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파
사디끄가 까심의 뒤를 이어 관재인 자리에 올랐지만, 동네는 전처럼 분열되어 있었다.
사디끄가 유명을 달리하자 그간 감추어 두었던 욕망이 추악한 얼굴과 적의를 드러냈다.
구역과 구역 사이에 유혈이 낭자했고 관재인조차 서로 싸우면서 살해당했다.
공석 관재인 자리를 두고 사람들은 별도리 없이 전임 관재인 리파아트의 자식 가운데 한 명을 관재인으로 세워야 했다.
그렇게 해서 까드리가 관재인이 되자 다시 수장이 등장해 각 구역을 장악했다.
이후 수장들은 수장 두목 자리를 놓고 싸움을 벌였고 마침내 사아달라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수장 두목의 집을 차지하고 스스로 수장 두목이 된 최초의 인물이었다.
유수프는 자발 구역을, 아자즈는 리파아 구역을, 산투리는 까심 지역을 차지했다.
어느 날 정오가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한 낯선 청년이 사막을 지나 동네를 향해 오고 있었다.
그 뒤에 난쟁이처럼 키 작은 남자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아라파와 그를 따르던 하나슈는 리파아 지역 내 공동주택 지하실에 방을 얻었다.
아라파와 하나슈는 벽에 붙어 있는 가스등에 불을 켠 후 지하실 뒷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방은 눅눅하고 어두운 데다 지하실 안쪽에 위치해 있어 일상생활을 하는데 적합하지 않아 아라파는 그 방을 작업실로 꾸몄다.
방바닥과 방구석구석에는 종이 부적 꾸러미, 흙, 생석회, 풀과 향신료, 생쥐, 개구리, 전갈과 말린 동물과 곤충, 유리병 조각 더미, 목이 긴 병, 단지에 들어 있는 물,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는 이상한 액체, 난로가 있었고 벽에 매단 선반에는 온갖 종류의 그릇과 냄비가 놓여 있었다.
아라파는 한 시간 후에 작업실에서 벗어나 소파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한 아가씨가 매대 뒤에 서서 포근한 목소리로 손님들을 부르고 있었다.
“맛있는 커피 드세요.” 그 카페는 까심 구역과 리파아 구역 경계에 있어 그곳을 찾는 손님은 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장사꾼과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아라파는 창 너머로 오랫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검은 히잡을 두른 갈색 얼굴은 참으로 예뻤다.
그녀의 이름은 아와티프였고 늙은 아버지 샤크룬과 함께 맛있는 커피를 팔고 있었다.
까심 구역 수장인 산투리가 불쑥 나타났다.
산투리는 샤크룬의 카페 앞에 멈춰 섰다.
그는 아와티프의 얼굴을 살피면서 “설탕 넣지 않은 커피 한잔.” 산투리는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다.
수장은 커피가 식기를 기다리며 번쩍이는 금니를 드러낸 채 파렴치하게 그녀를 보고 웃었다.
그녀는 무서워 웃는 것도 찌그리는 것도 마음 편히 할 수 없었다.
샤크룬은 섬뜩하게 그 둘을 쳐다보았다.
산투리가 그녀에게 5 피아스타짜리 동전을 내밀자, 그녀는 거스름돈을 주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나 그는 거스름돈을 받지 않은 채 까심 구역의 카페로 돌아갔다.
샤크룬은 기력이 없었지만 일어나서 거스름돈을 받아 들고 카페로 갔다.
잠시 후 노인은 자리로 돌아와 실없이 웃으며 대저택을 바라보며
“자발라위! 자발라위!”라고 외쳤다.
집에 있던 사람, 지하실에 있던 사람, 카페에 있던 사람 모두가 창가나 문가에서 그를 응시했다.
“자발라위! 당신의 소원이 묵살되고 돈이 낭비되는데 언제까지나 가만히 있을 겁니까?
당신의 자손들이 그렇듯 당신도 도둑맞고 있어요. 자발라위!” 그가 소리쳤다.
그러자 산투리가 카페에서 그를 향해 소리쳤다.
조심해. 영감탱이.”
“빌어먹을 나쁜 놈.” 샤크룬이 그에게 소리쳤다.
산투리가 분노를 참자 못하고 그의 머리에 주먹을 날렸다.
그가 비틀거리자 아와티프가 잡아 주었다.
“집에 가요, 아버지.” 그녀는 울면서 말했다.
