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는 꽃이 없지
F/W 시즌 카페식음 업계의 꽃이라면 바로 무화과를 꼽겠다. 나는 크림치즈와 무화과가 합쳐진 형식의 베이커리류를 보면 무조건 사가지고 눈 뒤집히게 먹어치우는데, 역시나 오늘도 미치게 맛있다. 그나저나 내가 배운 무화과의 특징이 있다면, 인간이 재배하기 시작한 최초의 열매라는 것, 꽃이 피지 않고도 열매를 맺는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과일이라는 것뿐이다. 그러고 보니 무화과처럼 그 지위가 모호한 과일이 또 없다. 과일은 맞나? 과일로 분류해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살다 보면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경우가 있다. (사회적으로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처벌하지 않아서 생기는 안타까운 경우를 제외하기로 하자.) 보통의 이런 경우, 당시엔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기 어렵다.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빼들 준비를 하고 있지도 않고, 면면히 들어보면 너의 말이 맞기도 하고, 또 너의 말도 맞기도 하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은 모두 각자의 상식대로 행동했으며, 그 셈법 속에서는 제 몫을 찾아갔다. 어린이 만화에서 봤던 황희정승의 “네 말이 맞다. 듣고 보니, 네 말도 맞다.”하는 문장이 길이길이 기억되어 내려오는 까닭도 아마 이런 데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던의 시대를 지나면서, 에피소드의 소용돌이 속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황희정승식 현답(賢答)은 ‘속디벼지는’ 말이 아닐 수가 없다.
사회는 점차 복잡해져 왔고, 사회는 앞으로도 점점 더 복잡해질 것이다. 누가 뭐래도 그럴 것이다. 아마 세분화하여 융합할 것이고, 모세혈관처럼 확장할 것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굿플레이스>에서 보여준 한 사고실험에서는 사회가 너무 다각화/복잡해져서 고전사회에서 규정한 “굿플레이스(천국)“에 간 마지막 인간은 200여 년 전 인간에 불과하다고 비꼰 적이 있다. 이제는 무심코 커피 한 잔만 사 마시더라도 아동노동을 통해 얻은 커피콩일지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더라는 것이다. 자, 그럼, A-a-1) 번 구역 모세혈관 구역에 위치한 자아(self)와 D-d-4) 번 구역 자아와 의사를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진짜로 생각해 볼 일이다. 먼저, 이제는 이런 방식의 의사소통은 진정으로 가능한 일일까, 아니면 이제 어쩌면 이런 식의 의사소통은 필요 없지는 않을까?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의 삶을 사는 게 더 낫지는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관계 맺기를 지속해야 하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대학 시절을 지나면서까지 나는 줄곧 냉소적인 캐릭터를 유지했던 것 같다. 언제든 내 주변의 인간관계를 끊을 준비를 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무화과크림산도를 혼자 다 먹어치우면 맛이야 엄청 있겠지마는, 누군가와 나누어 먹으면 확실히 살은 덜 찔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