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내 Jun 20. 2024

이탈리아 르네상스(3)

르네상스의 조각가

인간은 모두 내면에 하나의 작품을 감추고 있는 천연의 대리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위대한 작품을 끄집어내는 것도 결국 인간이다. 


미켈란젤로가 한창 활동하던 15세기의 피렌체는 메디치 가의 권력과 부가 정점을 찍으며 예술과 고전의 부활을 꿈꾸던 시대였다. 

당연히 피렌체는 온통 이탈리아 각 지역에서 가져온 질 좋은 대리석으로 치장되고 있었건만, 웬일인지 두오모 대성당에는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 하나가 40년간이나 버려진 채 구르고 있었다.


이 돌은 원래 디두치오(1418~1481)가 거대한 예언자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준비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대작을 해보지 않은 디두치오는 작업을 포기했고, 이후 안토니오 로셀리노(1427~1479)가 도전했지만 또다시 조금 하다 작업이 너무 어려워 그만두고 말았다. 

도나텔로(1386-1466) 역시 의뢰받았지만 그는 굴러다니는 돌덩어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거절했다고 한다.
돌은 또 10년간 방치되었다.

이렇게 이 손 저 손을 거치다가 스물여섯 살의 새내기 미켈란젤로에게까지 의뢰가 갔다. 

그런데 여러 조각가가 몇 번씩 내리치다 말았기 때문에 미켈란젤로가 작업을 시작했을 때 이 돌은 어떤 쪽은 두께가 너무 얇아져 있는 불규칙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이 돌을 보면서 안에 갇혀 있는 무언가가 상상되었다. 


그는 잘라내거나 다른 돌을 붙이지 않고 이것만 가지고 하나의 작품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돌과 씨름하며 3년여의 세월을 보냈다.

마침내 그는 이 돌덩어리에서 높이 5미터가 넘는 소년 하나를 끄집어냈다. 

바로그 유명한 <다비드> 상이다. 

다비드 상

르네상스가 추구했던 이상적인 고전의 비례를 실현하여 완벽한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 내는 아름다움,

미켈란젤로는 자신이 구상한 대로 돌을 깎은 것이 아니라 돌의 생긴 모양을 보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모습을 직관적으로 조각해 갔다. 


교묘하게 비튼 자세로 조각상을 깎아 얇아진 대리석 부분까지 전체를 이용해 소년 다비드를 끌어낸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위대함이란 손재주를 뛰어넘어 돌 안에 숨어 있는 작품을 감지해 내는 안목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미 조각상은 대리석 안에 들어 있었다. 

다만 나는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내어 원래 존재하던 것을 꺼내 주었을 뿐이다."



결국 한 분야에 있어서 최고의 장인이란 재료를 보고도 최종 산물을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는 예술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와인을 만드는 장인은 포도만 보고도 최종 산물이 어떤 맛을 내야 할지 안다. 

그 포도가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맛을 와인으로 끄집어 내주는 것이다. 

옷을 만드는 장인은 옷감을 보고 이미 드레스를 상상하고 기쁨에 잠긴다. 

요리사는 고기의 색만 보고도 어떤 요리를 해야 할지 안다.


이 걸작 <다비드>를 만드는 데 쓰인 돌이 바로 토스카나의 그 유명한 카라라 대리석이다. 

1991년, 우연이랄까 고맙다고 해야 할까? 

<다비드>를 이루고 있는 대리석을 과학자들이 낱낱이 분석할 수 있게 해 준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 정신없는 이탈리아 예술가가 망치로 <다비드>의 발끝을 내리진 것이다! 

<다비드>의 왼쪽 발가락 끝이 부서져 대리석 조각들이 떨어져 나왔다.


어떻게 복원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먼저 떨어져 나온 조각을 분석하기로 했다. 

500여 년 전 <다비드>를 만든 대리석이 정확히 카라라의 어느 지점에서 제공됐는지 추적해 세부적인 상황을 알아내면 복원과 보존이 더욱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현미경 분석 결과 채굴지는 카라라의 낮은 세 계곡 중 한 곳인 판타스크리티 채석장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불멸의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대리석의 품질이 너무 저급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돌이 조각되기 전 오랫동안 방치되었기 때문에 미세한 구멍들이 생겨 급속히 부식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미켈란젤로에게 조각가로서 최초의 명성을 안겨다 준 작품은 현재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피에타>이다. 

