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 앉아 있다. 결박되어 있었고 무언가에 포박되어 있었다. 움직일 수 없었고 아무 생각조차 들지 않게 만드는 방이었다. 주변에는 쇠와 같은 성질의 무언가가 앞을 가로 막고 있었고, 벽에서는 시멘트 냄새와 석회질의 곰팡이 핀 냄새가 간간히 났다. 눈 앞에는 문이 있었다. 눈이 몇 번 뜨고 감겼다. 또 다시 방 안에서 눈을 떴고 쇠와 같은 성질의 문이 삐죽삐죽하게 나있었고, 곰팡이가 핀 시멘트 벽지가 눈 앞에 가득했다. 눈이 또 감기려 하였지만 감지 못했다. 발걸음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누군가 여기로 오고 있다고 방이 말해주었다. 의자에 묶여 있었다. 억지로 움직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의자의 다리 부분은 나무로 되어 있었고, 그때 처음으로 바닥을 보았다. 바닥은 앙상한 검은 점으로 채워져 있는 푸른 빛을 띈 타일로 이루어져 있었고, 앙상한 검을 점은 씹다 버린 껌과 같은 것이었다. 그 순간 쇠냄새가 욱신하고 콧 속으로 들어왔다. 이내 문 밖에서 ‘또각’ 소리가 났다.
의자가 세차게 뒤흔들렸다. 내가 흔드는 것인지 방이 흔드는 것인지 모른다. 바닥의 검은 점들이 흔들렸고 쇠로 된 길죽한 살(殺)이 S자 곡선을 그렸다. 내 몸이 공중에서 조금 뜨자 곧 방의 축 전체가 뒤 흔들렸다. 한번 더 높게 떠올랐다. 의자에 어느 한 부분에서 ‘끼익 끼익’ 소리가 나는 것 같다. 바닥의 검은 점들이 더욱 세차게 위 아래로 흔들렸다. 검은 점이 작은 선이 되었고 삐죽하고 긴 쇠들이 점이 되었다. ‘우직’하는 소리에 의자에 오른쪽 뒷 부분의 다리가 너덜너덜해졌다. 묶여 있던 끈이 풀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묶여 있던 두 손이 내 배꼽 부근에서 움직일 기미가 보인다. 두 손이 1초 정도 자유를 느꼈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문 뒤로 온통 새하얀 빛이 나를 삼켰다.
‘쾅쾅쾅’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문 뒤의 누군가가 말한다. “너는 자신감이 없어. 너는 못해. 넌 다시는 뛸 수 없어. 너는 실패자야. 너는 내 아들도 아니야. 나가 죽어.”
긴 잠을 잤다. 꿈속에서는 어떤 아저씨가 1차선의 도로를 막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는데, 피처럼 보이는 초장에 생오징어를 찍어 먹고 있었다. 양반다리를 한 아저씨 뒤로 차들이 줄줄히 밀려있었고, 기다리고 있는 차들에서 클락션 소리가 하나 둘씩 들렸다. 그 순간 아저씨가 나를 쳐다보며 무엇을 보느냐고 따져 물었다. 아저씨는 초장을 생오징어를 푹푹 찍었고, 입 근처부터 시작하여 바닥 그리고 옷 앞섬까지 새빨간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오도독 오도독’ 씹는 소리가 들렸다. 맛있어 보이네요. 아저씨. 근데 도로 한복판에서 왜 그러고 있으세요. 그러자 아저씨가 말했다. “중요한게 무엇인지 모르는구나. 그러니 니가 그러고 있지.” 네? 그 순간 앉아 있는 아저씨 너머로 덤프트럭이 번쩍 번쩍 전조등을 키며 다가오고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 곧 그 덤프트럭이 아저씨를 칠 것 같았다. 아저씨는 투명하고 팔딱거리는 오징어를 손으로 짚어 그 새빨간 생초장에 담그고는 투박하게 입으로 가져갔다. 덤프트럭은 속도를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돌진하고 있었다. 이내 덤프트럭의 커다란 전조등과 흰 빛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맹목적으로 나를 향해 돌진하고 있던 것이다.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입에 빨간 초장이 가득한 채로 나를 보았다. 아저씨가 씨익 하고 웃었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떠보니 천장이 보였는데, 천장에는 구멍이 송송 난 석고표면의 타일이 가득했고 내 시선에서 조금 오른쪽, 내 오른발보다 약간 앞서 있는 곳에서 그대로 쭉 하고 올려다 본 석고 표면에 무언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거미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눈을 약간 조그맣게 뜨고 보니 그것의 다리가 보였다. 몇 개의 다리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며 위 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했다. 거미가 매달려 있는 거미줄은 보이지 않았다.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좌우로 위아래로 공기의 흐름에 따라 공중에 떠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방에서 나는 문밖으로 나갈 엄두 조차 나지 않았다. 나의 세계는 어두컴컴한 무언가에 잠식당했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또 다른 방이며, 이 방에는 나와 저 거미만 존재했다. 왠지 문밖에는 키가 큰 거인들이 돌아다닐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안에서 난장이 취급을 당하겠지. 그러자 나는 난장이가 되었다. 의자에 앉아 있었고 의자에 다리가 닿지를 않았다. 곧 어두워 질 것 같았고 금방 해가 뜰 것도 같았다. 밤과 낮이 빠르게 흘러갔고 나의 시계는 거미의 움직임으로 초침을 대체했다. 눈이 감긴다. 다섯 번의 낮과 밤이 지났다. 잠을 자야 하지만 잠들지 않고 싶다. 의자에 앉아 눈을 한번, 두 번, 세 번 감았다. 거미도 초침이 되어 좌로 우로 좌로 우로 좌로 우로 움직였다. 거미가 내려오고 올라서고 내려오고 올라서고 내려오지 않았다. 어둠이 나를 삼켰다.
