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력의 포르투
쫓기다시피 마드리드를 떠났지만 리스본은 따뜻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런던과 파리의 높은 물가에서 받은 여행자의 서러움을 달래 주었고
작은 골목골목이 반갑게 맞아주었으며
산타루치아 전망대에서 본 풍경은 오르세나 프라다 미술관에서 받은 감흥 못지않은 감동을 주었다.
다른 어떤 여행지보다 3박 4일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 아쉬웠지만
다음 목적지인 포르투에 대한 설렘이 이 아쉬움을 잊게 했다.
리스본에서 기차로 3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포르투는 낯선 곳은 아니었다.
10여 년 전 아내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며칠 쉬어 갔던 곳이라
그때의 좋은 기억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숙소는 현관 입구부터 지금까지 숙소와 달랐다.
번호 키를 눌리자 현관문이 열렸고 계단을 올라 숙소 문 옆에 비밀금고 번호를 맞추니 숙소키가 나왔다.
이곳에 키를 넣어두고 다니면 잃어버릴 염려가 없어 좋았다.
숙소에서 상 벤투역까지는 걸어서 30여분 걷기 좋아하는 두 사람에게는 적당한 거리다.
지나가는 사람 구경, 예쁜 가게 구경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상 벤투역, 주위는 대공사가 진행 중이라 보행이 불편했지만
2만여 장의 타일로 만든 그림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역에서 동 루이스 다리까지는 여행자들이 붐비는 곳이다.
시장기가 몰려왔지만 대부분의 식당이 브레이크 시간이라
강가의 골목길 식당에 대한 지난 기억을 쫓아 찾아가니
문이 열려 있고 빈 테이블이 우리를 반긴다.
문어 요리와 양갈비를 주문해 이른 저녁을 먹으니
아름다운 동 루이스 다리와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10년 전 아내와 찾았던 식당에서 딸아이와 식사를 하고 강변 거리를 걸으니 감회가 새롭다.
거리 중앙에 큰 박스를 놓고 19세기 사진기로 사진을 찍어 신문기사처럼 인쇄해 주는 아가씨가 있어
사진을 찍으니 요금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 주고 싶은 만큼 상자에 넣으라 한다.
상자 안에는 동전과 지폐가 어우러져 있는데 20유로 지폐가 틈틈이 보였다.
1유로 동전을 손에 쥐었다가 5유로를 지불하려 했지만
5유로가 없어 10유로 지폐를 상자 속에 넣고는 저녁 내내 동전을 넣는 건데… 라며 아쉬워했다.
오랜만에 숙면을 취하고 점심마저 숙소에서 챙겨 먹고 찾아간 곳은 볼량 시장,
10년 전 방문 시 공사 중이었는데 이제 새 건물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커피를 사서 계단에 앉아 마시니 이제 여행자가 다 됐다.
이곳에는 다양한 식재료와 채소 등을 팔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와인을 잔으로 파는 가게,
끊임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어 와인을 주문해 마시고 빈 잔을 돌려준다.
오늘 숙소에서 포르투 렐루 서점을 예약했다.
서점 방문에 돈을 지불하고 예약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예약 시간 전에 도착하니 먼저 온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린다.
시간에 맞추어 입장해 들어가니 고풍스러운 서점 내에 많은 사람들이 사진도 찍고 물건도 구매한다.
영화 해리포터의 모티브가 된 서점인 만큼 해리포터에 관한 책과 자료들이 많았고
좁은 서점에 너무 많은 사람이 한 번에 몰리면 안전 문제가 발생해
예약과 인원 제한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명에 8유로인 입장료가 아깝지는 않았다.
고풍스러운 서점이라 사진 찍기 좋았다.
렐루 서점을 나와 언덕 위 바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며 옛 생각에 잠겼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직장을 구해
자취하는 친구와 방을 같이 쓰며 시작한 서울생활,
그 후 결혼하고 강남에 있는 직장으로 출퇴근하던 시절,
명절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이 계신 부산으로 내려왔다
귀경길 복잡한 지하철에서는 짐 따로 사람 따로, 등에 업힌 아이들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득한 옛 기억들이 어제 일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보니 파리의 지하철에서 만났던,
젊은 부부의 모습이 30년 전 나의 모습이었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저녁을 예약한 식당에 도착해
부드러운 문어 요리와 소금 만으로 간을 맞춘 스테이크를 먹으니 참 맛있다.
하지만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스테이크 대신 꿈을 먹었고,
편안함과 여유로움 대신 젊음이 있어 행복했다.
포르투의 거리는 옛 생각에 젖어들게 하는 마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