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나에게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되돌아보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프랑스 생장에서 시작해 스페인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이어지는 산티아고 순례길 초반에 나타나는 팜플로나는 산페르민 축제로 유명하고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후반부의 배경은 이 축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아내와 나는 축제 직전 팜플로나에 머물렀지만 축제의 혼잡함을 피해 서둘러 이곳을 떠났다.
만약 이 책을 읽은 후 팜플로나에 머물렀다면 당연히 축제기간 동안 이곳에서 축제를 즐겼을 것이다.
세상은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제이스는 팜플로나 축제에 참석하기 전 피레네 산맥 내 하천에서 송어 낚시를 하고 축제일 맞추어 버스를 타고 팜플로나에 도착해서 몬토야 호텔에 Check-ln 한다.
몬토야 호텔은 투우에 열정적인 사람들이 머무는 호텔로 훌륭한 투우사들은 하나같이 이곳에 숙소를 정했고 호텔 소유주인 몬토야의 방에는 이곳에 머문 신뢰하는 투우사들의 사진이 액자에 끼워져 전시되어 있다.
제이스와 그의 친구들은 축제에 사용될 황소들이 카스티아 지방의 사육장에서 운반되어 울타리 안으로 옮겨지는 도중에 화가 난 황소가 거세한 수소를 떠받아 넘겨 쓰러뜨리는 장면을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았다.
축제에 참석하는 황소들이 울타리로 들어오면 낯선 환경으로 인해 날뛰고 사나워지는데, 거세한 수소를 넣어 두면 흥분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맡게 되는데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다행히 거세한 수소는 죽지 않았지만 돌담을 등지고 서서 어떤 소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로 남았다.
팜플로나 시내에는 축제를 맞이할 준비가 한창이다.
아침에 황소들이 울타리에서 풀려나 거리를 달려 투우장으로 들어갈 때 골목으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일꾼들이 구덩이를 파고 번호가 새겨진 말뚝을 세웠다.
시가지 저쪽 고원에는 피카르도가 탈 말을 전속력으로 달려 굳은 다리를 풀며 훈련을 시키고 있었고 투우장 문을 열고 그 안을 청소하고 있었다.
7월 6일, 산페르민 축제가 시작되는 날, 농부들은 이른 아침부터 좁은 길거리 선술집에 모여들었다.
11시 미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산페르민 축제가 종교적인 축제임을 알렸고 축제를 알리는 불꽃이 광장에서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축제가 시작되어 일주일 밤낮으로 계속되었다.
축제 기간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인 것이 되어 버리고 모든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오후에는 성대한 종교행렬이 있었다.
산페르민 성인을 한 성당에서 다른 성당으로 옮겼다.
이 행렬에는 시민 사회와 종교계 고위 인사가 모두 참가했고 15미터쯤 되는 인디언 인형들, 무어인들, 왕과 왕비가 음악에 맞추어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모습이 보였다.
호텔의 식사는 축제 때문에 값을 두 배로 올렸지만 새로운 요리가 서너 가지가 더해져 진수성찬이었다.
저녁 식사 후 거리로 나가 아침 6시에 시작되는 황소들의 질주를 보기 위해 밤새 술을 마셨다.
시내 변두리 울타리에서 황소들을 내몰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불꽃이 터졌다.
황소들이 거리를 달려 투우장으로 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발코니마다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때 군중들이 길거리 아래쪽 투우장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황소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달려 내려왔다.
한 사내가 넘어져 도랑으로 구르더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러나 황소들은 똑바로 뛰어가며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황소들과 사람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뛰어갔다.
황소들이 모두 시야에서 사라지자 투우장에서 큰 함성이 터졌다.
그 함성은 끊이지 않았고 마침내 황소들이 투우장에 있는 사람들을 뚫고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리는 불꽃이 솟아올랐다.
페드로 로메오는 몬토야 호텔 8호실에 머물고 있었고 몬토야는 그의 방문을 노크한 후 방문을 열었다.
좁은 거리가 바라보이는 어두침침한 방에 수도원식 칸막이로 갈라놓은 침대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청년은 투우복을 입은 채 꼿꼿한 자세로 미소도 짓지 않고 서 있었다.
그의 검은색 머리가 전등불을 받아 반짝거렸다.
흰 리넨 셔츠를 입고 있었고 검잡이가 그의 띠를 다 둘러주고 일어나서 뒤로 물러섰다.
페드로 로메오는 초연하고 품위가 있었다.
이제까지 그처럼 잘생긴 투우사를 본 적이 없었다.
로메오가 맨 처음 황소를 죽였을 때 열 좌석쯤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몬토야는 제이스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였다.
로메오는 결코 몸을 구부리는 일이 없이 언제나 몸의 선이 똑바르고 순수하고 자연스러웠다.