“당장 나가라. 넌 내 아들이 아니다.” 문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 아들이 아니다. 내 아들이 아니다. 굳게 닫힌 문 너머로 흘러내려 사라져버린 내가 있었고 다시 그 반대편엔 빛이 없는 내가 있었다. 두 사람이 되어 한 사람을 그곳에 두었고, 나는 다른 한 사람이 되었다. 가방에 속옷과 옷가지들, 핸드폰 충전기와 오토바이 키를 챙겼다. 문을 열었고 문을 닫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았다.
방이 말했다. “아직 네 차례가 아니다. 조용히 앉아서 생각해라.” 방의 말에 나는 눈을 떴다. 부서진 의자를 두고 가부좌를 틀어 바닥에 의지했다. 포박되어 버린 줄이 그 부서진 의자와 연결되어 있었고, 내 뒷편에는 부서져버린 의자가 너브러져 있었다. 흰 빛에 삼켜져버린 잠깐의 시간 동안 나는 어딘가로 갔다 왔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생각하려 했다. 방이 생각하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생각해야 했는데, 그건 지금 내가 결박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야 할 것만 같았다. 내가 여기 묶였던 이유가 무엇이지. 내가 왜 이곳에 왔지. 이곳에서 저 흰 빛을 감추고 있는 문 너머에는 누가 있지. 나는 누구지. 나는 어디서 태어났을까. 오른발과 왼발을 교차하여 다시 가부좌를 틀자 누군가 생각났다. 남자로 보이는 흐릿한 형체, ‘오도독’ 내는 소리. 새빨간 핏물. 그리고 거미. 그 거미. 거미를 생각하자 천장에서 그 거미가 나타났다. 거미가 다리를 뻗었고 털이 난 몇 개의 다리가 내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핏물. 핏물에 무언가를 찍어먹던 그 아저씨가 생각났다. 덤프트럭의 전조등의 흰 빛이 어디선가 비추자, 거미의 나머지 다리가 내 얼굴을 감싼다. 다시 나는 그 흰빛에 삼켜진다. 흰빛에 삼켜지기 직전에, 거미의 입으로 내 몸이 들어가 거미가 나를 삼켰다. 거미의 입 안의 검은 세상에서 나는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정신없이 도망쳤다. 떠밀렸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 그저 멀리 멀리 나아갔다. 문 뒤에 그는 나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떠밀리는 동안 밤과 낮이 다섯 번 정도 바뀌었고, 눈을 감고 뜨니 내 허리 춤에 올 법한 건물들은 사라져 버렸다. 높이 올려보야야 하는 건물들이 눈을 가득 매웠다. 어느 밤이었다. 도로의 중앙선을 넘고 차선이 흐릿해진 순간이었다. 길은 어두컴컴했고 나의 눈은 어둠에 적응하고 있었다. 달리고 있는 차선과 반대 차선을 넘나들어도 괜찮았다. 어둠안에서 나는 어떤 형체를 보았는데 그것이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다리가 길고 여러 갈래로 나 있었다. 검은 형체는 나의 앞과 뒤로 움직였고, 오토바이를 앞서기도 했고 뒤에서 밀어주기도 했다. 어느 순간 그가 내 앞에서 나를 이끌고 있었고, 나는 그저 따라갔다. 일순간 그곳은 어느 장소이기도 했고, 금방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그곳은 방이기도 했고 도로이기도 했다. 그곳엔 검은 형체와 나만이 존재했다.
도망친 그 곳에서 나는 배가 고팠다. 주인이 없는 어느 가게에 들어섰다. 배가 고팠다. 그러나 물건을 사고 지불할 만한 것이 나에게는 있지 않았다. 과자 몇 봉지는 그 자리에서 먹었고, 눈에 보이는 라면 몇 봉지는 가방에 챙겼다. 그냥 가져가는 것은 안될 것 같아, 가방 안에 들어 있던 상의와 하의 한 벌을 그곳에 두고 왔다. 값은 지불한 셈이었다. 배를 채우고 나서 처음드는 생각은 갈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잠을 잘 곳을 찾아야 했고, 다시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냥 여기서 자야 할까. 가지 말까. 그때 문이 열렸다. 거인이었다. 거인이 나의 팔을 결박시켰고, 나는 난장이가 되었다. 이내 새하얀 빛이 쏟아졌다. 삼켜지기 전에 나는 생각했다. 이곳은 어디일까. 눈을 감았다 떴다.
문 앞에 앉아 있었다. 결박되어 있었고, 무언가에 포박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