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이 오면

by 장원석

너른 밤 하늘에 별은 몇 개 보이지 않았고, 검푸른 하늘에 검은 구름들이 윤곽을 드러냈다 누런 달이 떠오를 때였다


혜숙 : 이제 정말 오실 때가 되었는데

혜숙이 검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이야기 한다

연우 : 누가요? 누가 오기로 했어요?

연우는 고개를 올리는 혜숙의 얼굴을 따라 올려다보지만, 연우가 쳐다보는 건 하늘이 아닌 그 옆에 층에 불이 번쩍이고 있는 높은 아파트이다

혜숙 : 응, 오신다고 그랬어 저 하늘에서 내려오신다고 그랬어

연우는 오른 머리를 손가락으로 배배 꼬았고, 다시 땅바닥을 쳐다본다

연우 : 하늘에서? 내려 온다구요?

연우가 왼 다리를 올려 다리를 꼬았고, 땅바닥에 닿아 있는 다리를 8자를 그리며 꼬은 머리를 다시 반대로 돌려 머리를 풀었다 풀린 머리카락 몇 개가 연우의 손가락에 붙자 연우는 머리카락을 허공에 던져놓는다

혜숙 : 그래 하늘에서 내려오실거야 너도 준비 해야해

혜숙은 여전히 하늘을 응시한다 아무런 별도 보이지 않는 하늘을 그저 바라보고 있다

연우 : 됐어요 난 그냥 지옥에 갈래요

연우의 손에서 머리카락 몇 개가 땅에 떨어진다

혜숙 : 왜 지옥에 가고 싶어하니 많이 아플텐데

혜숙은 끝까지 하늘을 응시한다 검푸른 하늘을

연우 : 아픈건 익숙하니까

연우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혜숙의 입에 하나, 자신의 입에 하나 가져다 놓는다 혜숙이 자연스럽게 입을 조금 벌려 담배를 입에 문다

혜숙 : 분명 오신다고 그랬어 날 데려갈 줄거야 어!

검푸른 하늘에 구름 사이로 번쩍이는 동그란 것이 보였다 혜숙도 모르게 벌려진 입안에 있던 담배가 땅으로 떨어진다

연우 : 그냥 비행기에요 불 붙혀 줄게요

연우가 꼰 다리를 풀고 땅에 떨어진 담배를 주으려 하는 순간이었다 떨어진 담배 위에 연우가 뽑아 버린 긴 머리카락이 담배 위에 내려 앉았다 불을 붙이는 담배의 머리쪽에 머리털이 났다

연우 : 꼭 나 같네

연우는 자신의 머리카락이 얹힌 담배를 주워 머리카락에 불을 붙힌다 머리카락에 불이 붙어 사라져버린 사이에 담배의 머리에 붉고 검은 불이 타올랐다

혜숙 : 언젠간 저 하늘에서 큰 별이 내려 앉을거야 그 큰 별이 오게 되면 다가 올 거야 알지?

혜숙은 그때서야 쳐다보던 하늘에서 고개를 숙였다 너무 오랫동안 고개를 들고 있어 고개가 뻐근했다 담배가 필요했다

연우 : 이거나 피우세요

연우가 혜숙의 입에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불 붙은 채 타오르는 흰 몸을 가져다 댔다

혜숙 : 고마워

혜숙이 흰 몸에 입을 가져다 대고 한모금 쭉 빨아들였다 타오르는 불기운이 더 강하고 세차게 타오른다

연우 : 이쁘다

연우는 자신의 머리카락부터 시작된 불꽃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혜숙의 입에 가져다 댄 담배가 꼭 자신의 몸 같았다 다 타버리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

혜숙 : 아플거야 지옥에 가기 전에 그런 경험은 미리 하지 않아도 돼

혜숙의 말을 들은 연우는 혜숙이 입에 가져다 댄 자신의 흰 몸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입에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우 : 하늘에서 그게 내려오면 똑같아 질거에요 얘처럼요

연우가 자신의 담배를 쭈욱 하고 빨아들였다 담배의 3분의 1이 사라지고 재가 되었다

혜숙 : 그렇겠지 곧 기다리던 종말이 내려올거야 그럼 자연스럽게 되는거야 우린 모두 사라지겠지 그때는 각자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어

혜숙이 연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혜숙이 담배를 한 모금 쭉 빨아들였다 ‘사라진다라’ 연우는 혜숙이 물고 있는 흰 몸이 꼭 자신 같았다 그 순간 혜숙의 담배를 빼앗아 자신의 입에 가져다 대었고 자신의 담배를 혜숙의 입에 가져다 놓았다

혜숙 : 발버둥을 쳐도 소용 없어 곧 오실거야


검푸른 하늘에서 하얗게 번쩍이던 동그란 형체가 사라질 때였다 별들은 사라진 형체들을 바라보았고, 멀리서 아주 멀리서 몇 미터 몇 킬로미터 몇 광년이나 멀리서 혜숙과 연우를 향해 달려오는 동그런 별이 하나 있었다 우주의 검은 공간을 지나 뜨거운 화성과 차가운 목성을 지나쳤다 그것은 하나의 동그란 물체이기도 했고 모든 서사와 이야기를 끝낼 마무리 이기도 했다 그것은 점으로부터 시작된 시작점이였고, 이 모든 이야기를 끝내줄 마침표이기도 했다


혜숙 : 종말이 오면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연우 : 그 전에 모두 죽을거에요 그래서 지옥에서 종말을 맞이하겠죠


혜숙과 연우가 피우던 담배가 그 불을 잃고 꺼져 갔다 혜숙은 또 다시 내일을 기다렸고 연우는 내일이 오지 않기를 기다렸다 서로가 다른 방식으로 종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아주 멀리서 종말이 다가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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