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천사
아주 어릴 적, 우리 가족은 동네의 작은 교회에 다녔는데 예배가 끝나면 할머니는 커다란 솥에 불을 지피고 국수를 삶으셨다. 교인들은 "예배 후에 먹는 박집사님 국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고, 할머니는 그 봉사를 큰 명예이자 기쁨으로 여기셨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목사님이 교회를 낯선 이에게 맡기고 미국으로 떠나버리신 것이다. 개척 멤버로서 모든 정성을 쏟았던 할머니에게 그것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버림받음'이었다. 깊은 상심에 빠진 할머니는 폭탄선언을 하셨다.
"내 예수님은 믿지만, 교회는 다시는 발 안 붙이련다!"
그날 이후 우리 집은 '교회 사수파'와 '거부파'로 갈렸지만, 서로의 종교관을 강요하지 않는 쿨한 분위기로 살아갔다. 우리 엄마는 홀로 된 처지에 의지할 곳이 없으니 "예수님을 너희 아버지라 생각하라"며 우리 남매를 다른 큰 교회로 이끌었고, 우리는 달란트 시장의 재미에 푹 빠져 언덕 위 교회를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엄마가 공부를 위해 잠시 곁을 비웠을 때도, 어린 나와 동생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교회를 지켰다. 어른 없이 매주 출석하는 우리 남매는 교회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교인들은 우리를 살뜰히 챙겨주며 은근슬쩍 할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얘들아, 다음 주엔 할머니도 꼭 모시고 오렴."
때로는 집까지 찾아와 권유하기도 했지만, 할머니는 단호했다. "집까지 찾아오면 애들도 안 보낼 테니 다신 오지 마시오!" 할머니에게 교회는 여전히 아픈 금기어였다.
그러던 어느 성탄절, 전야제 연극에서 내가 무려 '천사' 역할을 맡게 되었다! 사실 이건 내 동생 석이의 눈물겨운 로비 덕분이었다. 제 표는 물론 친구들까지 협박(?)해 내게 표를 몰아준 덕분에, 나는 목사님 딸을 한 표 차로 제치고 천사 날개를 달게 된 것이다.
"할머니! 나 이번에 천사야! 대사도 엄청 많아. 24일 밤 8시니까 꼭 와야 해, 알았지?"
"난 교회 싫다니까! 안 가!"
할머니의 냉정한 반응에 나는 결국 "할머니 미워!"를 외치며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드디어 크리스마스이브. 교회는 부모님들과 교인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다. 무대 뒤에서 커튼 사이로 객석을 훑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기가 팍 죽은 나와 동생은 교회에서 나눠주는 맛있는 간식도 마다한 채 서로의 손만 꼭 맞잡았다.
어두운 무대 위로 조명이 켜지기 직전, 나는 마지막으로 객석 뒷줄을 두리번거렸다. 그때였다. 맨 뒤에서 누군가 미친 듯이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어? 막둥이 삼촌이다!"
삼촌 뒤로 줄줄이 들어오는 인파를 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꽃다발을 든 할머니를 필두로 할아버지, 큰 삼촌네, 교회 구경도 못 해본 삼촌들, 그리고 엄마와 동네 사람들까지... 할머니가 온 집안 식구와 이웃들을 싹 다 쓸어 담아 '군단'을 이끌고 나타나신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야 할 천사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나는 엉엉 울며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관객석에선 웃음과 감동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연극이 끝난 후 목사님은 "내 평생 가장 은혜로운 연극이었다"며 찬사를 보내셨다.
"할머니! 교회 싫다면서 어떻게 다 데리고 왔어?"
꽃다발을 내미는 할머니를 껴안으며 묻자, 할머니가 짐짓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교회는 싫지만, 내 새끼가 천사라는데 안 올 수가 있나! 미뇽이는 우리 집안의 천사잖니."
사람들은 일생 손녀에게 헌신적이었던 할머니가 나를 지켜준 대천사가 아니냐고 했지만 할머니에게 천사는 단 하나 손녀뿐이었다.
그날, 언덕 위 아름다운 교회에서 울려 퍼졌던 찬송가 소리와 할머니의 따뜻한 품 안의 온기는 내 생애 결코 잊을 수 없는 성탄의 기적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