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할머니에게-4

아 바보 같은 눈물 보이지 말아

by 미뇽작가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와 단둘이 하루 종일 버스를 탔던 적이 있다. 아침 일찍 올라탄 시내버스는 도시의 끝에서 끝으로, 다시 종점에서 종점으로 하염없이 달렸다. 해가 중천을 지나 뉘엿뉘엿 저물어 밤공기가 창틈으로 스며들 때까지도 우리는 내리지 않았다.


슬며시 걱정이 된 내가 “엄마, 도대체 언제 내려? 우리 어디 가?”라고 물었을 때, 엄마는 대답 대신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그때의 엄마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어른이 된 후, 나는 그날에 대해 물었다.

“엄마, 그때 왜 하루 종일 버스만 탔던 거야?”

어머니는 그걸 기억하냐며 놀라며 대답했다.


“스물일곱에 남편이 죽으니... 정말 정신이 나가버리더라. 갈 곳은 없는데 집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서, 그냥 눈에 보이는 버스를 타고 하염없이 돌아다녔어. “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도무지 제정신일 수가 없었지만 어린 남매를 키우려면 마냥 계속 슬퍼할 수만은 없었다.

벌어야 했고 전문적인 일을 하기 위해선 대학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엄마는 아빠와의 추억이 깃든 집을 팔아서 할머니에게 양육비를 조금 드리고 학교 근처에 작은 자취방을 얻어 떠났다.


그렇게 우리 남매는 오롯이 할머니에게 남겨졌다.

엄마는 처음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우리를 보러 왔다. 올 때마다 아무 말 없이 우리를 쓰다듬고, 하염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하지만 만남의 주기는 조금씩 길어졌다.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두 달이 세 달이 되었다. 어린 내 기억 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나는 어느새 엄마를 ‘엄마’가 아닌 ‘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할머니가 그렇게 부르라고 엄하게 시켰기 때문이었다.

가끔씩 보는 엄마에게 시키대로 언니라고 부르긴 했지만 어린 마음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후, 나는 어머니에게 서운함 섞인 질문을 던졌다.

“엄마, 그때 우릴 왜 그렇게 안 보러 왔어? 우리가 보고 싶지도 않았어? 엄마가 하도 안 오니까 엄마인지 언니인지 헷갈리더라.”


엄마는 고개를 떨구며 울먹이며 답했다.

“안 보러 간 게 아니라... 못 보러 간 거야. 정말 가고 싶었는데, 갈 수가 없었어. 보고 싶어 미치는지 알았어. “

이해할 수 없었다. 갈 수가 없었다니.


나중에 할머니를 통해 듣게 된 진실은 이러했다.

“네 엄마가 살던 집 팔아서 학비내고 자취방 얻고 나머진 다 나를 줬어. 애들 키우는데 쓰고 자긴 필요할 때마다 줘라 하고 맡겼는데 내가 네 엄마한테 돈을 한 푼도 안 줬거든. 돈 필요하다 하면 죽지 않을 만큼, 입에 풀칠할 돈만 보내줬어. 차비가 없으면 자식 보러 못 올 줄 알았지.”

할머니의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모질게 구셨냐는 내 눈빛에 할머니는 한숨을 내뱉었다.

“네 아비가 마지막 유언으로 네 엄마 좋은 데 시집보내 달라고 부탁했잖아. 그런데 자식 있는 과부한테 누가 오겠니. 애들하고 정 떼게 하려고, 그래서 지 인생 새로 살게 하려고 내가 독하게 굴었지. 한동안 언니라고 부르게 한 것도 다 그 때문이었어.”

할머니는 허탈하게 웃으셨다.


“그런데 저 독한 것이, 낮엔 공부하고 밤엔 잠도 안 자고 일을 해서 기어이 차비를 벌어서 오더라.

지 새끼 보겠다고 그 먼 길을 달려와서

자식 버리고 어떻게 시집을 가느냐고, 나를 붙잡고 허구한 날 울어서 내가 졌다, 졌어. 네 엄마는 참 멍청해. 지 인생 챙길 줄도 모르는 바보 멍청이야.”


아빠가 남긴 ‘영이 시집보내달라’이라는 유언도, 할머니의 ‘모진 악역’도 엄마의 자식에 대한 바위 같은 사랑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 지독한 이별 연습 속에서도 어머니는 단 한순간도 우리의 손을 놓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나의 엄마, 할머니에게-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