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아빠 2
문이 열리자 유진이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양손에는 야식집에서 갓 포장해 온 김밥과 떡볶이를 들고 서 있었다.
배달 음식이라는 건 구경조차 하기 힘든 그 시절 봉지 안에서 풍겨 나오는 매콤하고 달콤한 냄새에 눈이 먼 나는, 상황의 심각성도 모른 채 철없이 소리를 질렀다.
“오예! 떡볶이다!”
유진이 아빠의 얼굴에는 억눌리지 않는 설렘이 발갛게 피어올랐으나, 마주하는 엄마의 안색은 어두운 잿빛으로 변해갔다.
어머니의 얼굴이 수치심과 당혹감으로 하얗게 질려가는 줄도 모르고, 우리 남매는 눈치 없이 식탁으로 달려들었다. 유진이 아빠는 마치 자기 집 안방이라도 되는 양 자연스럽게 거실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가 신나게 음식을 먹어 치우는 동안, 그의 시선은 줄곧 한 곳에 머물러 있었다.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대견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집요한 눈동자는 시종일관 어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훑고 있었다. 그 노골적인 시선은 아이들의 허기를 채워준다는 명분 뒤에 숨겨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부정한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다.
한참 예민하던 중학교1학년이었던 나는 허겁지겁 비워낸 떡볶이 그릇을 내려놓으며 비로소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역겨움을 느꼈다.
‘설마, 저 아저씨랑 우리 엄마랑…….’
머릿속을 스치는 불길한 상상은 방금 먹은 음식들을 당장이라도 게워내고 싶게 만들었다. 공포와 불쾌감이 한데 섞여 가슴을 짓눌렀다.
그때, 엄마가 낮은 목소리로 우리를 재촉했다.
“다 먹었으면 이제 방으로 들어가렴.”
‘우리 없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의구심이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거듭되는 엄마의 서슬 퍼런 재촉에 나는 결국 유진이 아빠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은 채 문을 쾅 닫고 방으로 숨어들었다.
나는 문에 귀를 바짝 대고 거실의 소리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낮고 은밀했다. 가끔씩 들려오는 낮은 웅얼거림 외에는 소름 끼칠 정도의 정적만이 흐를 뿐이었다. 그 고요함이 도리어 더 큰 폭풍 전야처럼 느껴져 나는 밤새 잠을 설쳐야 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참지 못하고 어머니를 다그쳤다.
“엄마, 어제 그 아저씨랑 무슨 얘기했어? 대체 왜 온 거야?”
어머니는 지친 듯 마른세수를 하며 힘겹게 입을 떼셨다.
“별이야기 안 했어. 다신 찾아오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뒀지. 유진이 엄마가 알면 얼마나 큰 충격을 받겠니…… 이제 그 친구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의 목소리에는 자괴감과 미안함이 가득 고여 있었다.
하지만 아빠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 빈도는 잦아졌고 대담해졌다. 그가 우리 집 문턱을 넘을 때마다 들고 오는 화려한 먹거리들은 더 이상 반가운 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평화로운 우리 집을 침범하기 위한 일종의 '통행료'이자, 자신의 부정한 방문을 정당화하려는 비겁한 구실이었다.
곧 서늘한 거부감으로 변했다. 우리 남매는 그가 나타나면 보란 듯이 방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거나, 거실에 있더라도 그와 눈을 맞추는 대신 TV 화면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온몸으로 싫은 기색을 내뿜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회사 근처 고시원에서 지낸다는 거, 다 거짓말이었어.”
어머니의 허망한 목소리에 진실이 담겨 있었다. 직장이 멀어 귀가하지 못한다던 소문은 새빨간 거짓이었다. 그는 유진이 엄마와 한 공간에 있는 것조차 진절머리가 난다며, 남의 집인 우리 집이 제 집보다 편안하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그는 사택의 구조적 결함을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인터폰을 무시하면 다른 층 이웃들이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누르는 인터폰 소리는 우리에게는 공포의 경보음이었다.
거절의 의사를 분명히 밝혀도 제 집 안방인 양 들이닥치는 그를 두고 우리 셋은 깊은 시름에 빠졌다. 행여나 회사에 추문이라도 퍼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목소리 한 번 크게 높이지 못하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불의를 보면 불호령을 내리던 할머니와 달리, 어머니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 그 자체였다. 거친 욕설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어머니의 선량함은, 그 파렴치한 남자에게는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유진이 엄마가 예고도 없이 우리 집 문을 두드린 것이다. 왜 요즘은 연락도 없고 얼굴 보기도 힘드냐며, 엄마의 안색을 살피듯 물었다.
“무슨 일은…… 아무 일도 없어.”
어머니의 대답은 공허하게 허공을 맴돌았다. 평생 거짓말이라고는 발끝에도 붙여보지 못한 어머니였기에, 그 어색한 연기는 지켜보는 내 손발이 다 오그라들 정도였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어머니의 눈동자와 굳게 다문 입술.
그 순간, 유진이 엄마와 내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찰나였지만 아줌마의 눈빛에 스치는 기묘한 의구심을 나는 읽을 수 있었다. 여자 특유의 본능적인 직감, 그것이 아줌마의 눈동자 속에서 번뜩였다.
급히 집에 가야겠다며 일어선 아줌마를 현관까지 배웅하러 나갔을 때였다. 아줌마가 갑자기 나를 돌아보며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미뇽아, 아줌마가 치킨 사줄까? 아줌마랑 같이 가서 사 오자.”
사양했지만 아줌마의 고집은 완강했다.
결국 나는 못 이기는 척 아줌마를 따라나섰다. 치킨집 안,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했지만 우리 사이에는 말로 다 못 할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주문한 치킨이 튀겨지는 그 짧은 기다림의 시간이 영겁처럼 느껴질 때쯤, 아줌마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나직이 물었다.
“어제 유진이 아빠, 너희 집에 왔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