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을 멸하고 연을 멀리 쫓은 후 진왕은 드디어 초를 격파할 생각을 했다.
당시 진의 젊은 장군 이신은 패기가 넘치는 용장이었다.
연나라 태자 단을 추격해서 죽인 이가 바로 그다.
진왕은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왕이 이신에게 물었다.
"나는 초를 공격해서 빼앗고 싶소. 장군이 보기에 얼마의 병력이면 족하오?"
이신이 대답했다.
"20만 명 이하로 충분합니다."
진왕은 다시 왕전에게 물었더니 왕전이 대답했다.
"60만 명이 아니면 불가합니다."
진왕이 핀잔을 주었다.
"왕장군은 이제 늙었구려. 뭔 겁이 그리 많소. 이 장군이 과감한 기세가 있고 용기가 넘친다더니, 그 말이 옳구려."
이리하여 진왕은 이신과 몽염에게 20만 명의 병력을 주어 초를 치도록 했다.
왕전은 자신의 의견이 채택되지 않자 병을 핑계로 고향인 빈양으로 은퇴했다.
이신이 평여주를 공략하고 몽염이 침을 공격해 초군을 대파했다.
이신은 다시 언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군대를 끌고 서쪽으로 돌아가 몽염과 성보에서 만나기로 했다.
10만 명으로 도성을 포위할 수 없고 보급로가 위험하니 서쪽으로 회군해서 몽염과 만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초군은 예전에도 그랬듯이 패배 후 반격에 강했다.
이신의 군대가 물러나자 바로 추격전을 개시했는데,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따라붙어서 이신의 병영으로 들이닥쳤다.
이 싸움에서 초군은 진군의 보루 두 곳으로 돌격해서 도위 7명을 죽이고 진군을 대파하니 진군은 도주했다.
패배 소식에 진왕은 대로했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가?
그는 바로 정신을 가다듬고 몸소 빈양으로 물러난 왕전을 찾아갔다.
그는 필요하면 당장 잘못을 인정하고 체면을 버리고 스스로 신하도 찾아갈 수 있는 인물이다.
왕전을 보고 왕이 말했다.
"과인이 장군의 계책을 쓰지 않았더니 이신이 과연 진군을 욕보였소, 듣자니 지금 초군이 날마다 서쪽으로 진군하고 있다 하오.
장군이 비록 병이 들었으나, 어찌 차마 과인을 버릴 수 있겠소."
왕전이 사양하며 말했다.
"노신은 병이 들어 정신이 어지럽습니다.
대왕께서는 다른 현명한 장수를 택하소서."
진왕이 재차 재촉했다.
"됐소, 장군은 거론하지 마시오."
왕전이 조건을 제시했다.
"대왕께서 반드시 신을 쓰시겠다면 좋습니다. 허나 60만 명이 아니면 불가합니다."
진왕이 말했다
"장군의 말대로 하겠소."
이리하여 왕전이 60만 명을 거느리고 출정하는데 왕이 패상까지 따라가며 전송했다.
초는 왕전이 이신을 대신해서 공격해 온다는 말을 듣고 나라 안의 군대를 모두 내어 맞서 싸우러 나왔다.
왕전은 전장에 도착하여 보루를 견고하게 쌓고 지키면서 싸움에 응하지 않았다.
초군이 여러 번 출격하여 도발했지만 왕전은 끝내 응하지 않았다.
대신 왕전은 매일 군사들을 쉬게 하고 목욕을 시키며 잘 먹이고 다독이며 병사들과 같이 밥을 먹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후 왕전이 사람을 시켜 군중에서 병사들이 뭘 하고 노는지 알아보게 했다.
심부름꾼이 돌아와 보고했다.
"돌을 던지고 장애물을 넘는 놀이를 합니다."
그제야 왕전이 말했다.
"이제 사졸들을 쓸 수 있겠다."
사실 60만 명은 너무 수가 많다.
야전에서 훈련이 되지 않은 60만 명은 20만 명보다 못하기에 왕전은 군의 투지가 오르고 훈련이 될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이때 초군은 왕전이 맞서 싸우지 않으므로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물러났다.
적이 싸움에 응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렇게 물러나도 되는 것인가?
그들은 물러나 요해처를 지키려 한 듯하다.
초군이 물러나는 시기를 놓치지 않고 왕전은 추격 명령을 내렸다.
초군은 60만 명의 대군이 그렇게 빨리 움직이리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오래 쉰 터라 사기가 오른 진군은 초군을 따라붙어 대파하고 기남에 도착하여 초장 항연를 죽이니 초군은 대패하고 도주했다.
진은 승세를 타고 초의 성읍들을 평정하여 한 해 남짓 후에 초왕 부추를 사로잡고 초 땅에 군현을 두었다.
또한 남쪽으로 백월 군주를 공격했다.
초는 이렇게 무너졌다.
때는 기원전 223년이었다.
초는 춘추시대 이래로 상무의 기풍이 넘치는 강국이었다.
그들은 공격을 받으면 성에서 포위되기를 기다리는 대신 언제나 국경으로 나와 과감히 싸웠다.
그렇기에 오래전부터 주나라를 종주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왕을 칭했으며, 춘추시대에는 북방의 진과 남북국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오랜 전쟁으로 약해진 나라는 60만 대군의 마지막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문왕이나 장왕처럼 열렬한 왕들이 터를 닦고, 투자문과 손숙오 등의 재상들이 다지고, 노장이 노닐고, 굴원이 노래하던 위대한 문화의 나라 초가 이렇게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