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편
5월 중순 정원에는 잘 가꾼 장미가 활짝 피어 있었다.
늘 만나 가볍게 소주잔 기울이던 편한 사이였는데
거동이 불편하다는 소식을 듣고도 만나기를 미룬 지
보름이 되었다.
두려웠다.
처남의 아픈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려웠고,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가 두려웠고,
그리고 이별이라는 현실이 두려웠다.
거실 탁자에 앉아 있는 처남의 얼굴에는 검은빛이 보였다.
두 시간 남짓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자주 얼굴 보자는 이야기가 귓가에 남았고
아들에게 넘겨준 회사를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처남이 일흔을 넘기지 못한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어릴 때 장인어른이 세상을 떠나
나에게는 장인어른 같고,
형님 같고,
친구 같은 처남이었다.
나는 하루아침에 장인어른을 잃었고, 형님을 잃었고,
좋은 친구를 잃었다.
젊었을 때 폐를 상한 처남은
준수한 용모 속에 가린 내면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왔다.
조금만 걸어도 호흡이 가빠 걷는 걸 두려워했고
대신 좋은 음식에 술 한잔 하는 시간을 즐겼다.
천주교 신자인 처남의 시신은
김해에서 남천성당으로 옮겨졌고
다음 날 입관되어 양산 하늘공원에 묻혔다.
나는 30대 초반에 60도 안 된 어머니를 잃었고
혼자된 아버님은 그 후 20년 더 사시다 돌아가셨다.
부모님의 잃는 것 역시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지만
같은 세대인 처남이 세상을 떠나니
또 다른 아픔이 가슴 밑바닥에서 차오른다.
오빠를 보낸 아내는 문득문득 소리 내 운다.
울음소리에 나의 슬픔도 밀려온다.
인간은 2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 번은 기억 속에서...
자신을 알았던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야
인간은 완전한 죽음을 맞이한다.
처남의 육체는 떠났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
그는 내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