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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Aug 05. 2024

바빌론의 낙타상인

바빌론 부자들의 돈 버는 지혜

바빌론의 낙타상인 다바시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지난 과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젊었을 때 나는 아버지에게 말안장 만드는 방법과 장사하는 법을 배웠네.
아버지 가게에서 일하면서 결혼도 했지.
성실하게 열심히 일했어.
그렇지만 특별한 기술이 없어서 돈벌이는 신통치 않았네.
간신히 먹고살 정도였지.
나는 하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돈이 없었네.
 
그동안 성실하게 일한 덕분에 주변 사람들은 나를 신뢰했네.
마음만 먹으면 외상으로 물건을 사거나 돈을 빌릴 수 있었어.


그때부터 사치를 부리기 시작했지.
그때는 젊고 경험이 부족했네.
버는 것보다 많이 쓰면 신이 벌을 내린다는 사실을 몰랐어.
나는 마음껏 멋진 옷을 사고 아내에게도 사치품을 사주었네.
한동안은 빌린 돈을 잘 갚았고 문제가 없었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했어.
내가 버는 돈으로는 빌린 돈을 갚을 수 없게 됐지.
빚쟁이들이 돈을 갚으라며 독촉하기 시작했네.

내 삶은 그렇게 망가지기 시작했어.  


나는 급한 대로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 돌려막았네.
하지만 친구들의 돈을 갚을 방법이 없었어.
상황은 점점 나빠졌네.
아내는 더는 나와 못 살겠다며 친정으로 돌아가 버렸지.
그러자 나는 바빌론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네.
다른 도시로 가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보기로 했지.
 
그 후 2년 동안 도시를 돌아다니며 장사하는 상단에서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어.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지.

나는 좌절했네.
그러다가 사막을 활보하며 상단을 터는 도적단에 들어갔어.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짓이지.
 

세상을 잘못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네.
돌을 얇게 잘라 만든 노란색 창으로 세상을 바라본 것처럼 말이야.
그때는 내가 얼마나 바닥으로 떨어졌는지 깨닫지 못했네.
 
첫 번째 도적질은 멋지게 성공했어.
황금, 비단, 값진 상품을 손에 넣었지.

약탈한 돈은 흥청망청 써버렸네.


두 번째 도적질은 운이 안 좋았네.
상단을 습격해서 물건을 터는 데 성공했지만 상단을 보호하기로 한 원주민들이 우리를 공격해 왔지.
도적단 두목급 두 명이 죽고 나머지는 모두 사로잡혔네.
우리는 다마스쿠스(Damascus)로 끌려가 발가벗겨진 채 노예로 팔리는 신세가 되었지.
 
나는 은화 두 냥에 시리아 사막 족장에게 팔렸네.

다른 노예들처럼 머리를 짧게 깎고 하체만 겨우 가린 옷을 입었지.
젊은 치기에 나는 이것도 모험이라고 생각했어.
  

어느 날 나는 족장의 부인들에게 불려 갔네.
족장은 나를 내시로 만들어 노리개로 삼아도 좋다고 부인들에게 말했지.
그때 나는 내 처지를 깨달았네.
사막 사람들은 거칠고 호전적이어서 도망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지.
 
네 명의 부인이 나를 훑어볼 때 나는 두려움에 떨었어.

어떻게든 동정심을 얻어내는 방법을 궁리할 수밖에 없었지.  


첫 번째 부인 시라(Sira)는 가장 나이가 많았네.
나를 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이나 감정도 없었지.
나는 그녀에게 동정을 얻는 건 포기했네.  

둘째 부인은 미인이었지만 나를 지렁이라도 보는 것처럼 경멸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네.
나머지 부인들도 마찬가지였네.
나를 볼 때마다 광대라도 본 것처럼 킥킥대며 웃었지.
 
부인들의 결정을 기다리는 시간은 마치 영겁의 시간 같았네, 부인들은 서로 결정을 미뤘어.
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분위기였지.  

마침내 첫째 부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어.
"노예는 지금도 많아요.
하지만 낙타를 다루는 사람은 별로 없지요.
잘 다루는 사람은 더욱 없고요.
오늘만 해도 그래요.
어머니가 열병으로 쓰러져서 집으로 가고 싶은데 믿고 맡길 만한 노예는 없지요.
이 노예가 낙타를 잘 다룰 수 있는지 물어봐 주세요."
 
족장이 나에게 물었네.

"낙타에 대해 아는 걸 말해 봐라."
나는 내심 기뻤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지.
 

