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태와 재인의 유럽여행 70일, 서유럽 편(19)

쫓겨난 에어 B&B.

by 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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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에어 B&B.

재인이 톨레도와 세고비아로 그룹투어를 떠난 한가한 아침시간

밀린 글과 사진을 정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샤워까지 마치니 시장기가 돌아

솔 광장 근처 맛있는 빵집을 갈까? 대구튀김에 맥주 한잔 할까?
행복한 생각을 하며 옷을 갈아입는데 누군가 입구 문을 다급히 두드렸다.


문을 열고 철 창살문은 닫아 둔 채로 밖을 보니 50대 스페인 여자가 화 난 표정으로

손가락 10개를 펴 보이며 나가라는 시늉을 했다.
이어서 청소하는 시늉을 하기에
‘아! 청소하러 온 모양이구나.’ 생각하며
오늘은 청소할 필요 없으니 내일 Check-Out 후에 청소하라며 문을 닫았다.


그런데 가야 할 사람이 문 앞에서 전화하는 소리가 들리고 같이 온 일행과 대화를 나누며 떠나지 않는다.
‘저러다 가겠지’
다시 문을 두드려, 문을 여니 창살 사이로 중국어를 적은 스마트폰을 내민다.
“I am not Chinese, Korean.”

문을 닫으면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감이 잡히지 않는다.

잠시 후, 다시 문을 두드려 사연이 있을 것으로 판단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덩치 큰 중년 남자와 스페인 여자 두 명이 문 앞에 서서 방을 비우라는 시늉을 계속했다.

잠시 밖에서 기다리라 하고 다급히 재인에게 보이스 톡을 신청해,

“지금 어디야?”
“방금 톨레도 도착해서 관광 시작하려 해요. 왜요?”
“지금 톨레도 관광이 문제가 아니다.
이곳은 지금 난리다.
남자 한 사람과 여자 둘이 문 앞에서 방 빼라고 한 시간 넘게 저러고 있다.
호스트에게 연락해 빨리 해결해 달라고 해라.”
“예? 무슨 그런 일이 있죠. 알았어요. 호스트와 연락하고 전화드리게요.”


호스트와 통화를 한 재인은
“아빠! 큰일 났네요.
우리 Check-out 날짜가 오늘이고 리스본 가는 기차도 오늘 오전에 예약되어 있고

리스본 숙소도 오늘부터 예요.
이제 우리 어떡해요?”
“오! 마이 갓.”

순간 욱하며 치미는 감정을 자제하며
“지금 가이드에게 마드리드로 돌아오는 최고 빠른 방법을 알아보고 숙소로 돌아온나.

숙소로 돌아오는 방법이 정해지면 다시 연락해라.”


전화를 끊은 현태의 입에서는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며
‘저에게 정말 왜 이러시는 겁니까?
평생 뼈 빠지게 모은 돈으로 무거운 배낭 짊어지고 여행 다니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싫어 신 겁니까?
아니면 심심해서 불쌍한 놈 잡고 장난질하시는 겁니까?
심심하시면 저 같은 불쌍한 놈이 아니라

권력과 재력을 가지고 약한 사람들 등치고 괴롭히는 그런 놈들에게 할 것이지.
죄 없는 저에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정신을 차리고 방을 둘러보니 부엌과 거실은 어떻게 해 보겠는데 재인의 짐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먼저 거실 탁자 위에 놓인 과일과 빵 3개를 들고 밖으로 나가
“정말 미안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내일 Check-out인 줄 알았는데 오늘이네요.
이 과일과 빵을 드시고 기다리시면 최대한 빨리 짐을 빼 드리겠습니다.”
현태의 말과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지자

두 아주머니는 과일과 빵을 받아 들며 기다릴 테니 천천히 짐을 정리하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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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거실에 있는 현태의 짐들을 배낭에 넣고, 부엌과 샤워실 물품은 에코 백 하나에 몰아넣었다.
재인의 방 짐들은 침대 위에 모아 놓고 큰 것부터 배낭에 넣은 후

남은 것들을 에코 백 두 개에 쓸어 담으니 입구 옆에 배낭 3개 에코 백 2개가 덩그러니 놓였다.

다시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 2개를 꺼내 기다리던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짐정리를 마쳤으니 들어가셔도 된다고 하자 두 사람이 들어가 청소를 시작했다.

집에서 쫓겨난 강아지 신세가 된 현태는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재인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어디야?”
“지금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열차 안이에요.”
“여기 짐정리는 마쳤으니, 인터넷으로 리스본 가는 버스 편 좀 알아봐.”
“알겠어요.”


다행히 리스본행 버스는 3시 15분과 야간 버스가 있었고

재인만 일찍 도착한다면 3시 15분 버스를 탈 가능성이 보였다.
“마드리드에 도착하면 대중교통 이용하지 말고 택시를 타고 숙소로 와

택시기사에게 숙소 앞에서 짐 실을 동안 기다려달라고 부탁하고.”
“예, 그렇게 할게요.”


청소를 마치자 고참 아줌마가 현태를 불러 안으로 데려갔다.
‘아! 또 무슨 일이지. 늦게 방을 빼 추가 요금을 달라는 건가.’
“우리는 청소를 마쳤으니 이제 돌아 가.
밖에서 그렇게 쭈그려 있지 말고 들어와 소파에 얌전히 있어.
다음 예약 손님이 올 때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방안에 있어도 되지만

대신 다음 손님을 위해 깨끗하게 유지해 줘야 돼.”

고마운 마음에 소파에 앉았지만 바늘방석이라 도로에 나가 기다리니
“아빠! 4분 후 숙소에 도착해요.”

리스본행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2시 조금 넘은 시간, 먼저 짐을 구석진 곳에 모아 놓고,

“아빠가 짐을 지킬 테니 가서 표를 사 와.”
“아빠가 가서 사 오면 안 돼요.”라는 재인의 표정에는 오늘 실수로 인한 충격의 눈빛이 보였다.
“그럼, 내가 표를 사 올 테니, 짐을 지키고 있어.”


매표소로 다가가 창구 앞 직원에게
“Can you speak English?”
“No.” 라며 제일 왼쪽 창구 쪽을 가르쳤다.

“리스본 가는 가장 빠른 버스가 몇 시에 있어?.”
“15시 15분 출발하는 버스가 있어.”
“그 버스표 2장 가능해.”
“그럼 가능해. 두 사람 합해 60유로.”
“질문해도 돼?.”
“그럼.”
“오전에 사둔 버스표가 있는데… 그 표로 요금을 대신할 수 없을까?
“No.”라며 웃자
“그러면 반액이나 30%라도 환불은 안돼.”
이번에는 단호하게 “No.”라며 잘라 말했다.


버스표를 손에 쥐니 이제는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렸고

구석진 곳에 자리 잡아 짐정리를 시작하는 재인을 두고 샌드위치와 음료를 구입해 왔지만

재인은 입맛이 없는지 입에 대지 않았다.

그리고 재인이 짐 정리를 마치자

“아빠! 어제 마트에서 사서 냉장고 위에 두었던 샴푸와 린스 그리고 치약, 칫솔은 챙겼어요?
“아니, 깜박하고 그냥 놓고 왔네.”
냉장고 위에 두고 온 물건들이 피난길 혼란 통에 손을 놓쳐 잃어버린 어린 자식 마냥

현태의 마음을 짠하게 했다.

숙소 앞 도로.jpg
마드리드 숙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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