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바다인류>가 주는 시사점
인류의 모든 문명이 어디에서 출발했는가는 생각해보면 쉬운 문제이다. 인류와 바다는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위치해 있고, 국가 간의 관계, 문명 간의 영향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역시 바다를 돌아보는 것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오롯이 ‘바다’의 관점에서 지리적, 문화적으로 인류사를 성찰하고 있는데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볼 수 있었던 부분은 대항해시대에 관한 텍스트였다.
콜럼버스의 신세계 발견, 충돌, 협력, 갈등을 반복한 당대의 유럽 국가들의 속사정이 때로는 거시적, 때로는 미시적으로 서술되고 있는 이 곳에서 세계는 바다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 급격히 연결, 확장되어가고 있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은 아마 이 시기부터 팽배하게 되었던 인식이었을지 모르겠다. 해양의 세력으로부터 출발한 일종의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는 ‘지배자’의 자질에 관한 극단적인 믿음으로부터 우리가 아는 수많은 식민지의 아픔과 무분별한 영토 분배, 확장을 이룩해온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서 드러나는 주장과 유사한 저자의 생각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중세의 페스트균, 19세기의 콜레라, 콜럼버스 부대가 신대륙에 가져온 홍역과 천연두 등 우리 세계의 역사는 어쩌면 세균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것의 지배, 변화 하에 놓여있다. 저자는 바다 건너 더 급속도로 전해지는 동시적 감염상태, 즉, ‘펜데믹’을 통해 전 세계가 ‘하나’될 수 있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중립적이고 이성적인 자세로 현시대의 모습을 구축한 과거의 이면을 달리 보고 있다.
역사는 서술되기 마련이다. 가끔은 입장 차이에 가까울 만큼 주관적이다. 콜럼버스를 위대한 여정과 발견을 이루어낸 모험가로 볼 수도 있지만, 당시 원주민들에게 있어서 그는 이방에서 온 날강도에 다름이 없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가지 객관적인 사실을 도출해낼 수 있다면, 콜럼버스가 우리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지점에 놓인 인물이며, 우리가 보편-상식적으로 믿는 의미의 ‘문명’을 더 넓은 지역에 전파하길 시도한 대범한 자였다는 것이다. 서양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과거가 아닌, 현재부터 반성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만연한 구시대적인 이념은 우리를 편협하게 만든다.
왜 꼭 바다여야만 했을까? 영공과 영해의 영향력 중 우리 세계에 더 큰 파급력을 미치고 있는 쪽은 어디일까? 왜 우리가 ‘열강’이라고 부르는 미국 등의 나라들은 해군 모집과 훈련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일까? 저자는 해양에서 전세계 물류 이동량의 대부분이 종속되어있으며, 구름 위를 비행할 수 있는 최고의 이동 수단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다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바다 인류>를 읽으면서 “물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문장이 떠오른다. 이러한 의식은 영화 <아바타 2>, <겨울왕국 2> 등 다양한 판타지 대중영화에서도 앞세워진 메시지인데, 우리 주위를 오롯이 이어가고 있는 4 원소, 그중에서도 물은 계속해서 흐르면서 역사와 또 다른 역사를 이어준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평화로웠던 순간부터 전쟁으로 인해 피 흘렸던 순간까지 모두 인간의 곁을 지키며 함께 했다.
우리는 물로부터 왔고, 물로 돌아간다. 언젠가 증발해버릴지 몰라도 일단 형체를 잃는다면 물의 형태에 수반되는 당연한 수순을 겪는다. 물속에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종류, 개체 수의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있으며 이들을 절대로 무시해서는 아니 된다. 그만큼 바다가 겪어 온 모든 ‘우리들’의 또 다른 모습일지 모르는 법이다. 바다는 무궁무진하다. 또, 위험하기도 하다. 바다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며, 저 멀리에서 태어나 평생을 모를 수도 있었던 문화를 맞닿게 해주기도 한다.
에메랄드빛의 관광지로서의 바다와 어떤 괴물이 살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새카만 심해까지 바다는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다. 그렇게나 많이 과학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주, 인간의 뇌, 그리고 ‘바다’는 온전히 우리에게 연구되지 못하는 미지의 분야이기도 하다. 바다로 인해 전쟁의 발발 가능성, 충돌의 여지는 늘 진행, 발달해나갈 것이고 이런 범국제적인 시대일수록 정밀한 판단력과 인류애적인 가치관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또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