“낙타가 무릎 꿇게 할 수 있고 짐도 잘 실을 줄 압니다.
또 낙타가 지치지 않게 잘 관리하면서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낙타의 장비도 고칠 수 있습니다."
"제법이군. 시라,

이 녀석에게 당신 낙타를 맡기면 괜찮을 것 같군."
 
그렇게 첫째 부인 시라의 노예가 되었지.

나는 낙타를 몰고 그녀의 어머니 집으로 장거리 여행을 시작했네.
기나긴 여행을 하면서 나는 기회를 보아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고 내 이야기를 했네.
 

원래 노예는 아니었고 자유인이었다고,  바빌론에서 말안장 만드는 일을 했었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녀가 던진 말에 나는 당황했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나를 돌아볼 수 있었지.
"너의 나약함 때문에 노예가 되지 않았나?
그런데 어떻게 자유인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나?
출생이 어떻든 노예의 영혼을 가지고 있으면 노예가 되는 법이다.
물이 늘 수평을 유지하는 것처럼 당연한 결과야.
마찬가지로 자유인의 영혼을 가진 사람은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결국 명예롭고 존경 받는 사람이 되는 법이다."
 
나는 1년 동안 노예로 살았네.
하지만 영혼까지 노예로 살 수는 없었지.


그러던 어느 날 시라가 내게 물었네.
"저녁때면 다른 노예들은 서로 어울리며 즐겁게 지내는데 너는 왜 혼자 천막에 있느냐?"
나는 이렇게 대답했지.
"마님이 제게 하신 말씀을 곰곰이 되새기고 있습니다.
제가 노예의 영혼을 가졌는지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들과 어울릴 수 없습니다.
저들과 어울리면 노예의 영혼을 가지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혼자 있습니다."
 

시라가 속내를 털어놓았다.
"휴, 너도 나와 같은 신세로구나.
내가 결혼할 때 지참금을 많이 가져왔지.
족장은 돈을 보고 나와 결혼했어.
하지만 족장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모든 여자는 사랑을 바라는데 말이야.
나는 아직 아이가 없네.
앞으로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고 말이야.
그래서 언제나 외롭지.
내가 남자라면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어."
  

나는 시라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했어.

“지금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자유인의 영혼을 가졌나요?

아니면 노예의 영혼을 가졌나요?"

그녀가 답을 피하며 되물었지.

“네가 바빌론에서 진 빚을 갚을 생각이 있느냐?"
“네, 물론이죠.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세월이나 보내며 빚을 갚으려 하지 않는다면, 너는 아직도 노예의 영혼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빚을 갚지 않는 사람이 존경받을 수 있을까?"

"노예인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얼빠진 놈, 시리아에서 평생 노예로 살 생각이냐?"
"저는 얼빠진 놈이 아닙니다."
"그럼 증명하거라."
"어떻게요?"
"바빌론의 왕을 봐라.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적과 싸우지 않느냐?
 

너의 적은 바로 빚이다.
그 빚 때문에 바빌론에서 도망쳤지 않느냐?
그냥 내버려 두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법이다.
빚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용감하게 맞서 싸웠다면, 너는 빚을 정복하고 명예로운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빚과 싸울 용기가 없었다.
자존심을 버린 대가로 노예가 된 것이다."
 
그녀는 가혹하게 나를 비난했네.

나는 노예가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
그리고 사흘이 지났네.  


시라의 하녀가 나를 찾아와 시라에게 데려갔지.
"어머니의 병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가장 빠르고 좋은 낙타 둘을 준비하거라.
물과 음식도 충분히 챙겨라.
하녀가 음식을 내줄 것이다."
 

나는 낙타를 준비하고 짐을 꾸렸어.
하녀가 준 음식도 잘 챙겼지.
그런데 음식의 양이 너무 많아서 의아하게 생각했네.
 

여기서부터 시라의 어머니 집은 하루거리였거든.
나는 낙타를 끌고 길을 재촉했어.
날이 어둑해질 때쯤 시라의 어머니 집에 도착했지.  

시라는 하녀를 내보내고 내게 물었네.
"다바시르, 너는 자유인의 영혼이냐?

노예의 영혼이냐?"
"자유인의 영혼입니다."

"그걸 증명할 기회가 왔다.
족장은 술에 취해 깊게 잠들었고, 부하들도 모두 인사불성이다.
이 낙타를 데리고 달아나거라.
이 가방에는 족장의 옷이 들어 있다.
족장의 옷을 입고 변장하면 수월하게 탈출할 수 있을 거야.
아픈 어머니를 돌보는 사이 네가 낙타를 훔쳐 달아났다고 말하겠다."
 

