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야전군의 최후 - 신안의 학살

by 산내

유방이 무관을 들이치려고 할 때 북방에서 대 사건이 벌어졌다.

드디어 장함이 전군을 들어 항우에게 항복한 것이다.
이에 항우는 그를 옹왕으로 삼고 관중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왜 여전히 강력한 20만 명의 진군이 돌연 싸움을 포기한 것일까?

당시 장함은 극원에 주둔하고 항우는 장수 남쪽에 주둔하며 서로 대치하며 싸우지 않았다. 병법의 관점에서 장합의 전략은 옳았다.

지금 항우가 승세가 있다지만 황하를 건너 조나라의 곡식을 먹는 차다.

진군이 남하하여 황하를 통해 곡식을 공급받으며 자리를 굳히면, 항우는 군량 때문에 조바심을 낼 것이고 제각기 꿍꿍이가 다른 제후 군의 응집력은 약화될 것이다.
승세를 탄 적과 한 번 싸움으로 승부를 가르기는 위험하다.

그러나 진군이 수차례 퇴각하자 진황제 2세가 사자를 보내 장함을 꾸짖었다.
장함은 두려워 장사 사마흔을 함양으로 보내 사태를 보고하고자 했다.

사마흔이 함양에 이르러 사마문에서 사흘을 머물렀지만 조고가 만나주지 않으니 꿍꿍이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조고는 의심 덩어리다.
그는 해를 넘기며 산동에서 싸우는 야전군사령관들을 자기 사람으로 교체할 마음이었다. 사마흔이 두려워 보고를 포기하고 산동의 군중으로 돌아오면서 감히 왔던 길을 그대로 가지 못했다.

과연 조고는 사람을 보내 사마흔을 추적했으나 잡지 못했다.
사마흔은 군중에 도착하여 장함에게 고했다.

"조고가 궁중에서 일을 주관하니, 그 아래는 일할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싸움에서 이기면 조고는 필시 우리의 공을 시기할 것이고, 이기지 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원컨대 장군께서는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장함은 의심하며 몰래 사자를 항우에게 보내 약조를 맺으려 했다.

항우는 병법을 아는 이다.
요청에 답을 주지 않은 채 포장군으로 하여금 밤낮으로 군대를 진격시켜 장수 남쪽에서 진군과 싸워 대파했다.
이 틈에 항우는 전군을 이끌고 오수가에서 싸워 다시 대승을 거뒀다.

장함이 다시 사람을 보내 항우를 만나나 화약을 맺고자 했다.
사실상의 항복 요청이었다.
항우가 군리들을 불러 모아 말했다.

“군량이 부족하여 화약을 받아들일까 하오."

군리들은 모두 좋아했다.

이리하여 항우는 원수 남쪽의 은허에서 약조를 맺었다.

맹서가 끝난 후 장함은 항우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조고 이야기를 했다.
항우는 이에 장함을 옹왕으로 세우고 초군의 군중에 두었다.
또한 장사 사마흔은 상장군이 되어 진군을 이끌고 선봉이 되었다.


이리하여 항복한 장함을 포함한 초군의 행렬이 함곡관 지척의 신안에 이르렀는데 심상찮은 조짐이 보였다.

제후의 이졸들이 전에 요역과 수자리를 살고자 관중을 지날 때 진의 군리들이 함부로 한 적이 많았다.
이제 진군이 제후 군에게 항복하니 제후의 이졸들이 승자로서 거꾸로 그들을 노비처럼 부리고 욕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진의 이졸 다수가 몰래 수군거렸다.

“장 장군 등이 우리를 속여 제후 군에게 항복하도록 했다.
지금 능히 관으로 들어가 진을 격파하면 가장 좋지만, 이기지 못하면 제후들은 우리를 포로로 끌고 동쪽으로 갈 것이고, 진은 필히 우리들의 처자를 다 죽일 것이다."

제후 측 사람이 몰래 이 이 수군거림을 듣고는 항우에게 보고했다.

항우는 이에 영포와 포장군을 불러 대책을 논하며 말했다.

"진의 이졸은 여전히 숫자가 많은데 그들은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고 있소.
관에 도착해서 말을 듣지 않으면 일은 분명 위태로워질 테니 이졸은 쳐서 죽이고 장함과 장사 흔(사마흔)과 도위 예(동예)만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낫소
이리하여 초군은 밤에 진군을 기습하여 항복한 사졸 20만 명을 신안성 남쪽에다 파묻어 버렸다.


이는 천인공노할 만행이었다.

진군은 관으로 진격하고 있었으니 엄밀히 말해 포로가 아니었다.
항우는 무려 2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기극을 벌인 것이다.
살해당한 이들 다수는 여산의 형도였거나 노비의 자식들이었을 것이다.

군공을 세우고 양민이 되어 새 삶을 살고 싶었던 그들의 꿈은 무참히 깨졌다.
진이 살인을 일삼으니 전국에 반란이 일어났다. 허나, 기억해야 할 것은 진시황이나 2세도 결코 한꺼번에 20만 명을 죽인 적은 없다. 항우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희대의 살인마다. 이로서 항우는 스스로 사이비임을 증명했고, 그의 천하관이 얼마나 좁은 지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산내로고.pn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나라의 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