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주와 마주앙의 비하인드

by 산내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 고대의 사람들은 와인의 재료가 되는 포도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지금이야 와인을 마시면 취하는 과학적 원리가 밝혀져서 그 이유를 알고 있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와인을 마시면 은근히 기분이 좋아지고, 과하면 때로는 환상을 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몸을 벗어나면 신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고도 믿었다.
기독교가 유럽에 전파되기 시작했을 때는 와인의 역할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난다. 와인을 성스러운 와인과 세속적인 와인으로 구분한 것이다.

세속적인 와인, 그러니까 종교적 의미가 없는 와인의 경우에도 과거에는 중요한 기능을 했다.

고대와 중세, 근대까지도 와인은 갈증을 해소해 주고 부족한 열량을 보충했으며 오염이 쉬웠던 물보다 안전한 식수로 기능했다.
물론 당시에는 지금처럼 알코올이 높은 와인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훨씬 물었고 마시기 가벼운 음료였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 다채로운 향신료나 따위를 와인에 섞어서 마셨다.


성스러운 의미에서 와인은 수 세기 동안 의식에 활용되어 왔으며, 지금까지도 여러 종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인에게 성찬 와인이 그리스도의 피의 상징이다.

특히 교회에서 와인은 없어서는 안 될 음료였기에 오랜 시간 교회 소유의 포도밭에서 정성 들여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었다.

와인은 교회에 몸담은 사람들의 유용한 식수이자 자금원이자 한 잔의 쾌락이었으며, 와인을 기부하면서 지역 사회의 발전에도 기여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성찬에 와인이 쓰기 시작한 것은 기록에 따르면 12세기부터다.

성찬주는 예수의 피를 상징하기에 더욱 까다롭게 만들어진다.

교회법 924조 3항에 의하면 '포도주는 포도로 빚은 천연의 것으로 부패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의 322항에 따르면 '성찬례 거행에 쓰일 포도주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으로, 다른 물질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천연 포도주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성찬주는 내추럴 와인이었던 것이다.
과거에는 교회나 수도원이 직접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었고 사제들이 직접 와인을 만들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대개 외부에서 생산된 와인을 쓴다.

유럽의 경우 여전히 수도원이 소유한 포도밭에서 수도원에 구비된 양조 시설을 활용해 성찬주를 만드는 곳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은 어떨까?

교회나 수도원 자체가 포도밭을 소유하거나 와인을 만드는 시설을 갖춘 경우가 없다 보니 외부에서 계약 생산된 와인을 사용한다.
바로 '마주앙 미사주'다. 마주앙의 탄생은 스토리가 상당히 흥미롭다.

한국전쟁 후 식량난에 허덕이는 와중에도 수많은 곡물이 술을 빚기 위해 사용되곤 했었다. 그즈음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인들이 척박한 땅에 포도를 재배하고 훌륭한 와인을 만들고 있는 걸 보고는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인 두산의 박두병 회장에게 와인 양조를 권한 바 있다.


당시 전문가들이 독일 와인의 노른자위인 모젤과 라인강 유역의 테루아와 비슷한 곳을 우리나라에서 찾아 포도밭을 일구고 독일에서 전문가를 초빙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탄생한 와인이 바로 마주앙이다.

발음에서 프랑스 느낌이 폴폴 풍기지만 사실 마주앙은 마주 앉아 즐기다'라는 의미를 담아 순우리말을 변형한 것이다.

당시에는 술의 명칭에 외래어를 섞는 것이 불법이었기에 탄생하게 된 귀여운 이름이다.
마주앙 와인은 아시아 최초로 로마 교황청의 승인을 받아 지금까지도 국내에서 성찬 주로 쓰이고 있다.

마주앙의 다른 와인들은 해외에서 생산된 포도 원액 혹은 완성된 와인을 블렌딩 해서 만들지만 미사주는 원재료가 100% 한국의 포도다.

포도 품종은 경산에서 재배한 머스캣 베일리 A(적포도)와 사이벨(청포도)이다.

심혈을 기울여 양조한 와인을 6개월 숙성한 뒤 각 교구청을 통해 교구로 납품하고 있다.

이쯤 되면 맛이 궁금해질 텐데 아쉽게도 마주앙 미사주는 일반 소비자가 구매할 수 없지만 마주앙 미사주는 향기로운 꽃향과 약간의 달콤함이 입안에서 우아하게 이어져서 누구나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좋은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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