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일짱 왕언니

내 손녀 건드리지 마

by 미뇽작가

할머니는 매일 증손주인 내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버스를 타고 옆동네로 목욕탕 원정을 다니셨다.

집 앞 목욕탕을 두고 왜 이리 멀리 다니냐고 하니까

“ 여기가 물이 좋아” 라며 아예 월정액권을 끊어 다니실 만큼 그 목욕탕을 좋아하셨는데 “매일 뜨거운 물에 튀겨야 혈액순환이 되지 “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목욕탕에 ‘장비’를 두고 다니셨는데 목욕탕 월정기 회원들은 목욕바구니를 두는 전용공간이 따로 있었다. 그중에서도 할머니의 목욕바구니는 제일 화려했고 그곳에서 할머니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일짱 왕언니'였다. 찰진 욕과 입담으로 사람을 매료시켜서 할머니를 따르는 목욕탕 동생들이 많았다.


"어머나, 형님은 주름 하나 없이 피부가 어쩜 이리 고우세요?"

"형님 가슴 좀 봐, 이 연세에 어쩜 이렇게 탱탱해?"

동생들의 찬사에 할머니는 어깨를 으쓱하며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셨다.


"하긴 내가 애를 여섯이나 낳았어도 몸에 칼 한번 댄 적이 없잖니. 그런데도 이만하면 아직 볼만하지?

내가 유방만 한 십 킬로가 나갈 거야 아하하하하. “


나중에는 목욕탕 친구들과 친해지셔서 목욕하고 자연스럽게 점심까지 드시고 오 실 정도로 목욕탕 스케쥴이 하루 일과의 거의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어릴 땐 남매 둘을 혼자서 씻기느라 기진맥진해 제대로 목욕을 즐기지 못하셨던 할머니는 노년이 되어서야 나 자신만을 위해 목욕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목욕탕을 꽉 잡고 계신 할머니와 달리, 일 년에 한두 번 갈까 말까 한 나는 그곳에서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어느 날, 할머니를 따라 목욕탕에 갔을 때였다.

비누 거품으로 깨끗이 샤워를 마치고 온탕에 발을 담그려는 찰나, 아주머니 한분이 텃세 부리듯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아가씨! 탕에 들어올 땐 미리 샤워를 하고 들어오는 거야. 매너도 몰라? 그렇게 맨몸으로 들어오는게 아니야? 이거 더러워서 한탕에 같이 몸 담그겠어?“


황당한 마음에 씻고 들어온 거라고 대꾸했지만, 아주머니는 낯선 이방인에게 친절하지가 못했다.


"어머나, 씻은 티도 안 나! 대충 씻지 말고 충분히 깨끗이 씻어야지!"


내가 어버버 하며 당황하고 있을 때, 뒤에서 물을 끼얹던 할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드셨다.


"야, 빙그레! 얘 내 손녀야!"


우유 대리점을 하시는지 '빙그레'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아주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태도를 바꿨다.


"어머, 형님! 하나도 안 닮아서 몰라봤어요!"


“내가 젊을 땐 훨씬 이뻤지만 나랑 똑같이 생겼구만!

빙그레는 언니를 봐도 싸가지 없게 인사를 안하네? “


하지만 박 여사님의 사전에 적당한 타협이란 없었다. 할머니는 아주머니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코를 킁킁거리시더니 치명타를 날리셨다.


"야, 빙그레. 너 요새 몸이 많이 안 좋니? 입에서 똥꾸렁 시궁창 냄새가 아주 진동을 한다, 얘. 너 이 닦았어?

심각해! 병원 좀 가봐! “


순간 목욕탕 안은 정적이 흘렀고, 당황한 '빙그레' 아주머니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도망치듯 탕을 빠져나갔다. 할머니는 그 뒷모습에 대고 한참을 속사포 랩을 하듯 욕을 하셨다.



"XX! 음큼한 년이 누굴 보고 씻으라 마라야! 지 입속이나 잘 씻지! 개 XX 년이 어디서 텃세를 부리고 지랄염병 입으로 똥을 싸고 지랄이다! “


할머니는 역시 '목욕탕 일짱' 이였다.

어릴 때나 다 큰 어른이 되어서나 내 손녀딸 건드리면 절대로 참지 않았다.


“내 손녀 건드리면 가만 안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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