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은 적은 제나라뿐이다.
지금껏 진은 원교근공책에 충실하여 제를 우방으로 두었지만 더 이상 칠 나라가 없는 지금 제는 진의 표적에 불과했다.
온 천하가 다 넘어갔는데 제가 어떻게 버티랴.
제왕 건은 처음부터 항복할 요량이었다.
제왕 건이 진에 입조하려 하자 옹문사마가 나아가 말했다.
"왕을 세운 것은 사직을 위함입니까, 아니면 왕 자신을 위한 것입니까?"
왕이 대답했다.
"사직을 위함이오"
사마가 다시 물었다.
"사직을 위해 왕을 세울 것이라면, 어찌하여 왕은 사직을 버리고 진에 입조하려 하십니까?"
그러자 왕은 수레를 돌려 돌아왔다.
옹문은 국도의 서문이니 서문의 수장이 무력으로 왕을 저지한 것이다.
또한 나라의 대읍인 즉묵의 대부는 옹문사마가 간하자 왕이 받아들였다는 말을 듣고 왕과 일을 도모할 수 있다고 여겨 입조 하여 왕에게 말했다.
"제 나라 땅은 사방수천 리이며 갑옷을 두른 병사가 수백만입니다.
게다가 삼진의 대부들은 모두 진을 불편하게 여겨, 아미와 견 사이에 와서 관망하고 있는 이가 백 몇십입니다.
왕께서 이들을 받아들여 100만의 무리와 함께 삼진의 옛 땅을 거두게 하면 임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언과 영의 대부(초나라 대부)로서 진나라 백성이 되기 싫어서 우리 성 남쪽 아래로 온 이가 또 수백, 수십이니 이들을 거두어 다시 100만 대중과 함께 초의 옛 땅을 접수하면 무관까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리하면 제나라의 위세를 세우고 진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대저 남면하고 칭하는 길을 버리고 서면하고 진을 섬기는 것은 대왕께서 취할 길이 아니라 여깁니다."
큰 나라의 큰 읍을 다스리는 대부의 기개가 넘치는 말이었다.
그러나 과연 가능할까?
한편 진은 진치를 사자로 보내어 500리의 땅을 줄 테니 제왕에게 내신이 되라고 유혹했다.
진치 따위는 모두 이사의 사주를 받은 무리들일 것이다.
당시에는 이런 매국노 무리들이 무수히 많았다.
제왕은 즉묵대부의 말을 듣지 않고 진치의 말을 듣고는 드디어 진에 입조했다.
그러나 진은 약속을 어기고 건을 공 땅의 송백 숲에 감금하고 굶겨 죽였다.
가장 늦게 입조 했기 때문일까?
그가 감히 대들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당시 제나라에 이를 말한 노래가 있었다.
"소나무, 잣나무냐? 건을 공 땅에 머물게 한 이는? 아니면 그 객이냐?"
제는 태공이 세운 위대한 동방 문명의 나라였다.
환공의 원대한 도량과 관중의 기량이 합쳐져 제후들을 아홉 번 모으고 처음으로 회맹의 질서를 세운 초대 패자의 나라다.
직하 학당에서 무수한 학자들이 제자백가 학문의 꽃을 피웠기에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당시의 학문을 배울 수 있다.
또한 한때 연에게 망할 뻔하기도 했지만 열다섯 열혈소년 왕손가가 들고일어나 적을 내쫓은 자존심의 나라였다.
부유하고 활달하여 태사공이 "양양하구나, 실로 대국의 풍모로다"라고 찬양했던 나라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졌다.
때는 기원전 221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