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 문명, <길가메시 서사시>
인간은 유한하다. 유한한 생명체인 만큼 나약하기도 하다. 그러나 불멸할 수 있다면, 영생할 수 있다면 과연 인간이 지금보다 더 행복할까?
<길가메시 서사시>는 이 질문을 통해 최초의 ‘신화’ 형식으로 인간과 인생 그 자체에 대해 심도있는 고찰을 보여주는 문학 작품으로 의의가 높다. 나는 영웅적인 면모를 가진 주인공이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을 겪으면서 그것의 회피인 ‘불멸’에 집착하게 되고, 그것이 얼마나 하찮고 미숙한 생각이었는가를 스스로 깨닫게 되는 과정을 읽으면서, 이 텍스트가 이후에 얼마나 많은 스토리 원형에 영향을 끼쳤는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줄거리 말에 ‘홍수 이야기’는 성격에서 드러나는 노아의 방주 부분을 연상시키는데, 역으로 노아의 방주 스토리가 이 <길가메시 서사시>의 구조를 따온 것이었다.
또, 대표적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진시황 이야기’가 있는데, 진시황은 부하들에게 불로초를 구해오라 명령했지만, 결국 그 ‘불가능’을 발견할 수 없었던 그들은 그로부터 벗어나 외딴 섬에 정착하여 살아가게 된다. 진시황은 불로초가 실재하는가에 관심이 있었다기 보다는, 수은에 중독될 정도로 늙는 것이 두려웠던 겁많은 하나의 인간에 불과했을 것이다. 길가메시나 진시황이나 결국 죽고 싶지 않은 욕망, 그리고 죽는 것에 대한 무서움을 이러한 불가능에 대한 도전으로 해소했고, 이는 인류사 전반에 걸쳐 왜 인간 세계가 멸망하고 또 재건립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단초를 제시한다.
한편, <길가메시 서사시>에 등장하는 뱀은 무엇을 뜻할까? 왜 ‘길가메시’는 온전한 신으로 그려지지 않았을까? 이러한 의문들은 이 텍스트를 읽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그동안 내가 찾은 답은 길가메시가 완벽할 수 없기에 서사시의 줄거리가 말이 될 수 있고, 오이디푸스 신화와 마찬가지로 신통력을 상징하는 뱀의 등장으로 그가 결국에는 죽음을 맞는 고통을 한낮의 요행으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자신은 일정 부분 ‘신’적이기에 이를 이용하여 타인을 괴롭히고, 비범한 힘을 자랑하기 위해 자연을 파괴했던 길가메시는 결국 신의 진노를 사 ‘사랑’과 ‘죽음’의 아픔을 겪으며 성숙한다. 엔키두의 죽음은 길가메시로 하여금 언젠가 자신도 죽게 될 것이라는 은연 중의 사실을 깨우치게 만들었고, 그렇게 유한하기에 우리 삶 속에서 생각하는 힘,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 친구를 소중히 대하는 마음이 더욱 아름답고 빛나는 것들이라 믿게 하였다.
바다 건너 고된 여정을 떠났지만, 불로초 획득에 연달아 실패한 그는 결국 자신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우르크로 돌아가 국가를 지혜롭게 통치하는 좋은 ‘리더’로 거듭난다. 홍수의 위험성을 직접 체험한 그는 탄탄한 기초와 벽돌 장벽 건축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그것을 자신의 나라에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이 또한, 나라의 굳건한 기반과 근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은유해내고 있다. 불로초는 없었지만, 그의 신적인 능력은 더 이상 만만한 자들을 힘들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탈바꿈했다. 그의 몸은 변한 적이 없지만, 그 비극적인 경험의 이후, 마음가짐의 차이만으로도 그는 이제 어린 아이가 아닌 진정한 어른이 된 것이었다. 진탕 놀고 마시는 것이 아닌, 필요한 곳에 그의 능력을 사용하는 자야말로 대단히 책임감 높은 왕의 자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이곳에서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또 “왜 잘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죽는 것 여전히 진실된 두려움임에도 불구하고 그 ‘죽음’을 잘못된 방식으로 회피하기보다는 내 인생에 최선을 다하다가 때를 기다린다는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