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구아빠3
모든 것을 이미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한 유진이 엄마의 서슬 퍼런 기세에 눌려, 나는 처음엔 고개를 저으며 "몰라요"라고 힘겹게 대답했다.
하지만 아줌마는 집요했다.
나의 작은 떨림조차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내 손을 꽉 쥐며 맹공격을 퍼부었다.
“괜찮아, 미뇽아. 아줌마한테만 살짝 말해봐. 왔었지? 제발 사실대로 말해줘. 너는 아줌마 편이잖아, 응?”
간절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한 그 물음에 나는 결국 둑이 터지듯 진실을 쏟아내고 말았다.
“……매일 밤마다 찾아와요.”
그 한마디에 유진이 엄마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그녀는 휘청거렸다. 입안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지, 그녀는 치킨집 사장님을 불러 생맥주 한 잔을 주문하더니 그대로 들이켰다. 단숨에 비워진 잔만큼이나 그녀의 속도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상처 입은 유진이 엄마와, 아무 잘못 없이 가해자의 프레임에 갇혀버린 우리 엄마. 그 둘 사이에서 나 역시 심장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행여나 이 분노의 화살이 우리 엄마의 머리채를 향할까 봐, 나는 울먹이며 아줌마의 옷소매를 붙들었다.
“아줌마, 우리 엄마가 진짜 오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요. 그런데도 매일 찾아온 거예요. 우리 엄마는 정말 잘못 없어요!”
눈물로 범벅이 된 나의 호소에도 유진이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생맥주로도 모자라 소주 한 병을 시키더니, 벌컥벌컥 마셨다. 한참을 그렇게 무서운 정적 속에 술을 비워내던 그녀가 마침내 잔혹할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미뇽아, 미안한데…… 오늘은 동생 데리고 아줌마네 집 가서 자줄래? 오랜만에 유진이랑 언니랑 같이 자.”
그것은 부탁이라기보다 명령에 가까운 통보였다. 당신과 우리 엄마, 단둘이서 끝장을 보겠다는 결연한 의지였다.
나는 차마 거절하지 못한 채, 아줌마의 옷소매를 붙들고 신신당부했다. 제발 우리 엄마를 욕하거나 때리지 말아 달라고 간절한 부탁을 뒤로하고 나는 유진이네 집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거실의 시계추 소리가 심장 박동처럼 들리던 그 밤, 나는 오직 엄마 걱정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마주한 두 사람의 눈은 밤새 쏟아낸 눈물 탓에 퉁퉁 부어 있었다. 아줌마는 나를 보자마자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 많이 했지? 미안해, 미뇽아. 아줌마가 너 사랑하는 거 알지? 아줌마 한 번만 안아줄래?”
그 품이 너무나 안쓰러워 꼭 안아드리자, 아줌마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서럽게 흐느끼셨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엄마 또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아줌마의 등을 조용히 토닥일 뿐이었다.
아줌마가 떠난 뒤, 나는 조심스레 엄마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엄마, 괜찮아? 혹시 아줌마가 때렸어?”
그러자 엄마는 허탈한 듯 마른 웃음을 터뜨리며 말씀하셨다.
“아니…… 유진이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대.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사소한 핑계를 대며 집에 오지 않을 때도 아이들 아빠니까 그저 참고 살았는데, 어떻게 감히 내 친구를 건드릴 생각을 하느냐고……
그게 너무 분하고 나에게 미안하다고 펑펑 울더라.”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할 듯 보였지만, 그날 이후 유진이 엄마는 교회에도, 우리 집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해가 바뀌고 동짓날이 되었다. 엄마는 솥 가득 팥죽을 쑤다 말고 문득 혼잣말을 하셨다.
“아참, 유진이 엄마가 새알 넣은 팥죽을 참 좋아했지. 우리 이거 좀 가져다주자.”
나는 극구 말렸지만, 어머니는 고집스럽게 정성을 담은 팥죽 그릇을 들고 유진이네 집으로 향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렸을 때, 나타난 유진이 엄마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얇은 잠옷 차림, 앙상하게 마른 그녀는 한눈에 봐도 폐인처럼 초췌해져 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팥죽 좀 해왔어.”
어머니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지만,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죽 그릇을 받아 든 채 어머니의 발끝만을 응시했다. 그리고 서늘한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제 찾아오지 마. 너무 괴로워. 네 잘못 아닌 거 아는데…… 네 얼굴을 보는 게 너무 비참해. 잘 가.”
철컥, 문이 닫혔다. 가해자는 유진이 아빠였으나, 그가 남긴 오물 같은 상처는 고스란히 두 여자의 몫이 되어 우정마저 집어삼켰다.
파렴치했던 유진이 아빠의 최후는 예상대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회사 근처 술집 마담과 두 집 살림을 차린 사실이 발각되었고, 결국 처참하게 이혼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싸구려 욕망의 대가치곤 너무나 가벼운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