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모던
템즈 강가에 위치했던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해 설립된 현대미술관 데이트 모던,
입구를 들어서자 옛 발전소 터빈실이었던 넓은 공간이 시원하게 입장객을 맞이했다.
이곳은 자유로운 공간으로 아이들이 뛰어놀기도 하고 관람에 지친 사람들이 앉아 쉬기도 하는 곳으로
미술관은 정숙하고 근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어 놓은 곳이다.
넓은 공간 안쪽에는 다음 전시를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현대자동차가 후원한다는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데이트 모던을 나와 템즈강을 끼고 찾아간 곳은 멕시칸 음식점,
타코 세트와 맥주를 시켜 먹었지만 양이 많다.
모히토까지 한잔 더했지만 아까운 타코 2조각을 남기고 나왔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자 템즈강 주위로 사람들이 많아졌고
건물과 다리에 조명이 밝혀지자 런던의 야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런던 아이에서 시작해 천천히 걸으며 야경을 감상하다 빅벤 근처에 도착하니
템즈강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 너머로 보던 국회의사당 건물의 야경과 너무 닮아
런던의 야경을 바라보며 부다페스트 여행의 향수에 빠졌다.
오전 시간 공유공간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현태에게 다가온 재인은 런던 브리지를 보겠다며 떠났고
조금 후 카톡을 통해 캐나다 친구를 만났으니 기다리지 말고 혼자 점심을 먹어라는 연락이 왔다.
이가 아니면 잇몸이라고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했다.
방안에 있는 컵 라면을 챙겨 부엌으로 내려가 냉장고에 넣어둔 쌀을 꺼내
삶은 밥과 컵라면을 만들어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30분가량 분주히 움직이지 식탁 위에는 정체가 애매한 삶은 밥과 컵라면이 놓였고
산 미구엘 맥주까지 준비해 먹기 시작하면서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춤을 춘다.
결혼 후 35년이 가까워졌지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현태를 챙겨준 아내,
2주일 만에 현태를 두고 떠나 버린 재인,
한 사람의 헌신이 고마웠고 두고 떠난 자가 얄밉지만 홀로 설 기회를 제공해 미워할 수만 없다.
그래! 둘 다 소중한 나의 가족이다.
이번 여행에서 런던은 계륵 같은 존재였다.
일정에 넣으니 순조로움 흐름에 방해가 되었고 유레일패스를 사용하더라도 유로스타 예약 시
추가요금이 부담스러웠으며 숙소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고 그마저 방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계륵 같은 런던을 쉽게 뱉을 수 없던 이유는
유럽여행이 처음인 재인이 원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어렵게 선택되고 비싼 물가에 주눅 든 런던이지만
머무는 내내 좋은 날씨에 비싼 숙소 4인실 방을 둘이 사용하는 특혜를 누렸고
보고 싶은 공연까지 야무지게 챙겨보았으니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료로 방문한 내셔널 갤러리와 데이트 모던,
재인이 만들어준 생애 최초의 밥상
그리고 현태의 홀로서기기 시작된 런던은 이제 기억 속에 한 점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