동틀 무렵 길고 긴 곡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샤크룬이 죽은 것이다.
운구가 시작되자 아와티프와 아라파만이 그 뒤를 따랐다.
장례 행렬이 까심 구역에 이르렀을 때 산투리가 끼어들었다.
“뻔뻔스럽긴! 창피스러운 줄도 모르고.” 그러나 그는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아와피티, 아버지 몫까지 오래 살아.” 산투리가 이와티프에게 말했다.
아라파는 이 말을 듣고 청혼이 임박했음을 알아챘다.
“우리 아버지는 당신 손에 맞아 돌아가셨어요.” 아와티프가 소리쳤다.
“제발 그러지 마. 아와티프.” 기가 막힌다는 듯 산투리가 말했다.
“장례식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그냥 놔둬.” 아라파가 그녀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병신 같은 놈! 네가 뭐라고 그녀와 수장 사이에 끼어들어?” 산투리의 부하 중 하나인 아다드기 아라파가 방심한 틈을 타 그의 얼굴을 철썩 때리며 소리쳤다.
곁에 있던 다른 사람도 그의 얼굴을 때렸고, 다른 사람은 얼굴에 침을 뱉고 발길질을 하며 “저 여자 근처에 가면 넌 무덤에 묻힐 줄 알아,”라고 말했다.
그는 영문을 몰라 얼떨떨해서 잠시 큰 대지로 누워 있었다.
하나수가 가슴 아파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가지 말라고 했잖아.”
아라파는 바닥만 쳐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내가 그녀와 결혼할 테니 두고 봐.”라고 말했다.
아라파는 며칠 동안 집에만 틀어박혀 두문불출했다.
그러나 아와티프와는 창문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애도 기간이 끝나자 그와 그녀는 건물 통로에서 몰래 만났다.
“당장 결혼하는 게 좋겠어.”
혼사는 아주 은밀히 진행되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사전에 아무도 모르게 샤크룬의 딸 아와티프가 마법사 아라파와 결혼을 해서 그의 집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랐고 어떻게 그가 아자즈를 설득해 그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했다.
산투리와 그의 부하들이 까심 구역의 카페에 모였다.
아자즈가 그 소식을 듣고 리파아 구역에서 부하들을 만났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있는 가운데 아자즈가 산투리를 바라보며 “우리는 화가 난 게 아니야.
우리는 화가 날 까닭이 없어.”라고 말했다.
“넌 동료에게 해서는 안될 행동을 했어.
그리고 네가 한 짓은 어떤 수장도 인정할 수 없는 짓이야.” 산투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애는 아버지가 사망해 혼자 남은 여자랑 결혼했을 뿐이야.
난 모든 리파아 구역 사람들의 결혼식 증인이 되어 주지.”
“아자즈 너 몸 조심해.”
“제기랄 멍청이!”
몽둥이가 난무할 뻔한 순간 포효하는 소리가 들렸다.
“창피한 줄 알아.”
그들이 누구인지 보려고 몸을 돌리자 수장 두목 사아달라가 리파아 구역 사람들을 헤치고 나와 두 구역 가운데 섰다.
“몽둥이 내려놔.”
몽둥이가 땅에 내려졌다.
사아달라는 산투리를 보고 그러고 나서 아자즈를 쳐다보았다.
“누구의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아.
조용히 돌아가.
여자 때문에 살육을 저지르려 하다니!
참, 아쉽다. 대체 너희들은 어떤 인간이냐?”
무리들은 조용히 흩어졌다.
사아달라도 집으로 돌아갔다.
‘이 남자가 미쳤나.
아니면 망상에 사로 잡힌 걸까?’
아와티프는 아라파가 일을 하는 것을 지켜보며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확실한 것은 그가 생계를 꾸리는 데 쏟는 시간과 정열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정열을 마법에 쏟는다는 것이었다.
작업실에서 하는 일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위를 기울여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는 동네에서 해시시를 피우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당신에게 있어 죽음을 무릅쓰게 하는 게 대체 뭐예요?”
“나는 아드함을 쫓겨나게 한 유언장이 들어 있는 책을 보고 싶어.”
“유언장 안에 무엇이 관심이 있는 거예요?”
“최초의 마법 책. 자기 아들에게조차 주기를 꺼렸던 자발라위의 힘의 비밀.”
“아마도 그게 당신이 상상하는 것처럼 대단한 게 아닐 수도 있어요.”
“아니면 목숨을 걸 만한 곳인지도 모르지.”
