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속의 이방인
어둠이 내리는 8시경 바 구석 자리에 노트북을 켜고 경비정리와 글쓰기를 하고 있는
현태의 어깨를 빨간 가죽셔츠로 양껏 멋을 낸 아가씨가 쳐 눈길이 마주치자,
“내가 여기 자리를 사용해야 하니 비켜줘…?”
“왜?”
“여기에 오늘 행사를 위한 장비를 설치해야 하니 일을 계속해야 하면 지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줘.”
죄 없는 세입자가 주인에게 쫓겨나는 신세가 된 현태는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스마트폰과 노트는 손에 들고 식당으로 내려가니
한 남자애가 스파게티를 만들어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고
입구 테이블에는 젊은 남자 하나가 여자애들을 꼬시기 위해 열심히 설을 풀고 있었다.
글쓰기 작업을 마치고 다시 찾은 바,
현태가 앉았던 구석자리는 DJ장비가 설치되어 있고 빨간 셔츠의 여자애는 디스크 쟈키가 되어
현란하게 춤을 추며 왼손은 하늘을 향했고 오른손은 능숙하게 장비들을 다루며 댄스 음악을 뿜어낸다.
이 음악에 맞추어 10여 명의 여자 아이들이 춤 삼매경에 빠져 있다.
잠시 후 거구의 남자애가 친구들과 바를 가로질러 가다 멈추어
두 손을 의자에 놓고 하마 궁둥이 같은 엉덩이를 좌, 우로 흔들며 엉덩이 춤을 춘 후
밖으로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맥주 한잔을 주문해 이방인의 눈으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현태에게
옆 테이블 젊은이들이 합석을 제안해 자리를 같이 하니,
“너 어디서 왔고, 뭐 하는 사람이야?”
“나는 한국인이고 퇴직한 후 딸아이와 유럽을 여행 중이야.”
“그래 좋겠네.”
그러고는 대화가 단절되어 어색한 시간이 지나자,
한 아이가 현태와 춤을 추려 시도했지만 현태의 어눌한 동작을 보는 순간 멈추고 자기 자리로 가 앉았다.
군중 속에서 다시 이방인이 되어 버린 현태는 이런 어색한 순간은 피하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에
남은 맥주를 비우고는 도망치듯 어색한 자리를 빠져나왔다.
아침 5시에 알람을 맞추어 두었지만 4시 10분에 눈을 뜨고 누워 있으니
재인이 현태 침대로 와 출발을 알렸고 등에는 배낭이 메여 있어
서둘러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와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역으로 이동했다.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한 열차는 브뤼셀에 멈추자
런던행 유로스타를 타기 위해서는 유로스타 터미널로 이동해야 했다.
공항에서 거치는 절차 즉 승차권 검사, 수화물 검사(X-Ray 검사 포함),
여권 심사를 거친 후 면세점을 통과해 유로스타 열차에 탑승했다.
열차가 속력이 붙자 서비스 카트를 끌고 두 명의 승무원이 조식 서비스를 시작하자 현태가 용기를 내어,
“We need to pay?”라 물으니
“No, 조식은 포함이야.”
“생각지도 않았던 조식이 제공되니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데.” 라며 재인을 보니
재인의 얼굴에도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호스텔 4인방에 짐을 넣어 놓고 걸어서 도착한 곳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
이곳은 미술사를 공부하기에 좋은 곳이라 하루 시간을 내어 천천히 둘러볼 계획이었지만
무료입장이니 오늘은 맛보기 관람을 하고 필요하면 다시 시간을 내어 둘러보기로 했다.
9호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를 시작으로
43호관의 고호의 <해바라기>를 만나니
어제는 암스테르담에서 박물관을 찾았고
오늘은 런던에서 작품을 대하니 괜히 성공적인 미술사 입문식을 치른 것 같다.
갤러리를 나오니 시장기가 도는 시간,
근처 차이나 타운 한식당 <한 끼>에서 김치찌개와 떡볶이를 주문하는데
서빙하는 여자아이가 계속 영어로 대화를 시도해 한국사람이 아닌가 의심할 무렵
김치찌개와 함께 나온 숟가락이 자기로 만든 손잡이가 굽어져 있다.
의신의 여지없이 중국인이라 확신한 현태가,
“너 중국 사람이니?”
“아니.”
“그럼 어디 사람이야?”
“싱가포르.” 라며 돌아서 가버린다.
김치찌개 1그릇, 떡볶이 1그릇, 콜라 한 병, 그리고 맥주 한잔에
7만 원 가까운 돈을 지불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식당을 나오니,
“아빠! 아무한테나 국적 들이대지 마세요,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 있어요.”
현태의 귀에는 재인의 충고는 들리지 않고
런던의 비싼 물가에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