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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Jul 23. 2024

영화 속 와인(4)

세기의 와인 대결

아르헨티나 와인

아르헨티나 와인을 이야기할 때 멘토사와 안데스 산맥은 중요한 키워드다.
멘토사는 아르헨티나 와인 수도로, 안데스 산맥 기슭의 높은 고도에 포도밭이 위치해 있다. 

안데스 산맥의 신 기슭에 위치한 포도밭은 몇 가지 중요한 이점을 얻을 수 있다.
안데스 산맥으로부터 얻는 깨끗한 물, 아르헨티나의 뜨거운 햇살로부터 포도를 식혀줄 수 있는 신선함, 연간 200-250mm 강우량과 건조함까지 

이와 같은 환경에서 가장 성공리에 재배된 품종은 적포도인 말벡이다. 본래 프랑스가 원산지인 말벡은 유럽인에 의해 아르헨티나로 넘어왔다가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품종이 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와인

어떤 와인이 좋은 와인인가? 

싸고 맛있는 와인이 좋은 와인이다.

와인 애호가들은 싸고 맛있는 와인을 찾기 위해 평생을 보낸다. 


와인이 비싼 이유는 무엇인가?

와인은 그림과 비슷하다.
같은 물감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더라도 그리는 사람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듯이 와인도 누가 어디에서 만드는 가에 따라 달라진다. 

보르도나 부르고뉴 와인이 비싼 이유 중 하나는 해당 지역의 와인이 너무도 유명해져 땅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남아공에는 보르도나 부루고뉴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훌륭한 와인을 만드는 양조자들이 많다.
그리고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선택을 잘하면 싸고 맛있는 와인을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사토 무통 로칠드

프랑스 보르도 5대 사토 중 하나인 사토 무통 로칠드에는 와인 애호자들이 좋아하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61개 사토를 1등급부터 5등급까지 분류한 보르도 그랑 크뤼 클라세는 1855년 만들어진 이래 단 두 번의 예외를 제외하고 무려 2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변함없이 그 리스트가 이어져 오고 있다. 


사토 무통 로칠드는 1855년 등급이 제정될 당시에는 2등급에 랭크됐던 와이너리다.
당시 오너였던 나다니엘 드 로칠드는 이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와인을 1등급으로 올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사토 무통 로칠드가 1등급으로 승격된 것은 무려 100년이 지난 후, 필립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그가 이루어 낸 몇 가지 혁신이 1등급으로 승격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첫 번째: 요즈음 프랑스 와인 레이블에 표시하는 ‘사토에서 병입 했음’을 최초로 도입했다.
당시에는 포도를 재배하여 양조한 뒤 오크통에 담아서 네고시앙에 넘겼기 때문에 그 이후의 품질에 대해서 100% 보장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필립은 포도 재배에서부터 양조, 병입까지 직접 사토 내에서 함으로써 품질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었다. 


두 번째: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구할 수 있는 무통 카데를 탄생시켰다.
1930년부터 이어지는 3년 동안 빈티지가 너무 좋지 않아 무통 로칠드를 만들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필립은 무통 로칠드 대신 무통 카데를 출시했다.
무통 카데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성비 높은 와인이 되었고 지금도 그 명성은 여전하다.


세 번째: 필름은 그의 와인을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서 유명한 디자이너 장 커를뤼를 고용해 1924년 산 사토 무통 로칠드의 특별한 레이블을 디자인하게 했다.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 레이블의 시초다.
이때부터 현재까지 매해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의 작품이 무통 로칠드의 레이블로 등장하고 있다.
레이블 제작에 참여한 작가로는 미로, 브라크, 피카소, 워홀 증이 있다. 

이처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결국 사토 무통 로칠드는 1973년 1등급으로 승격되는 역사적 순간을 맞이했다. 

 

 

세기의 와인 대결

1976년 프랑스 와인이 세계 최고라는 것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때, 영국 와인 전문가인 스티븐 스퍼리어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유명 와인들과 프랑스의 전설적인 와인을 모아 블라인드 시음회를 열었다. 

시음단은 모조리 프랑스인. 

하지만 이 테이스팅에서 레드와 화이트 부분 1위를 차지한 건 미국 와인이었다. 


그 당시 레드 와인 부문에서 1위를 한 스태그스 립(Stag’s Leap)은 미국에서 7.49달러에 판매되었고, 2위를 한 사토 무통 로칠드가 25달러에 판매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패널들은 이 결과에 충격을 받았고 스티븐 스퍼리어는 프랑스 와인에 누를 끼쳤다는 이유로 1년 동안 프랑스의 명망 있는 와인 테이스팅 투어에 참석하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해프닝이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타임지의 조지 테이버 기자의 역할이 컸다.
스퍼리어는 시음회에 많은 기자들을 초청했지만 유일하게 조지 테이버 기자만 참석을 했다. 
그가 보도한 <파리의 심판>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품질을 전 세계에 알리는 신호탄 역할을 했다. 

 

세기의 충격이라 할 만한 파리의 심판이 치러진 뒤, 프랑스는 도저히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1986년에 파리의 심판 10주년을 기념해 또 한 번의 블라인드 와인 테이스팅이 개최되었다. 

이번만큼은 왕좌를 미국에 내주지 않겠다는 각오로 시작되었지만, 1위를 거머쥔 와인은 미국의 클로뒤 발 1972년 빈티지였다. 

이번만큼은 콧대 높은 프랑스인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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