하나슈는 여전히 그를 도왔다.
동트기 두어 시간 전 그는 그림자처럼 아라파를 따라 사막으로 향했다.
아와티프는 아라파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를 위해 도 손 모아 기도를 올렸다.
우애가 깊은 두 남자는 사막과 접한 대저택의 뒷담에 도달했다.
“여기서 리파아가 죽었고, 우리 어머니가 강간을 당하고 매도 맞았어.
그런데 할아버지란 분은 침묵하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어.” 아라파는 볼멘소리를 했다.
잠시 후 그들은 담 밑을 파기 시작했다.
하나수도 아라파만큼 열심히 구덩이를 팠다.
아라파의 정수리 부분만 땅 위로 보일 정도가 되었을 때 구덩이 안에서 아라파가 말했다.
“오늘 밤 이 정도면 충분해.”
그리고 구덩이 밖으로 몸을 빼내 구덩이 입구를 널빤지로 막고 구덩이가 드러나지 않게 흙으로 덮었다.
하나슈는 구덩이 속에 있는 아라파의 손을 잡고 작별 인사를 했다.
아라파는 바닥에 엎드려 흙냄새 풍기는 통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는 난간 주위를 기어서 빙 돈 다음 계단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객실에 이르자 신발을 벗은 후 겨드랑이 사이에 끼웠다.
그러고는 이야기꾼들이 알려준 침실로 기어갔다.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내실이 있고 그 홀은 집의 전면을 따라 길게 뻗어 있었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아드함이 유언장을 찾기 시작한 곳이며 이제 아라파가 같은 목족으로 그 일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숨을 쉬며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누군가 문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문이 조심스레 열리고 밖에서 불빛이 스며들어 왔다.
불빛에 비친 유난히 마르고 긴 얼굴의 늙은 흑인 여자였다.
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늙은 하녀가 자리에 누우면서 삐걱거리는 침대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자발라위를 만나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와 만나기도 전에 하녀가 깨어나 소리를 지를 것이고 그러면 만사가 끝장나기 때문이다.
그는 손을 들어 열쇠 구멍에 손가락을 걸고 문을 끌어당겼다.
그는 기어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는 긴장감을 털아 버리기 위해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몸을 일으켰다.
그가 촛불을 켜자, 그를 바라보고 있는 눈이 보였다.
그 흑인 하인은 불 켜는 소리에 눈을 떴지만 아마도 비몽사몽 간의 몽롱한 상태였을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하인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잡고 있는 힘을 다해 눌렀다.
하인이 격렬하게 바둥대며 그의 손을 잡자 아라파는 발로 그의 배를 걷어 차고 그의 목에 힘을 더 주었다.
그는 아주 잠깐 동안 지옥과 같은 고요와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미친 사람처럼 손에 힘이 빠질 때까지 그의 목을 계속 눌렸다.
그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방바닥이나 노인의 시체 위에 쓰러졌을 것이다.
그는 모르는 사람을 죽였고 또한 죽여야 할 이유도 없는 사람을 죽인 것이다.
범법자와 싸울 힘을 구하려 왔다가 그는 부지불식간에 범죄자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고요히 잠든 동네로 돌아왔다.
아와티프가 아라파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씻으세요… 원 세상에…, 손과 목에 흐르는 이 피는 뭐예요?”
아라파는 움찔했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는 씻으려 나서자마자 바로 기절해 버렸다.
어둠이 걷히고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창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고 대저택을 바라보았다.
한 남자가 동네 끝에서 나와 알자말리야 쪽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아라파가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는 꾸물대지 않고 선뜻 대답했다.
“하느님의 뜻이에요. 그토록 오래 살았던 자발라위가 드디어 죽었어요.”
해가 뜨자 사람들이 속속 대저택 주위로 몰려들었다.
관재인이 대저택에 들렀다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뒤 소식은 전광석화처럼 퍼졌다.
사람들은 도둑놈이 뒷담 아래에 굴을 파고 그 집에 몰래 들어가 충직한 하인을 죽였다고 했고, 그 소식을 들은 고령의 자발라위가 건강이 좋지 않았던 탓에 그 충격을 이기자 못하고 사망했다고 했다.
저녁에 동네 사람 모두가 장례식을 위해 쳐 놓은 천막으로 모여들었다.
아라파와 하나슈도 리파아 구역 사람들과 함께 갔다.