로마 교황청의 추기경은 스물세 살의 미켈란젤로에게 피에타의 제작을 의뢰했다. 

피에타란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이 끊어진 예수를 무릎에 앉히고 슬퍼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한다. 

미켈란젤로는 <피에타> 상의 성모 표정에 애끓는 모성을 그대로 담아내 인간의 감성을 자극했다. 


성스러움보다는 인간적인 슬픔으로 동시대 사람들의 공감과 찬사를 받은 것이다. 

여타의 종교 작품들과 달리, 예수가 중심이 아닌 인간 누구에게나 내재된 '어머니'라는 모성의 강조가 더욱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피에타> 역시 카라라에서 가져온 2미터가 넘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현재도 이 작품을 입체적으로 돌아가며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애석할 정도로 아름다운 조각상인 만큼 당대 사람들은 이것을 신출내기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열받은 미켈란젤로는 성모가 두른 띠에 '피렌체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제작'MICHEL AGELVS BONAROTVS FLORENT FACIEBAT이라고 새겼다. 
그래서 피에타는 어떤 작품에도 서명을 하지 않는 미켈란젤로가 이름을 남긴 유일한 조각으로 더욱 유명하다.


그런데 로마에서 2년 동안이나 이 작품에 매달려 완성했건만,  추기경이 갑자기 세상을 뜨자 계약했던 금액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 거대한 작품을 피렌체로 운반한다는 것도 엄청난 경비가 드는 일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그냥 남겨놓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성 베드로 대성당에 귀하게 모셔져 있는 <피에타>는 이처럼 젊은 장인의 작품을 날로 소유한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인류 최고의 걸작품으로 로마 시스티나 성당에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같은 회화도 남겼지만 스스로를 항상 조각가라고 생각했다. 

더 사실적으로 조각을 하기 위해 당시 금기시되던 인체해부에까지 몰두했던 미켈란젤로, 그래서인지
<다비드> 상은 정확한 비례와 골격, 근육을 갖고 있어 곧 움직일 것같이 사실적이다.


해부학에 정통했던 그에 대한 놀라운 일화가 전해진다.
1506년, 율리우스 2세(1443~1513) 때 로마의 콜로세움 옆에서 한 농부가 헬레니즘 시대 <라오콘> 조각상을 발굴했는데 오른팔이 겨드랑이에서 잘라지고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그 팔이 나오지 않자, 사라진 팔의 형태에 대해 추측을 하게 되었다. 



모두들 조각상의 자세나 정황상 팔을 쭉 펴고 있었을 것이라 하였는데, 서른한 살의 미켈란젤로는 조각상을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자신 있게 공언하였다.

"이런 근육의 움직임에서는 팔을 쭉 편 자세가 나올 수 없습니다. 

팔을 구부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과연 몇 백 년 후(1905년) 우연히 그 팔이 발굴되었는데 미켈란젤로의 말대로 구부리고 있는 게 아닌가? 

후대 사람들은 두 번 놀랐다. 

근육만 보고 자세를 알았던 미켈란젤로에게 한 번 놀라고, 근육을 그처럼 완벽하게 표현한 고대인의 해부학적 지식에 또 한 번 감탄했던 것이다.

 <라오콘> 상은 팔이 복원되어 현재 바티칸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울퉁불퉁한 한갓 바윗 덩어리에서 생명을 가진 예술품으로 다시 태어난 피렌체의 수많은 조각상들 사이를 걸으며 미켈란젤로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돌은 각각 모양이 다르다. 

반듯한 돌도 있고 모가 난 돌도 있지만 자연에서 저마다의 자리를 차지한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서로 모양이 다르지만 그 안에는 최고의 예술작품을 끄집어낼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 


하나의 못생긴 돌이 그냥 버려져 한구석에서 구르고 있다면 그 이유는 다만 그 돌을 다룰 수 있는 최고의 장인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몇 십 년간 방치되어 있던 애물단지에서 <다비드>를 꺼낸 미켈란젤로를 추억하며 나는 어쩌면 인간도 마찬가지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수업>의 작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1926-2004)가 쓴 문구 하나가 귀에 울린다.
"누구에게나 내면에는 위대함의 씨앗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완벽한 조각상이 누군가가 자신을 꺼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위대한 사람이란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특별한 무엇인가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는 단지 가장 뛰어난 자신을 드러내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제거해 버렸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이탈리아 르네상스(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