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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이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

알랭 레네 감독의 <밤과 안개>

by young


밤과 안개라는 것이 주는 이미지가 어떠한가.

어둡고, 뿌옇다. 앞이 잘 보이지 않고, 막막하기만 하다.


이 작품은 18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으로 홀로코스트에 대해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이다. 홀로코스트를 살아갔던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매일이 밤과 안개에 뒤덮인 나날들이었을 것이다. 또한, 나치즘에 반대한다면 언제 어디서 밤과 안개 속으로 사라져, 즉 죽어 없어져 버려도 이상하지 않았을 시대를 비꼰 듯 보인다. 흑백의 화면과 객관적인 나레이션, 차분한 장면 전환은 마치 논픽션을 픽션처럼 드러내며, 끔찍한 기억을 한 발치 멀리서 바라보게 한다. 그 담담함은 되려 우리 가슴 속 어딘가를 건드린다.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던 인물들은 이 영화에서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다루어진다. 흑백 화면과 교차되는 컬러 영상은 강제수용소의 어두운 과거(1942~1945년)와 죽어있는 현실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 영화에 활용된 기법은 일명 ‘트래킹숏’으로, 감독 알랭 레네의 초기 작품에 매우 중요한 특징으로 작용한다. 조형적 일치와 유사점의 발견은 가히 미학적으로 훌륭하다. 불결한 환경에서 매일매일을 버텨야 했던 이들에게 건강에 대한 캠페인 문구는 어떤 의미였을까. 제시된 원형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마찰점은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충격이 되어 다가오고 있었다.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온 요소는 음악이다. 이 작품의 음악을 담당한 이는 독일의 현대음악 작곡가 한스 아이슬러이다. 현대음악시기의 대가이자 12음기법의 창시자인 쇤베르크의 제자로도 유명한 그는 추후 미국으로 망명해 음악의 독자적인 길을 걸어갔으며, 뛰어난 역량으로 음악학자 아도르노와의 협업 연구를 진행했다고 전해진다. 아이슬러의 <밤과 안개> 음악은 영상과 병치되지만, 매우 대조되는 경향을 띤다. 이러한 ‘모순’점은 아우슈비츠에서 피를 흘리는 이들과 함께 목관의 서정적인 선율을 등장시키는 것으로 대표될 수 있겠다. 또, 상황과 균형을 이루는 건조한 음악,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 흐르는 웅장한 음악 등 영화에 ‘반’하여 음악의 감상적인 측면보다는 감독의 의도성과 역설의 서사성에 있어 든든한 지원군으로 탈바꿈한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나치의 교활함은 오늘날 애들 장난처럼 취급되고 있다”. 잘 모른다고 해서,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써 종전과 휴전, 먼 나라의 내전으로 ‘전쟁’을 접하는 우리에게 감독은 늘 한쪽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며 비판적인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한 관념은 이 영상을 감상하는 시간이 모두 지나, 언젠가 이것들이 모두 ‘과거’라는 시간으로 귀결되어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법칙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경각’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집단적인 책임에 주체적으로 맞서는 일이다. 폭력에는 절대로 후진이 불가하다. 순차적, 혹은 도약적 강화만이 존재한다. 그들이 수용소를 세워 타인에게 각종 실험, 의료시술, 학살, 생화학시험, 독살을 시행하는 것은 자신이 ‘인간’이길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의식이 있는 맑은 눈으로 우리 주위를 제대로 보고, 귀를 열어 인간애의 끊이지 않는 통곡 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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