아라파는 죄를 지은 후 통 잠을 자지 못해 얼굴이 송장 같았다.
그는 그 집의 명예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에 잠입한 사람, 조상이 사망함으로써 그 조상의 존재를 확인한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자신의 손을 영원히 더럽힌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어떻게 속죄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나슈. 나는 실행에 옮길 거야.
동네 사람들의 주의를 범죄에서 딴 데로 돌리게 할 거야.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야.
가장 놀라운 일은 자발라위가 다시 살아나는 거야.”
아와티프는 탄식했고, 하나슈는 얼굴을 찌그렸다.
“너 미쳤니?”
사막이 내려다 보이는 사아달라의 집 담에 도착했다.
담의 중간 지점까지 가 그는 땅바닥을 손으로 더듬어 큰 돌을 찾아서 옆으로 치웠다.
그는 하나슈와 함께 밤마다 팠던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구멍 반대쪽 입구를 막고 있는 천을 밀어내고 수장 두목 집의 정원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는 사아달라가 계단에 첫 발을 올려놓을 때까지 종려나무 뒤에 숨어 있었다.
그러다 그에게 달려들어 그의 등에다 비수를 꽂았다.
사아달라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문지기가 놀라서 뒤로 돌아서자 그는 돌멩이를 등불에 던졌다.
등이 박살 나고 등불이 꺼졌다.
아라파는 잠입해 들어온 벽 쪽으로 재빨리 달아났다.
아라파가 달아나다 나무 그루터기에 걸려 넘어져 얼굴을 땅에 찧었다.
다리와 팔목에 심한 통증을 느꼈으나 꾹 참고 달아났다.
그는 구덩이로 뛰어들어 사막으로 빠져나와 대저택 뒷담 끝에 이르렀다.
정적을 깨고 “잡아라… 저 놈을 포위하라.”라고 외치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는 지금까지 수개월의 실험을 거친 병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그 병을 그들에게 던졌다.
몇 초가 지나자 지금껏 들어 보지 못한 큰 소리가 나고 폭발이 일어났다.
곧이어 비명소리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라파는 계속 달아났고 더 이상 쫓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지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와티프가 문을 열자 관재인의 문지기인 유니스가 서 있었다.
“나리께서 급히 상의할 일이 있다고 아라파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라고 말했다.
관재인 까드리는 그를 기다리며 제일 안쪽에 앉아 있었다.
“아라파, 왜 사아달라를 죽였나?”
눈과 눈이 마주치자 시선이 얼어붙었다.
그가 틀림없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관재인은 틈을 주지 않고 날카롭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렇게 두려운데 왜 그를 죽였지?
절망한 아라파는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한 눈으로 방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아라파, 도망갈 곳은 없어.
밖에 있는 자들이 네가 저지른 죄를 알면 당장일도 너를 물어뜯고 네 피를 마시려 들 거야.”관재인은 섬뜩할 만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뒷담 아래 터널을 팠지.
처음에는 용케 도망쳤지만 두 번째는 들켰어. 아라파, 도대체 왜 죽였나?
이 남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어떻게 알았을까?
그런데 왜 그는 동네 사람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그를 고발하지 않는 것일까?
“악마의 유혹이죠.” 아라파는 자포자기해 고백하듯 말했다.
잠시 후 그는 의미심장하게 “자, 이제 너의 무기에 대해 나에게 털어놔라.”라고 말했다.
안개가 걷히고 의혹이 풀리기 시작했다.
관재인은 아라파의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을 탐내고 있었다.
“나리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아라파가 절망한 나머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했다.
“자발라위와 사아달라는 잊기로 하자. 네 무기에 대해 말해봐라. 그게 뭐냐?”
“마법의 병입니다.”
“명확하게 설명하라.”
아라파는 처음으로 자신감을 되찾았다.
“많이 갖고 있나?”
“지금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들 수는 있지?”
“물론입니다.” 아라파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나는 그것이 많이 필요하다.”
“원하시는 대로 갖게 되실 겁니다.”
처음으로 그들은 서로 뜻이 통했다는 시선을 주고받았다.
“너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부자가 될 거야.”
“그것이 제가 원하는 바입니다.” 아라파가 기민하게 대답했다.
“몇 푼 벌려고 너 자신을 괴롭히는 일할 것 없다.
내 보호 아래 자유롭게 마법만 만들어라.
앞으로 네게 원하는 것은 모두 다 갖게 될 거다.” 관재인은 흡족하게 말했다.
