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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Oct 12. 2023

현태와 재인의 유럽여행 70일, 남유럽 편(10)

로마의 한적한 하루

이태리에서는 식사를 마치면 에스프레소 한잔 하는 시간이 즐겁다. 
작은 잔에 담겨 나오는 커피를 코 끝을 가져가 향을 맡으면 진한 커피 향이 전해온다.
한 모금 머금으면 쓴맛이 강하게 입안에 퍼지지만 곧 쓴맛은 구수한 맛으로 바뀐다. 
 

쓴 맛이 강할수록 구수한 맛의 진가가 더 드러나 보이는 것은 우리의 삶과 닮았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재인도 이태리에서는 에스프레소를 시켜 설탕을 넣어 마시는 것을 보면 

나만 에스프레소의 매력에 빠진 것은 아닌가 보다. 

로마의 한적한 하루

9시가 가까운 시간 숙소 방안은 여전히 어둡다. 
개인 조명을 켜고 가방을 챙겨 공용 작업실로 내려오니 비번을 눌려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리셉션에 들러니 매일 비번을 바꾼다며 새로운 비번을 알려준다. 


일 분이 아깝다며 부지런히 로마를 둘러보는 재인,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럴 체력도 안된다. 

‘그래! 나는 나에 맞는 여행을 하는 거지. 
오늘은 아무 계획 없이 로마에서 하루 빈둥거리는 것도 재미있겠는데…’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바에 커피를 마시려 들러니 처음 보는 남자가 
“여기 아침 메뉴 중 2번이 맛있어 먹어봐.”
“지금 11시가 넘었는데…”
“11시 반까지 아침을 제공해.”
아침을 신청하니 시간이 지나 커피 한잔을 들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하염없이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며 시간을 쪼갠다. 


붐비는 시간을 피해 중국 화교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가니 

지난번 본 직원이 아는 척하며 “오늘은 혼자 온 거야.”라며 말을 건다. 
자리를 정해 주며 친절하게 주문도 받고 이웃 마냥 편하게 대한다.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어슬렁거리며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다시 호스텔 바 야외 테이블에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쪼갠다. 


오후 2시가 넘었지만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또 동네를 어슬렁거린다. 

오후 4시 반 방으로 올라가 샤워를 하고 호스텔 바에 앉아 맥주 한잔을 시켜 놓고 하염없이 앉아 멍을 때린다. 


재인이 돌아와 근처 한국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으니 하루해가 저문다. 
볼 것 많고 할 것 많은 로마에서 

이렇게 나는 바쁘게만 살아온 내 지난 인생에 대해 소심하게 반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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