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 죽지 않아
할아버지는 집안의 거대한 기둥이자 법 그 자체였다. 삼촌들에겐 호랑이처럼 엄하고 무서운 분이었지만, 우리 남매에게만큼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천사였다.
사실 할아버지와 아빠는 장인과 사위 관계를 넘어 동업자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아빠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사업마저 기울었을 때, 할아버지는 다시 재기하기 위해 평생을 애쓰셨다.
운명은 참으로 얄궂었다.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고 할아버지사업도 나아져 이제 막 숨을 돌릴 무렵, 할아버지는쓰러지셨다. 병명은 아빠와 똑같은 암이었다.
몇 달째 기침이 멎지 않아 찾은 병원에서 우리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들어야 했다. 이미 손쓸 수 없을 만큼 온몸에 전이된 상태였고, 입원한 지 보름도 채 되지 않아 할아버지의 기력은 급격히 쇠하셨다.
마지막 면회 날,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고 누워 계시던 할아버지는 이상하리만큼 의식이 또렷하셨다. 당신은 물 한 모금 넘기기 힘든 상황에서도, 병실에 들어온 과일 바구니를 보며 연신 손짓을 하셨다.
“미뇽아, 석아..저거 너희 다 먹어라. 어서 깎아 먹어.”
아픈 사람을 두고 먹을 수가 없어서 안 먹겠다고 하니까 “너희 먹는 걸 봐야 힘이 나, 그러니까 먹어” 하셨다.
우리는 마지못해 울면서 그 과일을 받아먹었다.
. 밤새 곁을 지키려는 우리를 향해 할아버지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나 절대 안 죽는다. 걱정 말고 학교 다녀와.”
하지만 그 말씀이 마지막이었다. 날이 밝기도 전, 할아버지는 마치 급한 약속이라도 생긴 듯 아빠가 기다리는 곳으로 서둘러 떠나셨다.
마지막까지 우리 남매가 당신의 죽음을 지켜보며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혼자서 그 외로운 길을 나서신 게 아닐까 싶다.
아빠도, 할아버지도, 그들은 마지막까지 오로지 우리 남매 걱정뿐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장 걱정되는 사람은 할머니였다. 평생을 붙어살며 싸울 때나 사랑할 때나 늘 곁에 있었던 두 분이었기에 할아버지가 없는 할머니의 인생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장례식장에서 할머니는 이상하리만큼 침착하셨다.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조문객을 맞이하는 모습은 평소보다 더 정정해 보이기까지 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할머니, 정말 괜찮아?. “
그러자 할머니는 짐짓 홀가분하다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셨다.
"괜찮지! 아주 속이 다 시원하다. 저 지긋지긋한 영감탱이 드디어 사라졌으니 이제 내 인생은 진짜 자유야! 내가 그동안 저 양반 종노릇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냐. 이제 나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 거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높았고 날카로웠다. 아무리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다 해도 저 정도인가 싶어 내심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잠든 밤, 할머니의 방 문틈으로 나지막한 목소리는 흘러나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계셨다.
“영감... 거기서는 안 아픈가? 사위 만나서 술이나 한잔하고 있는가...”
할머니는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혼자 울고 계셨다.
“영감 쓰던 향수냄새가 나는 거 같아. 나를 어찌 혼자 두고 가셨소. 무정한 양반 나를 고생만 시키고 이제 살라하니 가셨소. 나 좀만 더 있다가 갈 테니까, 거기서 사위랑 같이 기다리고 있어. 내 새끼들 잘 사는 것만 좀 더 보고 갈게.”
할머니는 그 후 15년 후 할아버지 곁으로 가셨는데 가실 때까지 날마다 할아버지 사진을 보고 이야기하셨다.
. 할머니에게 그 세월은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자유'가 아니라, 다시 만나기 위해 꿋꿋이 버텨낸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