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사실 아빠가 돌아가신 것이 어린남매에게 그렇게 큰 충격은 아니었다. 슬픔을 느끼기엔 너무 오래 아프셨고, 우리는 너무 어렸으니까.
기억조차 희미한 어릴 때, ‘잠깐 병원 좀 다녀올 테니 애들 좀 봐달라’ 던 엄마의 부탁은 아빠의 투병이 길어짐에 따라 지키지 못하는 약속이 되었다.
쉰도 되지 않은 비교적 젊은 나이였던 외할머니는 그렇게 우리 남매의 엄마 대신인 ‘엄마 할머니’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핍은 자랄수록 짙고 선명해졌다.
초등학생 즈음의 어느 날, 가슴속 응어리가 폭발해서 할머니에게 따지듯 물었다.
"할머니, 우리 아빠는 왜 그렇게 빨리 죽어버린 거야? 자식들 생각은 안 하고 왜 건강 관리 하나 못 했냐고!"
원망 섞인 질문이었다.
평소 딸의 인생을 망친 사위를 '천하의 몹쓸 놈'이라며 입버릇처럼 욕하던 할머니였기에, 나는 할머니가 내 편에 서서 아버지를 함께 비난해 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욕설 대신 떨리는 팔로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꼭 끌어안고 눈물을 삼키며 말씀하셨다.
“노력했어. 살려고, 정말이지 엄청 노력했어! 너희를 두고 갈 수 없어서 네 아빠는 마지막까지 눈도 못 감았어.”
할머니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단단했다.
평소 사위를 ‘몹쓸 놈’이라 부르던 서슬 퍼런 미움은 간데없었다.
“전국 팔도에 용하다는 의원이 있으면 어디든 찾아다녔고, 제발 낫게 해달라고 이름난 기도원이란 기도원은 다 들어가 기도했어. 그런데... 그런데 그렇게 된 거야.”
할머니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눈을 맞추고 선언하듯이 말했다.
“이제 넌 내 딸이야. 그렇게 알고 살아, 알았지? 누가 뭐라 해도 넌 내 딸이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되었다는 듯이 아빠가 세상을 ㅡ떠나시던 그날 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