세 사람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라파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이야기하자 아와티프와 하나슈는 마음을 졸이며 그의 이야기를 열중해서 들었다.
“그의 보호를 받고 있어도 안전하지는 못할 거예요.” 아와티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라파는 아와티프의 말을 생각하며, 그 말이 절절히 옳다고 생각하며
“그가 항상 내 마법이 필요하게 만들어야지.”라고 말했다.
누가 수장 두목이 될까?
사아달라가 무덤 속에 눕자 사람들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각 구역 사람들은 서로 자기들 수장을 추천했다.
바로 그때 관재인이 보낸 전령이 몰래 잠입해 자발 구역의 수장 유수프에게 관재인을 만나러 가자고 전했다.
관재인은 그를 친절하게 맞이하고 그에게 그의 구역 사람들을 진정시킬 방법을 강구하는 데 힘쓰라고 요구했다.
특히 자발 구역이 관재인 집 바로 이웃이기 때문이었다.
작별 인사로 악수를 할 때 관재인은 다음에 만날 때는 유수프가 수장 두목이 도어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수프는 관재인이 자신을 지지한다는 생각에 도취되어 그의 집을 빠져나왔다.
이 소식이 다른 구역으로 퍼져 나가자 좌중은 흥분했다.
그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아자즈와 산투리가 은밀히 만나 유수프를 제거하기로 하고, 성공하면 수장 두목 자리는 두 사람이 제비 뽑기로 정하기로 담합했다.
다음 날 새벽 까심 구역 사람들과 리파아 구역 사람들이 모여 자발 구역을 공격했다.
격렬한 싸움이 벌어져 유수프와 그의 부하 상당수가 죽고 나머지 사람들은 달아났다.
자발 구역 사람들은 자포자기해 강한 힘 앞에 굴복했다.
이미 합의 본 대로 오후에 제비 뽑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산투리와 아자즈는 각자 무리를 이끌고 와 다정스럽게 포옹을 했다.
아자즈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당산과 나는 형제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우리는 변치 않는 형제일 것입니다.”
대저택 앞 공터를 사이에 두고 두 구역 사람들이 섰고 두 사람은 종이와 망치가 그려진 바구니를 공터 한가운데 놓고 자기편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망치는 아자즈, 칼은 산투리를 상징했다.
눈가리개를 한 아이가 종이쪽지를 바구니에서 꺼내기 위해 앞으로 나왔다.
팽팽한 긴장과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아이가 손을 넣어 종이쪽지 하나를 꺼내 높이 치켜들었다.
“칼이다! 칼!” 까심 구역 사람들이 소리쳤다.
산투리가 아자즈에게 손을 내밀자 아자즈가 그의 손을 잡고 웃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
동네 사람들이 함성을 질렀다.
우리 동네 수장 두목 산투리 만세!”
리파아 구역 사람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양팔을 벌리고 산투리에게 다가갔다.
산투리가 그를 포옹하려고 팔을 벌리자 갑자기 산투리의 심장을 칼로 찔렀다.
산투리가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두 구역은 유혈이 낭자한 잔혹한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까심 구역 사람 중에는 아자즈를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곧 까심 구역 사람들은 싸움에서 졌다는 패배감을 느꼈다.
사상자들은 쓰러졌고 일부는 달아났다.
저녁이 되자 아자즈기 수장 두목이 되었다.
까심 구역은 울부짖는 소리로 리파아 구역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열기를 가라앉히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
“쉿! 들어라! 양의 탈을 쓴 악인들아!”
사람들은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문지기 유니스를 앞 세우고 하인들에 들러 싸인 관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당신의 충복, 수당 두목 아자즈, 잘 부탁드립니다.”
관재인은 깔보는 시선으로 그를 쏘아보며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아자즈, 나는 동네의 수장을 한 명도 원치 않아.”
하인들의 손을 벗어난 병들이 날아와 아자즈와 그의 부하들의 머리 위에서 폭발의 굉음에 담이 흔들렸고 그들의 얼굴과 온몸이 쏟아져 내려 피가 솟구쳤다.
아자즈와 그의 부하들이 픽픽 쓰러졌다.
하인들은 그들을 마저 죽였다.
유니스가 동네 한복판에 서서 소리쳤다.
“동네 사람 여러분! 관재인 나리 덕에 여러분에게 행복과 평화가 깃들었습니다.
