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 주말 오전 / 엄마와 아기 목욕 중]
주말 아침. 둘째 아기를 욕조에 넣고 물을 튀기고 있는 중이다.
엄마는 구석에서 작은 빨래를 삶고 있고, 나는 욕조에서 아기랑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고요한 가운데, 아기가 물을 첨벙거린다.
엄마
“애리야, 주용이네는 요즘 뭐하노? 둘째 낳았다고 하던데.”
나
“응. 둘째 낳고 유진이는 이번 달에 벌써 복직했더라.”
엄마
“복직? 벌써?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 했겠다.”
나
“어쩔 수 없었나 봐. 집 대출 이자가 너무 커서…”
[장면 전환 / 서울 외곽 / 어느 평범한 아파트 단지 – 주용이네 부부]
주용이와 유진은 우리 남편 대학동기들이다.
주용은 대학 때부터 숫자 밝히기 좋아하고, 투자에 관심도 많았던 그.
결혼하고 몇 년 뒤, 급격히 치솟은 집값 앞에서 조급해졌다.
“집이 두 채나 있는데, 우리가 왜 여기서 월세를 살아야 돼?”
유진은 쌓여 있던 감정을 결국 터뜨렸다.
방 두 개, 거실도 겨우 아이 장난감으로 채워질 만큼 좁은 집. 둘째 출산 후, 조리원에서 막 퇴소하던 날 이사까지 하느라 더 피곤했던 그날이 계속 떠올랐다.
“유진아, 제발 좀만 더 참고. 지금 집값 다시 오르기 시작했잖아. 송파에 갭쳐둔 건 정권 바뀌면 2년 안에 무조건 올라. 이번 사이클 절대 놓치면 안 돼. 그러다 우리 벼락거지된다고!”
“그래서, 나는 복직하고 몸조리도 못 하고 다시 출근해야 되고, 기지도 못하는 둘째까지 어린이집에 다 맡기고, 우린 전세도 아니고 월세로 살아야 해?”
주용은 대답 대신 노트북을 닫으며 시선을 피했다.
[과거 회상 - 두 사람의 시작]
주용과 유진은 대학동기이자 국내 IT 1등 기업인 N사 입사 동기다.
똑같이 5년 차 대리일 때 결혼했고, 누군가는 대기업 맞벌이 부부라고 부러워했다.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유진은 잠시 육아휴직을 썼고, 그 사이 주용은 부동산 투자에 빠졌다.
주용
“우리 팀 고 과장님은 지금 와이프랑 연애시절에 각자 하나씩 청약에 당첨됐대.
그래서 결혼하면서 이미 집 두 채를 가지고 시작했는데 최근에 집값 폭등하면서 신혼생활 3년 만에 자산이 3배로 불어난 셈이야. “
유진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 지금 태어난 우리 아기는 눈에 안 보여?”
주용
“애 얘기가 왜 나와. 지금은 월급으론 절대 못 따라가. 자산 격차는 벌어질 일만 남았어.”
주용은 초조했다. 주용이네도 신혼 때 샀던 아파트가 두 배 가까이 올랐지만 이상하게 만족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틈만 나면 아파트 실거래정보, 부동산 유튜브와 카페, SNS에 떠도는 온갖 부동산 정보를 수집했다.
[현재 - 둘째 출산 후]
이미 소유한 집을 두고도 투자를 위해 더 싼 전셋집으로 이사를 온 상황이다.
그런데도 주용은 다시 월세집으로 이사를 가자고 유진을 설득한다.
”지금 타이밍 놓치면 안 된다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내 말 듣고 이사 가자. “
지금 더 좋은 지역에 집을 사두지 않으면 영원히 목표하는 동네로 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사는 소위 ‘상급지 갈아타기’를 위해 영끌 대출로 두 번째 집을 매수하기 위해서다.
둘은 이사한 지 1년도 안 돼 또다시 월세로 옮겼다.
결국 대출 원리금 상환을 위해 둘째가 100일이 되던 날 유진은 다시 복직했다.
유진은 둘째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다시 출근했다.
