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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Oct 13. 2023

현태와 재인의 유럽여행 70일, 남유럽 편(11)

무서운 놈, 시끄러운 놈, 그리고 조용한 놈

무서운 놈, 시끄러운 놈, 그리고 조용한 놈

밤늦은 시간 호스텔 바에서는 가라오케 노래 경연이 펼쳐졌다. 
중앙 무대에는 DJ장비가 설치되었어 키가 큰 남자 DJ가 노래를 선곡했고 웃옷 단추를 반 이상 풀어 가슴을 연 남자와 젊은 여자 한 명이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따라 하거나 유연한 몸동작으로 춤을 추며 흥을 돋운다. 


대부분의 신청자들은 혼자가 아닌 2명이나 3명으로 팀을 꾸려 무대에 올라와 노래를 불렀고 아바의 <댄싱 킹>과 <기미 기미 기미>는 아는 노래라 흥이 났다. 

이곳에서 같은 방 캐나다 친구들은 물 만난 고기 마냥 한 명은 야외 테이블에서 다른 한 명은 무대 아래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었고 이방인처럼 서 있는 나에게 다가와,

“너 노래할 줄 알아?”
“아니, 이런 분위기는 낯설고 처음이야. 너는 노래 안 해?”
“벌써 무대에 올랐고 다음 노래도 신청해서 한 곡 더 할 거야.”
그리면서 캐나다 친구들은 2시가 넘어서야 방으로 돌아왔다. 

캐나다 친구들이 떠난 침대에는 그들의 찐한 흔적만 남아 있었다.  
“저 침대의 주인은 누구일까? 
캐나다 친구들보다는 나은 친구들이 왔으면 좋겠는데…”
“그걸 누가 알겠어요. 

캐나다 친구들도 말을 해보니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여자를 데리고 2층 침대에서 밤새 그러면 아래에 머문 여자애는….”
“그렇네. 그 생각을 못했네. 

아래 침대에 머문 여자애를 생각하니 가여운데…”
“그렇죠. 하지만 다 지난 일이고 오늘은 새로운 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겠죠.”

가여운 여자애가 머물던 1층 침대에는 덩치 큰 남자가 들어왔다.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자 빠른 영어로 말을 시작하는데 반은 알아듣고 반은 흘려듣는다. 
하지만 한번 터진 수다는 멈출 줄 모른다. 


바에서 만난 그의 주위에 몇 사람이 앉아 있는데, 이빨을 털고 있는 사람은 오직 덩치 큰 남자 

지나가는 나를 쳐다보고 인사하고는 계속 이빨을 턴다.

다음 날 호스텔 바 야외 테이블에서 만난 덩치 큰 남자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 1명, 여자 2명을 놓고 테이블을 넘어서 이빨을 턴다 

10분 가까이 지켜보는 동안 이빨을 터는 자는 오직 한 사람 덩치 큰 남자.
무서운 놈이 떠난 빈자리, 시끄러운 놈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만난 덩치 큰 남자
“왜 엘리베이터를 이용 안 해.”
“나는 습관적으로… 부라부라.” 시작된 말이 계단을 내려오는 내내 뒤통수 쪽에서 들린다. 

한번 열면 닫히지 않는 그의 입담은 장소와 상대를 불문한다. 


밤늦은 시간 방으로 들어온 덩치 큰 남자 정중하게
“나는 내일 다른 도시로 떠나야 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짐을 사야 하니 불편하더라도 이해해죠.”
“괜찮아 우리도 내일 아침은 일찍 나가볼 생각이니 신경 쓰지 마.”
그렇게 시끄러운 녀석은 떠났고 그 빈자리에 고요만 남았다. 

무서운 놈과 시끄러운 놈이 떠나자 그동안 존재감이 없었던 조용한 놈이 보이기 시작했다. 
항상 자신의 침대를 지켰고 다른 사람과 달리 시트 커버로 침대 주위를 둘러놓아 안에 사람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신기하게도 분명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나왔는데도 바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야구모자가 보였고 분명 방에서 보았는데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그를 보고는 놀란다.


바티칸 베드로 성당을 나와 돔 관람 티켓을 사는 긴 줄. 

저만큼 앞에 빨간 모자가 보이고 아니나 다를까 조용한 놈이 우리보다 훨씬 앞에 서있다. 
“분명 우리 나올 때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그러게 말이에요. 뭔가 내공이 느껴지는데요.”


숙소에서 만난 조용한 놈,
“오늘 너 베드로 성당 돔에 올라갔지?”
“그래,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지?”
“항상 너를 감시하고 있으니 조심해.ㅎㅎ, 아니 우리도 베드로 성당을 방문했고 줄을 서 기다리는 너의 모습을 본 거야.” 

“그래 돔도 좋았지만 바티칸 박물관이 더 좋았던 것 같아.”
“그럼 오늘 바티칸 박물관도 보고 온 거야. 

티켓은 어떻게 구했지?”
“베드로 성당에서 했듯이 줄을 서 기다리다 티켓을 구입했어.”


아! 무섭고, 시끄러운 놈만 대단한 줄 알았는데 

자신의 갈 길을 정확히 알고 묵묵히 가고 있는 조용한 놈도 무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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