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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by 산내

1990년대 초까지 사상가들과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역사의 종언'을 반겼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과거의 정치적, 경제적 문제는 다 해결됐으며,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 시장과 정부의 복지 서비스로 재단장한 자유주의 패키지야 말로 여전히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이 패키지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모든 국경을 지우는 한편, 인류를 하나의 자유로운 지구 공동체로 바꿔 놓을 운명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순간과 히틀러의 순간, 체 게바라의 순간에 이어 이제 우리는 트럼프의 순간에 처했다.

그렇지만 이번에 자유주의 이야기가 마주한 상대는 제국주의나 파시즘, 공산주의처럼 일관된 이데올로기를 가진 적수가 아니다.
트럼프의 순간은 훨씬 더 허무주의적이다.


20세기의 주요 운동은 모두 전 인류를 위한 미래 청사진이 있었던 데 반해 도널드 트럼프는 그런 것은 제시하지 않는다.

그와는 정반대다.
그의 주된 메시지는 어떤 지구 차원의 청사진을 만들고 증진하는 것은 미국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국 브렉시트 지지자들도 '분리된 영국'의 미래를 위한 별다른 계획이 없다.
유럽과 세계의 미래는 자신들의 지평을 훨씬 넘는 것이라고 본다.


트럼프와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 대부분은 자유주의 패키지를 전면 거부한 게 아니다.

주로 세계화에 대한 믿음을 잃었을 뿐이다.
그들은 여전히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인권, 사회적 책임을 믿는다.
하지만 이런 좋은 생각들도 국경에서는 제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들은 요크셔와 켄터키에서 자유와 번영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외국인에 대해서는 비자유주의적 정책을 채택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떠오르는 중국의 슈퍼파워도 거의 거울처럼 닮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중국은 국내 정치 자유화는 경계하면서도, 세계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훨씬 더 자유주의적인 접근법을 택해왔다.

사실상 자유 무역과 국제 협력에 관한 한 시진핑이야말로 오바마의 진정한 계승자처럼 보인다.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잠시 뒤로 젖혀 둔 채,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꽤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다.


다시 기승을 부리는 러시아는 자신을 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훨씬 강력한 경쟁자로 본다.
하지만 러시아는 군사력은 재편했어도 이념적으로는 파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러시아와 세계 곳곳의 다양한 우파 운동 진영에서는 확실히 인기가 있다.
하지만 스페인 실직자나 불만에 찬 브라질 국민,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케임브리지 학생들까지 사로잡을 전 지구적 세계관은 갖고 있지 않다.


러시아는 자유민주주의에 대안적인 모델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 모델은 하나의 일관성을 가진 정치 이념이 아니다.
그보다는 몇몇 과두재벌들이 국가의 부와 권력 대부분을 독점하고는, 언론 통제를 통해 자신들의 활동을 숨기고 지배를 다지는 정치 관행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는 다음과 같은 에이브러햄 링컨의 원칙 위에 서 있다.

"모든 국민을 잠시 속일 수 있고, 일부 국민을 늘 속일 수 있어도, 모든 국민을 항상 속일 수는 없다."

정부가 부패해서 국민 생활을 개선하지 못하면, 결국 그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정부를 대체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는 상황에서는 링컨의 논리는 힘을 잃는다.
시민이 진실을 알지 못하도록 막기 때문이다.

집권 과두제는 언론 독점을 통해 모든 정책 실패를 반복해서 남 탓으로 전가하고 국민의 관심을 외부 위협으로 돌릴 수 있다.

그런 과두제 아래 살다 보면 늘 이런저런 위기가 국민의료나 공해 같은 따분한 문제보다 우선한다.

국가가 외부 침략이나 끔찍한 전복 사고에 직면했다는데 누가 과밀 병원과 강물 오염에 대해 걱정할 시간이 있겠는가?

이런 식으로 끝없는 위기의 흐름을 만들어냄으로써 부패한 과두제는 지배를 무한정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제 모델은 실행력에서는 지속성이 있어도 아무에게도 매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러시아는 민주주의인 체하고, 지도부는 과두제보다 러시아 민족주의와 정교회의 가치에 대한 충성을 공언한다.


프랑스와 영국의 우익 극단주의자들이 러시아의 지원에 의존하고 푸틴에 대한 흠모를 표시하는 일은 있을 법도 하지만, 두 나라의 유권자들조차 실제로 러시아 모델을 빼닮은 나라에서는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프랑스 '국민전선'을 지지하는 노동계급 유권자 중에서 이런 부의 분배형을 자국에도 이식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미국이나 독일, 캐나다, 호주로 이민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이 만나봤다.
중국이나 일본으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어느 정도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로 이민 가는 게 꿈이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글로벌 이슬람'으로 말하자면, 여기에 끌리는 사람은 주로 날 때부터 이슬람교를 접한 경우다.

시리아와 이라크의 일부 사람들에게 매력을 발휘할 수 있고, 심지어 독일과 영국의 소외된 무슬림 청소년에게도 통할 수 있겠지만, 그리스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치유책으로 세계 이슬람국 연합에 합류할 것 같지는 않다.

독일에서 태어난 무슬림 청소년 중에서 무슬림 신정 체제에서 살기 위해 중동에 간 사람이 한 명이라면, 반대로 자유주의 독일에 가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어 하는 중동 청소년은 아마 100명은 될 것이다.

결국 인류는 한동안 자유주의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체제에 분노한 나머지 배를 걷어찰 수는 있겠지만, 달리 갈 데가 없어 결국 돌아올 것이다.

<출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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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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