친정엄마도 바쁘고, 시댁은 아기 돌보는 것엔 무관심했다.
결국 어린이집과 시간제 돌봄 선생님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직장에서도 눈치 보여. 애 둘인데도 이렇게 빨리 복직했다니까, 일부는 엄청난 열정이라고 하고, 어떤 애는 남편이 힘들게 해서 나온 거래.
뭐가 됐든… 나는 나로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옆팀 부장은 나보고 뭐라는 줄 알아? 애는 어쩌고 벌써 왔냐며 돈 욕심 많다고 하더라.”
밤마다 둘째가 울고, 첫째가 엄마 품을 찾을 때마다 유진은 눈을 떴다. 그 옆에서 주용은 항상 부동산 시세를 확인했고, 두 번이나 이사하고 부동산을 싸게 잡았다고 신나 하는 눈치다.
(유진, 우울해하며)
’ 내가 진짜 원하던 삶은… 뭐였더라?‘
예쁜 웨딩 사진이 떠오른다.
아이 돌잔치 때 웃고 있던 주용이 아내.
SNS 속엔 여전히 커피잔, 아이 사진, 그리고 가끔은 ‘#육퇴후한잔’ 해시태그.
하지만 그 뒤엔
출산 후 3개월 만의 복직,
두 채의 주택담보대출,
줄줄 새는 이자와 생활비.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게 과연 우리 가족에게 맞는 방향인가’에 대한 질문이 남아 있다.
[대화 - 점점 벌어지는 거리]
“주용아, 우리 그냥 한 집 정리하고 원래 살던 아파트로 돌아가자. 애들 안정도 그렇고, 나 너무 지쳐.”
“유진아, 지금 이거 팔면 손해야. 이사 다니는 건 고생이지만, 애들한테 남겨줄 자산 생각하면 지금이 버텨야 할 때야.”
유진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회상 – 주용과의 대화]
주용
“야, 나는 진짜 부동산으로 자산 불린다. 다들 모를 때 들어가야 먹는 거야.”
“남들도 다 똑같이 살아. 맞벌이하고, 애 키우고, 투자도 하고.”
“아내가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 고마워할걸?”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못 했다.
왜냐면… 한때 나도 그렇게 믿었으니까.
‘지금 고생하면 나중에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참으면 돼.’
‘우리가 돈으로 자유를 얻는 거야.’
그런데 참는 시간이 너무 길다.
끝이 있다는 보장도 없다.
[현재 - 엄마와 대화이어 짐]
엄마
“둘째 낳고 월세 살아가면서, 와이프 복직이라… 그 집은 괜찮겠나.”
나
“아니지. 남편은 너무 신나 있더라고.
요즘 집값 바닥 찍었다고, ‘이제 진짜 올라간다’면서 매일 뉴스, 카페 보고 있어.”
엄마
“유진이는 어때?”
나
“그냥… 지쳐 보여. SNS 보니까, 둘째 낳고도 몸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바로 첫째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밤에는 일하고 있더라고.”
엄마
“나는 요즘 젊은 사람들 보면 참 안쓰럽다. 왜 그렇게 집이랑 돈에 목을 매는지…”
“물론 살기 힘들지. 근데… 그게 전부는 아닐 거 아이가.”
“가정이 흔들리면, 그 돈도, 그 집도 결국 아무 소용없는 거라.”
[내레이션 – 나의 내면 독백]
엄마 말은 옳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 서울은 그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우리 또래 부부들 중엔 진짜로 ‘부동산 때문에’ 싸우고, ‘대출이자 때문에’ 이혼하고, ‘영끌’이라는 단어 하나로 가정의 균형이 무너지는 집이 많다.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다. 자산 증식을 위해 버텨야 한다는 말, 가족의 행복보다 숫자에 집착하는 배우자.
모두 익숙한 풍경이었다.
가끔은 ‘우리’라는 이름으로 감정이 묻히고,
‘아이를 위해’라는 말이, 때론 너무 쉽게 희생을 당연하게 만든다. 그렇게 가족이 아닌 자산을 남기려는 부부가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