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할머니에게-5

아빠 돌아와! -1

by 미뇽작가

내가 자란 곳은 서울의 어느 버스 종점

거기서도 한참 올라가야하는 산 바로 아래 동네였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처럼, 골목길 사람들은 남의 집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알 정도로 살갑게 부대끼며 살았다. 대문은 늘 열려 있었고, 골목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옆집에는 나와 동갑내기인 세미(가명)가 살았다.

그 아이와 우리 남매 사이에는 말로 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우리 둘 다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빠 없는 꼬마가 우리 남매와 그 애뿐이었던 그 골목에서, 우리는 끈끈한 동지애를 나누며 단짝처럼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세미가 상기된 얼굴로 나를 불러냈다.

“우리 아빠 돌아왔대! 너희 아빤 진짜 죽은 거라며? 우리 아빠는 돌아왔어!”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배신감과 당혹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거짓말하지 마. 너희 아빠도 죽었잖아. 우리 아빠처럼 없었잖아!”

“아니래, 미국 갔던 거래! 어제 왔어. 못 믿겠으면 우리 집에 같이 가볼래?”


충격과 불신으로 가득 찬 나는 홀린 듯 그 애의 뒤를 따라갔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광경은 기이할 정도로 낯설었다. 세미의 엄마와 아빠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니, 서로 거의 껴안다시피 밀착해서 붙어있었다.


진짜였다. 아빠가 없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던 세미의 집에 ‘아빠’라는 낯선 존재가 원래 있어야 자리에 돌아온 것처럼 웃고 있었다.

나는 얼떨결에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 요?”

"맞지? 맞지? 우리 아빠 돌아왔지? 아빠, 진짜 미국에서 온 거 맞죠? 미뇽이 아빠는 죽었대요!"

세미는 승리자라도 된 양 목소리를 높였다.


그 잘생긴 아빠는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아니야... 미뇽이 아빠도 미국에 있어. 내가 거기서 직접 봤는걸? 나랑 같이 일했는데, 돈 많이 벌어서 오실 거래."


내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지만 침착한 척 말했다.

"아닌데... 죽었어요. 아파서 죽었다고 했는데..."


그러자 옆에 있던 세미 엄마까지 거들고 나섰다.

"아니야, 곧 돌아오실 거야. 정말이라니까?"


그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환하게 웃었다. '봐봐, 우리 아빠도 돌아왔잖아'라고 말하는 세미의 당당한 태도와 어른들의 확신에 찬 말들에, 나의 의심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단어보다 '미국'이라는 먼 나라가 더 믿기 쉬운 나이였다.


"미뇽아, 하늘에 비행기가 지나가는 걸 보면 반갑게 인사하렴. 그럼 비행기 안에 있는 아빠가 널 보고 더 빨리 돌아오실 거야."

아저씨의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집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마당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있던 동생의 손을 덥석 잡고 소리쳤다.


"석아! 세미 아빠 돌아왔대! 미국에 일하러 갔던 거래! 거기서 우리 아빠도 만났대! 죽은 거 아니래! 우리가 비행기에 인사하면 아빠가 우릴 보고 빨리 돌아올 거래!"


내 말을 듣던 동생의 눈이 놀라서 동그래졌다. 동생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내 손을 끌며 다급하게 말했다.

"누나, 그럼 아빠가 우릴 더 잘 볼 수 있게 더 높은 곳으로 가자. “


ㅡ다음 편은 내일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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