오늘 이후 여러분을 학대하고 여러분 돈을 강탈하는 수장들은 없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아라파와 그의 가족은 한밤중에 리파아 구역에 있는 지하실에서 대저택 왼쪽에 자리한 수장 두목의 집으로 이사했다.
이는 관재인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이제 그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그곳에 이사하자마자 문지기, 요리사, 정원사 그리고 하녀들을 관재인이 보냈다.
잠시 후 아라파는 관재인의 부름을 받고 그 즉시 관재인에게 달려갔다.
‘너도 알다시피 수장들의 가족들이 원한을 품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질투에 눈이 멀었다.
그러니 너는 심각한 위험에 처했다.
아무도 믿지 말고 혼자 밖에 나가거나 집에서 멀리까지 나가지 마라.” 아라파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분노와 증오로 둘러싸인 죄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내 부하들이 네 주변에 늘 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을 잊지 마라.
그들은 아자즈와 사아달라와 자발라위를 죽인 사람이 동일한 사람인 마법사 아라파다.라고 말하고 있어.”
“제가 저주를 머리에 이고 있군요.” 아라파가 발작적으로 언성을 높였다.
“내가 너를 보호하고 하인들이 네 주위에 있는 한 겁내지 마라.” 관재인이 조용히 말했다.
‘나를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둔 나쁜 놈!
당신에게 봉사하려는 게 아니라 당신을 죽이려고 마법을 사용하고 싶을 뿐이야.
사랑하여 자유를 주고 싶었던 사람들이 지금 나를 증오한다.
아마도 나는 그들 손에 죽을지도 몰라.’ 아라파는 마음속으로 답답함을 삼켰다.
“동네 사람들에게 수장들의 몫을 나누어 주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당신과 저에게 만족할 것입니다.
그는 희망을 품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수장들이 제거된 것이냐? 그리고는 잔인하게 말을 이었다.
“그들을 만족시킬 방법은 그만둬.
차라리 타인의 증오심에 익숙해져라.
그리고 네가 나를 기쁘게 해야만 네가 안전하다는 것을 명심해라.”
“언제든지 분부만 내리십시오.” 아라파는 낙담해서 대답했다.
“많은 수의 병을 저장해 두는 게 현명하지 않나?
아라파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절망에 사로잡혔다.
그의 차례가 이토록 빨리 올 수 있단 말인가?
그가 불쑥 말을 꺼냈다.
“나리, 제가 여기 있는 게 불편하시다면 가서 다시는 오지 않겠습니다.”
관재인이 위협하듯 얼굴을 찌푸렸지만 아라파는 머뭇거리지 않고
“나리에게 수장들은 이제 없습니다.
나리가 지닌 힘은 병에서 생긴 겁니다.
만일 제가 오늘 죽는다면 나리는 내일 아니 모레 제 뒤를 이어 죽게 되실 겁니다.”라고 말했다.
관재인은 갑자기 성난 야수처럼 그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두 손으로 잡고 버둥거릴 때까지 손에 힘을 줬다.
그러나 그는 곧 꽉 잡은 손에서 힘을 빼고 손을 풀었다.
그러고는 혐오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라파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심호흡을 했다.
관재인은 하던 이야기를 마저 했다.
“두려워 마라, 네 목숨이 나로 인해 위험하지는 않을 테니.
세상만사를 즐겨.
그러나 우리가 함께 결실을 거두어야 하는 네 마법을 잊지는 마라.
우리 중 하나가 다른 사람을 배신하면 그 자신을 배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명심해.”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반복해서 듣던 아와티프와 하나슈는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세 사람 모두 이 새로운 삶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듯했다.
그러나 곧 오래된 고급 와인과 산해진미가 가득 놓인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동안 걱정거리를 잊었다.
아라파가 관재인의 집에서 늦도록 돌아오지 않자, 아와티프는 정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가 나자 그녀는 그를 맞이할 채비를 했다.
그때 지하실 쪽에서 하녀 하나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대문을 향해 걸어가는 게 보였다.
아라파가 비틀거리며 걷자 하녀는 건물 벽 쪽을 향했다.
그는 그녀를 따라갔다.
아와티프는 달빛으로 드리워진 벽의 검은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 그들이 포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아와티프도 자발라위 동네 여자답게 분노가 폭발했다.
그녀는 딱 달라붙어 있는 남녀에게 사자처럼 달려들어 주먹으로 아라파의 머리를 마구 때렸다.
