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어제 일 같았다
나는 결혼 후에 아이를 낳고도 새벽부터 출근해야 하는 치열한 맞벌이를 해야 했다. 할머니는 내 어린 아들까지 돌봐주기 위해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셨는데
내가 퇴근하고 돌아와 "배고파, 할머니" 하고 어린아이 같이 투정 부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밥을 차려주시며 도란도란 이야기하시는 것을 좋아하셨다.
"오늘 글쎄 승군이를 데리고 버스를 탔는데, 버스 기사가 나를 보더니 '오랜만이시네요!' 하고 인사를 다 하는 거 있지?"
내가 밥을 한술 뜨며 “아는 분이야?”
하니까 할머니는 신이 나 이야기하셨다.
"내 말이! 기억은 안 나는데 아는 체를 하길래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승군이를 앉히고 나는 서서 갔어. 그런데 기사가 운전을 하면서 쓱 묻는 거야. '근데 같이 다니던 그 여자애는 어디 갔어요?' 하고 말이야.“
숟가락을 멈추고 놀라 말했다.
“여자애? 나 말하는 거야?"
"그렇지! 내가 뭔 여자애를 찾나 싶어서 '여자애요?' 하고 되물었더니, 그 기사가 그러는 거야.
매일 그 어린 남매를 데리고 버스를 타셨잖아요, 하고."
할머니는 신이 나서 이야기하셨다.
"그래서 내가 기사한테 그랬지. '기사 양반, 그 여자애가 커서 벌써 요 녀석을 낳았어요! 이 아이가 그때 그 여자애 아들이에요!'
할머니의 말에 기사님은 브레이크라도 밟은 듯 깜짝 놀라며 백미러를 쳐다보셨다.
“아니, 어머님! 매일 그 어린 남매를 안고 서대문에서 화곡동까지 다니시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그렇게 됐습니까? 그럼 이 애가 손주예요?”
“제가 그 애들 할머니였어요. 이 녀석은 제 증손주입니다.”
기사님은 허탈한 듯 감탄하며 말씀하셨다.
“아이고, 할머니셨구나... 전 엄마인 줄 알았어요. 시간이 참... 바로 어제 같은데 말입니다.”
이야기를 하며 할머니는 주책맞게 눈물이 났다고 하셨다. 나는 밥을 입에 문 채 철없이 물었다.
“할머니, 왜 눈물이 났어? 우린 그때 버스 타고 친척 집 놀러 가는 거 너무 재미있었는데!”
할머니는 눈가가 촉촉해져서 밥상 끝을 가만히 바라보셨다.
“미뇽아... 그때 우리 집엔 먹을 게 없었어. 너희를 굶길 수는 없는데 방법은 없고... 그래서 그 먼 거리를 너희 둘을 데리고 가서 세끼를 다 얻어 먹이고 왔던 거야. 동생 집이었지만 가난한 처지에 눈치가 보여서 미안한 마음에 하루 종일 그 집 청소며 빨래며 밥을 다 해주고 왔지. 힘들고 비참했던 시절인데, 기사 양반 말을 들으니 그때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지 뭐야.”
순간 목이 메어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우리가 깔깔거리며 창밖을 구경하던 그 버스 안에서, 할머니는 어린 남매를 품에 안고 얼마나 많은 서러움과 불안을 삼키셨을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툭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가 코를 훌쩍이며 호통을 치셨다.
“울지 마, 이 년아! 네가 울면 내가 더 눈물 나잖아!”
“할머니가 먼저 울었잖아, 으하하.”
우리는 서로 붉어진 눈을 보며 소리 내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