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이것이 인간인가>의 저자 레비는 철저히 본인이 직접 경험한 일들만을 위주로 글을 구성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역사적 기록으로 접한 공식적인 ‘아우슈비츠’와 실제로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이 인식한 ‘아우슈비츠’가 얼마나 다른가를 몸소 체감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왜 잡혀가야 하는지, 왜 이유없는 죽임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들의 최대 숙적은 나치즘이나 파시즘이 아닌, 눈앞으로 다가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을지 모른다. 지금의 우리로서야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저런 끔찍한 짓을 하는지, 왜 그 누구도 이상함을 느끼거나 학살을 막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지 궁금해할 수 있지만, 막상 우리 역시 그 시대를 살아갔다면 나의 가족, 나의 국가가 속한 이데올로기에 큰 의문을 가지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늘 아우슈비츠-홀로코스트와 관련한 주제가 등장할 때면, 암울해진다. 개개인이 어쩔 수 없는 거대한 장벽과도 같아서. 현대의 우리에게 독일의 아우슈비츠 터는 일종의 Difficult-Heritage로 남아 우리의 곁을 함께한다. 좋은 기억을 상기시키는 문화유산과는 달리, 흑역사의 잔유물이 된 유산들은 우리로 하여금 뼛속 깊이 ‘반성의 식은땀’을 흘리게 한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마주할 용기를 지녀야 한다. 절대 피해서는 안되며, 고개 숙여 바라봐야 한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그 누구보다도 ‘평범한’ 이들은 사실상 인간이라면 겪어서는 안되는 일을 겪어내고, 결국엔 최후를 맞이한다. 그 최후는 육체의 최후일 수도 있고, 사람다운 영혼의 최후일 수도 있으며, 레비의 경우에는 낙관의 최후가 되어 다가온다. 엄청나게 강한 정신과 육체를 가졌고, 벌 받아 마땅하고,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성격적 결함을 가지거나 신의 피를 이어받아 ‘비범’해서 이런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 아니다.
그냥 그들은 우리와 다름없는 사람들이었기에, 이 작품을 마주하면서 눈을 질끈 감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왜 반항하지 않았냐”고 하는 식의 질문은 현재의 관점일 뿐이다. 그들은 누구를 향해 분노의 화살을 당겨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질문은 어쩌면 권력을 쥔 이들을 향한 비판이 아닌, 혐오스러운 자아에 대한 자조일지 모른다. 의심하지 못하고, 반문하지 못하며, 가축보다도 못한 삶을 살아야 했던 자신에 대한 한숨 섞인 안타까움의 목소리일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삶이라고 해서 온전히 절망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든 솟아날 구멍이 있어서 일까.
레비에게, 그리고 이것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 어떤 활기찬 ‘빛’으로, 일상적인 기쁨을 느끼는 존재로 등장하는 슈타인라우프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인간성의 상실을 경험하지 않은 순수한 이만이 전해줄 수 있는 긍정의 기운을 뽐낸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량하다는 찰나의 확신을 가져다줄 만큼 보는 내내 기분이 좋아진다.
유대인 레비는 이렇듯 긴 시간 동안의 박해 속에서 어떻게 하면 생존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두었고, 결국 몸을 이끌고 이 시대를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과연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생존일까에 대해서는 아니 의심할 수 없다. 책의 묘사는 이보다 더 잔인할 수 없을 만큼 읽기 힘들지만, 이것은 그 어떤 꾸밈이 만들어낸 잔인함이 아니다. 현실이 늘 ‘인위’보다 더 따가운 이유, 날 것의 비린내는 가리려 애써도 가려지지 않는 이유 역시 이곳에서 기인하지는 않을까?
레비는 말한다. “이해하려 하지 마라”, 즉 버텨라. 버티는 것만이 살길이며, “왜”라는 질문은 정신 건강에 아주 치명적일 정도로 해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의 불행함은, 그 열등감은 공포정치로 무기화되어 몰-인간화의 전례를 남겼고, 지워지지 않은 얼룩은 그들로 하여금 평생 갚아도 모자란 빚이 되어 돌아왔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홀로코스트’라는 사건명이지만, 나머지 실상, 그런 위대한 “사건명”을 가지지 못한 괴롭힘과 시대적인 악덕의 세습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잘 형식화된 포장, 그 밑에서 지금의 의미를 지닌 ‘홀로코스트’는 “그래, 우리가 잘못했어. 미안해. 너희 죽음은 억울했으니 묘비명을 세워줄게”라며 미화된 약올림을 건네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판해야 한다. 맹목하지 않아야 한다. (같은 주제를 가진 문학, 영화를 출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 원색을 어디까지 훼손해도 되는가 -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