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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Oct 14. 2023

현태와 재인의 유럽여행 70일, 남유럽 편(12)

바티칸

사랑하는 아들에게
바티칸 시국의 하늘은 맑고도 청명하구나.
긴 기다림 끝에 베드로 성당에 들어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보고 

성당 내부의 조각들과 청동으로 만든 중앙 제단에 머무니 이 위대한 성당의 모습이 십자가를 닮아 있고 

이 청동 제단이 십자가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려함으로 따지면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빼놓을 수 없지만 역사와 전통, 

그리고 교황이 머무르는 이곳에 있는 성당의 존재감은 특별하지 않을 수 없구나. 

성당 내부를 둘러보고 미켈란젤로가 로마의 판테온과 피렌체의 두오모를 보고 만든 돔(Cupola)을
좁은 계단을 통해 오르니 힘이 들었지만 돔의 천정화와 로마 시내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좋았다. 


나오는 길에 바티칸 우체국 많은 사람들이 엽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데 

아빠는 너에게 엽서를 보낼까 말까 하며 얼마나 망설였는지 모른다. 
그러다 엽서를 포기하고 우체통 옆 길가에 앉아 

바티칸의 푸른 하늘에 하얀 색깔의 펜을 들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아들아
아빠는 지금까지 두 종류의 삶을 살았다. 
하나의 삶은 빠른 속도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의 삶이었고 또 다른 삶은 기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느린 삶이다.
그런데 아빠의 두 삶을 지금 나의 두 자식들이 그대로 살아가고 있구나. 
너는 기차 안에서의 삶, 너의 동생은 느린 삶.


이번 여행은 엄마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어 가능했지만 너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눈코 들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너를 두고 배낭을 메고 

한창 일하고 결혼을 준비해야 하는 동생을 데리고 장기 여행이라니…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여행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빠가 기차 안에서의 삶을 사는 동안, 나의 삶은 옳지만 다른 삶은 틀렸다는 착각 속에 살았다. 
이제야 삶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고 

이러한 깨달음은 지금까지 나의 삶의 가치관을 송두리 채 흔들어 놓았다. 


오늘도 로마의 하늘 아래 나 자신을 돌아보지만, 다시 만나는 몰랐던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 
다행인 것은 건강하고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며 

이 여행이 두 사람의 삶에 든든한 기둥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이다.


바타칸의 노란 우체통에는 쉴 새 없이 엽서가 담기고 엽서를 넣는 사람이 기념사진을 찍고 지나간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나는 서울 하늘 아래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아들의 모습을 본다.  

아들아! 사랑하고 보고 싶구나. 

                                                

                                                                                 바티칸 우체국 앞 푸른 하늘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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