그는 어리둥절해 비틀거리며 하녀에게서 떨어지면서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그들은 다음 날 이른 아침까지 그곳에 있었다.
문제를 일으킨 하녀는 떠나고 다른 하녀가 시중을 대신 들었다.
삶이 지옥이 되었다.
이제는 무시무시한 감옥에서 자신을 위로하는 유일한 위안거리마저 잃게 되었다.
낮에는 감옥이었다가 밤에는 홍등가로 변했다.
그녀가 사랑했던 아라파는 어디 있는 것일까?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산투리에게 도전했던 아라파, 지금 그는 까드리나 사아달라와 같은 멍텅구리에 불과했다.
그에게 삶은 불면의 두려움이자 타는 듯한 고통이었다.
아라파가 관재인의 집에서 돌아와 보니 아와티프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열흘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라파는 아무도 모르게 잔필 어머니를 찾아가기로 하고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
몇 발짝도 떼지 않아 뒤따르는 발소리를 들었다.
하인 두 명이 따라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라.” 아라파가 말했다.
“저희는 관재인 명을 받들어 나리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는 화는 났지만 야단을 치지 않았다.
아와티프는 잔필 어머니의 집에 있었다.
아라파는 아와티프에게 “정신 차리고 나와 함께 갑시다.”라고 말했다.
“나는 당신의 감옥으로 돌아가지 않아요.” 그녀는 앙칼지게 대꾸했다.
“남자는 다 실수를 하기도 해.”
“당신은 일생일대의 크나큰 실수를 한 거예요.” 그녀가 고함을 쳤다.
그는 그녀의 마음을 돌려 보려고 애를 썼지만 허사였다.
그녀는 그의 부드러움은 완강함으로, 그의 분노에는 분노로, 그의 욕설에는 욕설로 맞섰다.
그는 절망하여 그곳을 나왔다.
까드리는 아라파와 사이가 돈독해지자 보통 한밤중에 시작되는 자신의 특별한 야회에 초대하기 시작했다.
아라파는 넓은 홀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야회에 참석했다.
그곳에는 산해진미와 최상의 술이 넘쳐났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벌거벗고 춤을 추고 있었다.
아라파는 술과 광경에 취해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라파는 새벽에 관재인의 집에서 나왔다.
그는 잔뜩 취해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몽롱한 마법에 걸린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 몇 발짝 떼기도 힘들었다.
자신의 집과 관재인 집 사이 대저택 대문 앞에서 예상치 못한 뜻밖의 일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나 그를 뒤따르던 자들이 달려들어 유령을 붙잡았다.
분명히 유령 같았던 사람은 질밥을 걸친 흑인 여자였다.
그가 하인들에게 그녀를 놓아주라고 하자 풀어주었다.
“무슨 일인가?”
“따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녀는 흑인 특유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화난 눈으로 쏘아보며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가슴이 뛰고 취기가 싹 달아났다.
그 불운했던 날 밤 자발라위의 방에서 보았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그녀는 자발라위의 하녀였다.
그는 하인들을 보내고 대저택 앞에 둘만 남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래 무슨 일로?”
“저는 불평을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유언을 지키기 위해 당신과 둘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저는 자발라위의 하녀였고 그의 임종을 지켰습니다.”
“그는 증거가 필요 없었지만 흥분한 목소리로 “할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셨느냐?”라고 물었다.
“하인의 시체가 발견되자 충격을 크게 받으시고 갑자기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유언을 전하기 위해 왔습니다.”
“무엇인가? 말해라.”
“돌아가시기 전 마법사 아라파에게 가서 내 말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그로 인해 마음이 흡족해서 죽었다고 말입니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은 내가 자발라위를 죽였다고 말하지 않더냐?”
“아무도 자발라위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분을 죽일 수 없습니다.” 그녀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하인을 죽인 저가 그를 죽인 거야.”
“거짓말로 꾸며 낸 이야기예요. 그분은 제 앞에서 돌아가셨어요.” 그녀는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아라파는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네가 한 말이 진실이라고 맹세할 수 있느냐?” 그는 고문을 받는 사람이 숨이 넘어갈 듯 말했다.
“하느님께 맹세합니다. 그분은 다 아십니다.” 그녀는 분명히 말했다.
동이 트면서 지평선 너머 하늘이 점차 불바다로 변해 갈 즈음 그녀는 떠났다.
“도망가기로 결심했어.” 아라파가 차분하고 확고한 태도로 말했다.