"마님은 여왕의 영혼을 가지셨습니다.

크나큰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어서 출발하거라. 바빌론까지 가는 길은 멀다.
사막에는 물과 음식이 부족하니 부디 조심해라. 네가 무사하기를 신께 기도하마."
 
나는 시라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 인사를 올리고 밤길을 나섰어.

나는 시리아의 지리를 잘 몰랐어.
그저 바빌론이 어느 쪽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을 뿐이었지.
나는 그 방향으로 사막을 가로질러 갔어.
밤을 새워 이동했네.
주인의 재산을 훔쳐 달아난 노예에게 자비는 없기 때문이었지.
 
다음 날 오후 늦게 나는 사막처럼 황량한 땅에 도착했네.

사람이 살기 힘들 정도로 거친 땅이었지.
돌밭을 지나오느라 낙타의 발은 상처투성이었지만 낙타는 고통을 참아내며 계속 걸었지.
목숨을 건 도주였어.
매일매일 걷고 또 걸었네.
 

태양은 뜨겁게 내리쬐고 음식도 물도 다 떨어졌어.
아흐레 저녁때 나는 낙타에서 떨어졌지.
다시 낙타를 탈 힘조차도 없었어.
'이제 끝이구나.'라고 생각했어.
너무 힘들고 지쳐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지.
 
다음 날 아침 해가 뜰 때 겨우 정신을 차렸어.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어.
낙타들은 가까운 곳에 힘없이 누워 있었지.
 

주변은 바위와 모래와 가시덤불로 뒤덮인 땅이었어.
주변에 마실 것이나 먹을 것이라고는 없었네.
'이런 곳에서 최후를 맞이할 순 없어!' 이런 생각이 들었네.  
그러자 정신이 번쩍 났지.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은 맑아졌어.

 

입술이 부르터서 피가 나고 굶주림에 지쳤지만 어제처럼 고통스럽진 않았네.
나는 바빌론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나에게 질문했네.
'나는 노예의 영혼일까?

자유인의 영혼일까?'
 

그때 나는 깨달았어.
내가 노예의 영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여기서 죽는 게 낫다는 걸 말이야, 도망친 노예에 어울리는 죽음이지.
하지만 내가 자유인의 영혼이라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답은 분명했어.  


어떻게든 바빌론으로 돌아가서 나를 믿어준 사람들에게 빚을 갚아야 했어.
나를 사랑했던 아내를 행복하게 해 주고, 부모님도 안심시켜 드려야 했지.
나를 도망치게 해 준 시라의 말도 떠올랐어.
"너의 적은 바로 빚이다.
그 빚 때문에 바빌론에서 도망쳤지 않나?
그냥 내버려 두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법이다."
 
시라의 말은 옳았네.

'나는 왜 사람답게 사는 길을 포기했던 걸까?

왜 아내가 친정으로 가도록 했을까?'
이렇게 생각하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네.
돌을 얇게 잘라 만든 노란색 창이 사라지고, 세상이 다른 색으로 보였지.
마침내 나는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은 것이지.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자 내가 할 일이 보였어.
 
"이렇게 사막에서 헛되이 죽을 순 없어.
우선 바빌론으로 돌아가 돈을 빌린 사람들을 만나야겠다.

그들에게 내가 겪은 일을 얘기하고 용서를 구해야겠다.
그리고 열심히 일해서 매달 조금씩 빚을 갚아야겠다.

아내를 찾아 용서를 빌고,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어야겠다.
나의 적은 바로 나의 빚이다.
내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나?"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섰어.
배고픔은 견딜 만했네.

목마름도 문제가 되지 않았어.
바빌론으로 가는 길에 겪은 사소한 일에 불과했지.

"나는 자유인이다!
내 안에는 자유인의 영혼이 있다."
 

이렇게 마음먹고 외치니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네.

나의 외침에 낙타들의 눈빛도 빛나기 시작했어.
낙타들도 안간힘을 쓰며 일어섰지.
 

나는 바빌론이 있는 북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네.
그렇게 걷고 또 걷다가 마침내 물을 발견했네.
거기에는 풀이 자라고 과일도 풍성하게 열려 있었어.
그리고 바빌론으로 이어지는 길도 발견했지.
  

내가 자유인의 영혼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네.
만약 포기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야.
인생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네.
자유인은 인생을 과정으로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네.
하지만 노예는 "노예인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라며 징징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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