민트향으로 바꿔 필터를 끼워 넣어야지. 생각했던 그 것. 밀가루 냄새와 버터 냄새에 지칠 때쯤 유일한 실낙원 같은 그 공기를 한 모금 빨아들여야 마침내 쉴 수 있었던 그 것.
진영은 고민했다. 지금 당장 발걸음을 돌려 그것을 찾기 위해 새벽거리를 달려야 하나. 그래야 15분 뒤에 오는 두 번째 버스를 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오늘 하루 그냥 버터볼까. 아니면 새로 살까. 이제 필터가 제 기능을 못할 때도 되었잖아. 담배란 소모품 아닌가. 진영은 고민했다. 그러나 친숙한 연인이 되어버린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진영은 달려보기로 했다. 하루가 다르게 폐활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걸 몸소 느꼈다. 그러나 달렸다. 건강해지기 위해. 아니. 담배를 피기 위해.
아파트 1층에 당도하자 폐 깊숙한 곳에서의 날숨이 절로 나왔다. 엘리베이터에 화살표를 눌렀고, 엘리베이터는 5층에서 내려오려 ‘웅’ 소리를 내었다. ‘나 말고도 누군가 오고 갔구나.’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고, 백색의 빛이 또 한번 진영을 삼켰다. 7층을 눌렀다. 7층의 어둠 속을 빠르게 헤치고 나아가 그것을 가져올 생각에 초조했고, 두근거렸다. 문이 열렸다. 백색의 빛이 진영의 발 아래에서 멈췄고 발끝에는 검은 그림자가 흔들렸다. 진영은 어두운 복도 속으로 자신의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옥주는 조끼를 입고 아무렇게나 옷을 걸쳐 입었다. 최근에 새벽 공기가 추워졌으나, 지금의 옥주는 어딘가라도 걸어야 했기에 대신 두꺼운 양말을 신었다. 허리가 뻐근하고 묵직했지만 성훈과 함께 존재하고 있는 이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성훈의 뒷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아들을 잘못키운 내 잘 못인가. 애비가 일찍 죽어 저런가.
성훈은 사업을 하고 싶어했다. 옥주는 성훈이 그저 남의 밑에서 일하며 평생 월급쟁이의 삶을 살길 바랬으나, 지 애비처럼 똑같이 사업을 한다고 했다. 그때 뜯어 말려야 했다. 피로 이어진 보이지 않는 줄이 참으로 원망스러웠다. 그때 쯤 얼굴이 하얗고 작은 여자아이를 인사시킨 적이 있었다. 며느리는 단발머리였고, 빨간 옷을 입었다. 첫 만남에 성훈이 음식값을 계산하려 지갑을 열 때 며느리의 눈빛이 바뀌었던 걸 눈치 챘어야 했다. 성훈이 모든걸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왔을 때 옥주는 전생의 죄를 지어 이렇게 된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업보로구나. 701호의 현관문을 조용히 열렸다. 생각보다 더 쌀쌀한 새벽 공기가 작은 문틈 사이로 들어왔다. 옥주는 조용히 현관문을 닫으려 되려 힘을 주어 살살 닫았다. 문을 닫자 다시금 새벽의 냉한 공기가 옥주의 몸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허리에서 우두둑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허리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옥주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굽어 버린 허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걷고 싶었지만 끊어지 듯 허리에서 시린 기운이 발 끝까지 뻗쳤다.
그때 마침 엘리베이터에서 검은 자켓을 입은 남자가 흰 빛을 머금고 나타났다. 부처님. 하느님. 죽으란 법은 없었다. 옥주는 진영을 신이 보내주셨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진영은 어두운 복도에서 움직이고 있는 다른색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너울거렸다. 무언가. 사람 얼굴인가? 무언가 동그란 것이 공중에 떠 있었다. 얼굴인가? 귀신인가? 진영은 옥주를 보았다. 단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찬 공기 때문인지. 귀신을 보았다는 생각때문인지. 그게 눈앞에서 둥둥 떠다녀서 인지. 그대로 얼어버렸다.
버스정류장에서 아파트까지 뛰어올 때 흘렸던 땀이 그 순간 진영의 등허리에 찰싹하고 달라붙었고 차게 식어 소름으로 바뀌었다. 망가져버린 폐활량을 따라 숨쉬는 두근거림이 불규칙하게 쿵쾅 거렸을 때, 엘리베이터의 백색의 빛 또한 빠르게 다른 곳으로 달아나버렸다. 그때 소리가 들렀다. “저 좀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진영은 귀신을 믿지는 않았다. 다만 엄마가 이 집에 이사왔을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진영아 담배 좀 끊어라. 언젠가는 그 담배 때문에 반드시 일치를 날이 온다.’ 엄마. 엄마. 진영의 입에서 좀처럼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옥주의 손짓이 커지고 목소리가 커질수록 진영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옥주는 살며 최대한의 힘으로 온 힘을 다해 손을 뻗었다. 그대로 산송장이 될 수는 없었다. 조금만 더 다가가면 저 빛을 내며 다가온 새벽 4시의 구원자가 나를 살려줄 것 같았다. 허리는 부서질 것 같았고, 꼬리뼈에 천근만근 같은 무거운 돌덩이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이얍.” 죽을 힘을 다해 움직여 보고자 기합소리를 내었을 때, 옥주의 머릿속으로 며느리의 간사한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나쁜년. 복도의 찬바람이 등허리 쪽으로 불어와 옥주의 등을 밀었고, 온 힘을 다해 뻗은 손길이 진영에게 닿으려 했다.
진영도 살아야했다. 살고 싶어 움직였다. 간신히 손끝으로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고, 엘리베이터가 ‘웅’하는 소리를 내었다. 조금만 버티면 살 수 있었다. 살 수 있다. 마침내 백색의 빛과 함께 문이 열렸다.
백색의 빛이 진영의 몸을 지나, 굽은 허리가 굳어버린 옥주의 얼굴까지만 비추었고, 진영의 눈 앞에 옥주는 얼굴만 떠다니는 할머니 귀신 그 자체였다. 진영의 입에서 불규칙한 날숨, 그리고 담배연기와도 같은 흰 연기가 빠져 나왔다.
옥주는 생각했다. “나는 이제 살았다.”
진영은 생각했다. “난 이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