하나슈는 너무 놀라 하던 일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작업실 창문이 굳게 닫혀 있었지만 그는 두려웠다.
아라파는 평소처럼 저녁이면 관재인의 집으로 갔다가 동트기 직전 집으로 돌아왔다.
하나슈가 자지 않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인들이 잠들 때까지 그들은 한 시간 동안 침실에서 기다렸다.
두 사람은 몰래 빠져나왔다.
객실 발코니에서 잠자는 하인의 코 고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그들은 계단을 내려와 대문을 향했다.
아라파는 공동주택으로 들어가 잔필 어머니 집으로 갔다.
“나야 문 열어, 아와티프.” 그가 간절하게 말했다.
그녀가 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다짜고짜 “나를 따라와, 함께 도망가자.”라고 말했다.
하나슈의 휘파람 소리가 들리고 연이어 소란이 일었다.
아라파는 가슴에서 노트를 꺼내 잔필 어머니를 밀치고 채광창 밖으로 던졌다.
그를 잡으려 올라오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자 그는 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옥상으로 난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 점점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때 옥상 출입문에서 그를 향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항복하라, 아라파.”
그는 포기하고 그 자리에 말없이 서 있었다.
그들이 다가와 그를 에워쌌다.
그들 사이에 관재인의 문지기 유니스가 끼어 있었다.
그가 다가와 고함쳤다.
“죄인! 나쁜 놈! 배은망덕한 놈!”
두 남자에 의해 아와티프가 끌려오는 것이 보였다.
격노한 관재인 앞에 아라파와 아와티프가 뒷짐결박을 당하고 서 있었다.
관재인은 양손이 아플 정도로 아라파의 얼굴을 주먹으로 무참히 때렸다.
그가 부하들을 부르자 자루 두 개를 가지고 부하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아외티프를 얼굴부터 자루를 씌우고 재빨리 묶었다.
“원한다면 우리를 죽여.
그럼 당신을 증오하는 사람들이 내일 당신을 죽일 거야.” 아라파는 미친 듯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나는 나를 영원히 지켜 줄 수 있을 만큼 병들을 넉넉하게 갖고 있어.” 관재인은 싸늘하게 웃었다.
“하나슈가 도망갔어요.
모든 비법을 갖고 도망가서 언젠가 당신이 저항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돌아와 당신으로부터 동네 사람들을 구할 겁니다.”
관재인은 아라파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그자들이 달려들어 아와티프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그에게도 자루를 씌워서 사막을 향했다.
아와티프는 기진맥진했음에도 불구하고 비명을 질렀다.
우악스러운 손이 그들을 구덩이 속으로 던지고 흙을 퍼부었다.
새벽 여명 속에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아라파의 소문은 온 동네에 쫙 퍼졌다.
그러나 그가 죽은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동네 사람들은 그가 관재인을 화나게 해서 필연족으로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잔필 어머니! 안녕하세요?”
그녀는 한눈에 그를 알아보고 놀라며 곧바로 “하나슈!”라고 불렀다.
그가 웃으면서 다가와 “고인이 붙잡히던 날 아주머니 댁에 무언가 남기지 않았나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키려는 듯 서슴없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어!
아라파가 종이 뭉치를 채광창 밖으로 던지는 것을 봤어.
그래서 다음날 몰래 그리로 가 쓰레기 더미에서 노트를 찾긴 했지만 그게 아무 쓸모없는 것이라 그곳에 두고 왔어.”라고 대답했다.
아라파의 친구 하나슈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열심히 노트를 찾고 있는 것을 봤다는 소식이 관재인의 집에 전해지자 그 집 하인들이 하나슈를 찾기 위해 달려왔지만 하나슈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관재인이 하나슈를 산 채로든 시체로든 데려오는 자에게 어마어마한 포상을 약속했지만 사람들은 하나슈가 그들의 삶에 분명 변화를 줄 수 있는 기폭제 역할을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들 마음속에는 어딘가에 숨어 지낼 하나슈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났다.
물론 그 사랑 속에는 아라파에 대한 사랑도 포함되었다.
동네는 다시 폭력 행위가 난무하고 증오와 공포가 팽배한 험악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내하고 끈질기게 학대와 억압을 견디면서 희망의 끈을 놀지 않았다.
그들은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밤이 지나면 낮이 되듯 불의는 반드시 사라져.
우리는 우리 동네에서 압제가 멸하고 기적 같은 날이 훤히 밝아 오는 것을 분명 보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