다른 투우사들은 팔꿈치를 쳐들고 황소의 뿔이 스쳐 가고 난 뒤에야 비로소 황소 옆구리에 기대면서 짐짓 위험하게 보이려고 했다.
나중에는 그런 가짜 몸짓이 모두 엉망이 되면서 보는 이들에게 불쾌감마저 주었다.
로메오의 투우는 진실한 감동이었다.
그의 동작은 선의 절대적인 순수성을 유지할뿐더러 매번 침착하고 조용한 태도로 뿔이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가게 했다.
그는 뿔이 가깝다는 것을 애써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
이것이 진짜 투우였다.
로메오와 견줄 만한 투우사는 없었다.
투우가 끝난 뒤 투우장 밖은 많은 사람들이 몰려 꼼짝할 수 없었다.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어 마치 빙하처럼 천천히 움직여서 시내로 돌아왔다.
투우가 있은 다음이면 언제나 산란한 감정을 느꼈고 좋은 투우를 보고 난 뒤에는 늘 그렇듯 들떠 있었다.
브렛은 로메오에게 빠져 결혼을 약속한 마이크마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제이스가 브렛을 로메오에게 소개해 주고 자리를 비운 뒤 카페로 돌아와 보니 빈 잔만 테이블에 놓여 있고 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브렛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던 권투 선수 출신 콘은 브렛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로메오의 방으로 쫓아가 두 사람이 같이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로메오를 두들겨 폈지만 브렛은 로메오를 두둔하며 콘을 나무랐다.
페드로 로메오는 위대했다.
그는 투우를 사랑했으며, 황소를 사랑하고 브렛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그날 오후 내내 그는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온갖 기술을 그 여자 앞에서 펼쳐 보였다.
그는 단 한 번도 얼굴을 쳐들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술을 한층 더 발휘할 수 있었으며, 그것은 그녀를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고개를 쳐들어 마음에 드는지 묻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내심으로는 자신을 위한 일이었고 자신에게 힘을 주었지만, 결국 그녀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이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서까지 그녀를 위해서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날 오후 내내 득을 보았던 것이었다.
로메로는 케이프를 펄럭거리며 붉은 색깔이 소 눈에 띄게 했다.
소는 반사적으로 덤벼들어 떠받으려고 하자 말 위에 앉아 있던 사내가 기다란 자루가 달린 창 날 끝을 소의 툭 불거진 어깨에 푹 질러 넣었다.
기수는 창을 축으로 삼아 말을 옆으로 달리게 하여 소에게 상처를 내고 쇠 끝을 소 어깨에 밀어 넣어 피를 흘리게 했다.
소가 꼬리를 곧추세우고 돌진해 오자 로메오는 소 앞에서 팔을 놀리면서 발을 꽉 디딘 채 한 바퀴 원을 그리며 빙그르르 돌았다.
이렇게 소를 살짝 스쳐 보내고 둘은 또다시 정면으로 마주 섰다.
로메로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황소가 또다시 덤벼들자 로메로는 이번에는 다시 케이프를 반대쪽으로 불룩하게 펼쳤다.
그는 번번이 소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보냈기 때문에 사람과 소와 바람을 안고 소 앞에서 선회하는 케이프가 모두 어우러져 한 덩어리가 되었다.
로메로는 그런 식으로 베로니카를 네 번이나 했고 마지막 베로니카를 절반만 하여 소에게 등을 돌리고 한 손을 허리에 대고 팔에 케이프를 감은 채 갈채를 보내는 관중을 향해 물러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로메오는 죽은 황소의 귀를 받아 대회장을 향해 높이 쳐들었다.
대회장이 고개를 끄덕여 답례하자 그 귀를 브렛에게 건네주었다.
브렛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빙그레 미소를 주고받았고 브렛의 손에 귀가 들려 있었다.
저녁 내내 술을 마신 제이스는 몹시 취해 호텔로 돌아와 위층으로 올라갔다.
브렛의 방문이 열려 있고 방안에는 마이크기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는 술병을 흔들며 제이크를 불렀다.
술이 취한 제이크의 눈에는 방이 빙빙 돌고 있었고 마이크는 그에게 브렛이 투우사 로메오와 기차를 타고
줄행랑을 쳤다고 말했다.
흔히 헤밍웨이를 스콧 피츠제럴드와 윌리엄 포크너와 함께 20세기 전반기 미국 문단의 삼총사로 일 컸는다.
19세기가 저물던 무렵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나 거의 같은 시기에 문단에 데뷔한 이 세 사람은 미국 문학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 문학에서도 뛰어난 작가로 인정을 받았다.
그들은 미국이 정치적, 경제적 또는 군사적으로만 강대국이 아니라 예술에서도 강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1926)는 미국 문학서에 굵직한 획을 그은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