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차] 어쩔수 없다면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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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터레스트

벌레를 극도로 무서워한다. 특히 바선생은 깨알만한 것이어도 등줄기가 오싹해지고, 사진이나 그림으로 있어도 손으로 만지지 못한다. 곤충까지는 그럭저럭 견디지만 벌레는 내게 너무 어려운 영역이다. 하지만 새 작업실을 얻으며, 굉장히 오래된 상가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식당을 운영했던 곳이다. 나는 식당이어서 겉보기에 허름할지언정 벌레는 잘 처리해두셨을 거라고 믿으며 부동산을 계약했더랬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평생 살아온 시간동안 본 바선생의 수보다 훨씬 많은 바선생님들을 단시간에 마주해야했다.

인테리어를 위해 뜯어낸 벽지와 시트지 뒤로 다 썩어서 무너져내린 합판이 있었고, 그 합판뒤로 그것들이 신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구멍난 콘트리트벽(왜 콘크리트벽이 구멍이 나있는지는 모르겠다)으로 밖에서도 난입하는 것 같다.

인테리어를 시작할 당시 신랑인 바선생과 마주친 뒤에 아무말없이 잡았다고한다. 내가 너무 놀랄까봐 말하지 않았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보았다고. 잡았다고. 척추를 따라 소름이 돋았다. 앞으로 험난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인테리어를 할 당시에 나오는 그놈들은 신랑이 용감하게 잡아주었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돌렸었는데...인테리어가 끝난 지금, 혼자 작업실에 남게되었고, 나는 그것들과 일대일로 대면해야했다. 아니 일대일이면 다행이고, 일대 다수도있다. 혼자 바선생을 봤을땐, 어찌할 줄 모르고 카톡으로 바선생이 나왔다고 신랑한테 호들갑을 떨었고(어쩌라는건지), 작업실을 빙글빙글 돌다가 종이컵을 가져와 바성생을 가둬버렸다. 하지만 이대로 두는것도....너무 무서운일이 아닌가..당장 내가 있는 공간에서 저것을 몰아내야했다. 나는 철저히 혼자였고, 공포의 대상을 이겨내야만했다.

두꺼운 종이를 가지고와서 종이컵 아래로 살살 밀어넣었다. 이것을 완벽하게 가두어서 변기에 버려버릴 생각이었다. 종이컵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눈을 질끈 감고, 서서히 종이를 들어올렸다. 위에 얹어진 종이컵이 쓰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그렇게 변기로 향한 뒤에 재빨리 종이와 종이컵을 분리해서 그놈을 물에 풍덩 하고 빠뜨렸다. 그리고 변기뚜껑을 닫고 물을 내려버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선생을 잡았던 순간, 그게 없어졌다는 안도감과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몰려왔다. 마지막으로 변기뚜껑을 올려 존재하지 않음을 재차 확인한 뒤 작업실에 주저앉았다. 퇴치약을 붙여놓아서 힘이없던 벌레여서 다행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종이컵이 버틸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 뒤로 나는 어제도 그것들의 조막만한 새끼(죽어있는) 두어마리 마주쳤는데, 성체를 잡았던 경험이 강하게 와닿았는지, 망설이지않고 휴지를 돌돌말아 잡아버렸다. 또 소지 손톱 만한 다리가 많은 벌레도 마주쳤는데, 소리를 지르며 휴지로 잡아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이제 어떤 벌레가 나와도 무섭겠지만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강해지고 싶지 않지만 나는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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