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 안쪽, 산자락을 등지고 앉은 커다란 저택 하나가 있었다. 대문을 열면 탁 트인 넓은 마당이 펼쳐지는 근사한 집이었지만, 사실 그 집 전체가 우리 집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 저택 한구석, 소박하게 자리 잡은 '뒷방'에 세 들어 사는 처지였다.
별도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담한 부엌과 씻는 공간이 나타났고, 거기서 계단 두어 개를 톡톡 올라가면 방 하나가 나타났다. 놀라운 건 이 작은 단칸방 하나에 사는 식구의 수였다. 혈기 왕성한 다섯 삼촌과 엄격하신 할아버지, 인자한 할머니, 그리고 나와 내 동생. 가끔 들르시는 엄마까지 합치면 무려 아홉에서 열 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이 방 한 칸에서 복작복작 정을 나누며 살았다.
군인 장교 출신이신 할아버지 덕분에 우리 집의 시계는 늘 정확했다. 아침 7시면 모두가 눈을 떴고, 저녁 8시면 약속이라도 한 듯 잠자리에 드는 규칙적인 생활이었다.
좁은 방과는 대조적으로 마당은 우리들의 거대한 놀이터이자 활력소였다. 아침이면 삼촌들은 마당 한복판에서 권투 글러브를 끼고 땀을 흘리거나 육중한 아령을 들어 올렸고, 우리는 그 옆에서 신나게 줄넘기를 했다. 마당 한쪽에서는 토끼와 강아지가 뛰어놀고, 할머니가 정성껏 가꾸신 텃밭에는 상추와 쑥갓이 파릇파릇 자라났다. 가을이면 그곳에서 직접 배추를 뽑아 온 가족이 모여 김장을 담그곤 했다.
단칸방 세입자치고는 참으로 당당하고 주인 같은 삶이었다. 사실 그럴 수 있었던 비밀은 이 집주인이 바로 내 친구 '세미‘ 네 집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편안했던 건 아니다. 이사를 올 당시, 세미 어머니는 무척 까다로운 분이셨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남편이 있는 척 연기를 하기도 하셨고, 식구가 너무 많으면 방을 내주지 않을까 봐 우리 가족은 단 4명뿐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계약을 했었다.
그 때문에 나머지 식구들은 들키지 않으려 몰래몰래 담벼락을 타듯 드나들어야 했다. 마당조차 가로지르지 못하고 정해진 좁은 통로로만 다니라는 엄명이 떨어졌던, 눈치 보이는 셋방살이의 시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우리를 보러 왔던 엄마가 집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 왔다. 평소 할머니 껌딱지였던 나와 달리, 고작 네 살이었던 내 남동생은 지독한 '엄마 바라기'였다. 그날따라 동생은 대문 앞에 드러누워 숨이 넘어갈 듯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엄마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대문 밖에서 서성였고, 대문 안쪽에서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애처롭게 울려 퍼졌다. 그런데 한참을 울던 아이가 갑자기 씻은 듯 조용해지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이지? 애가 진정이 된 건가?‘
걱정 반 궁금함 반으로 엄마가 조심스럽게 대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뜻밖의 광경이 펼쳐져 있었는데…….
엄마가 황급히 대문을 열었을 때, 마당에 쓰러져 있는 석이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고작 네 살짜리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제 분에 못 이겨 울다 그만 기절해 버린 것이다.
"석아! 석아! 정신 차려! 얘가 왜 이래!"
엄마의 비명 섞인 외침에 집 안에 있던 세미 엄마가 깜짝 놀라 뛰어나왔다. 차갑고 까다롭기만 하던 집주인아줌마였지만, 쓰러진 아이 앞에서는 영락없는 또 하나의 엄마였다. 세미엄마는 당황한 우리 엄마를 이끌고 석이를 안아 세미네 안채로 데려갔다. 엄마가 눈물범벅이 된 채 아이의 손발을 간절하게 주무르자, 다행히 석이는 깊은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그날, 세미네 안방에서는 긴 이야기가 오갔다. 사실은 얼마 전 남편과 사별했다는 엄마의 아픈 고백,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공부하러 다니느라 친정에 애들을 맡길 수밖에 없었던 사정까지. 알고 보니 세미 엄마도 비슷한 처지에서 홀로 집을 지키고 있었고, 두 젊은 엄마는 서로의 상처를 확인하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날 이후, 우리 집을 둘러싸고 있던 보이지 않는 벽이 허물어졌다.
“ 이제 마당도 마음껏 쓰세요. 편하게 다니셔도 돼요.”
세미 엄마가 먼저 따뜻한 호의를 베풀자, 우리 할머니는 맛깔스러운 새 반찬을 할 때마다 세미네 식탁에 올리셨다. 손재주 좋은 할아버지는 세미네 집구석구석 고장 난 곳을 말없이 수리해 주셨다. 셋방살이 식구와 집주인이 아니라, 어느덧 한 지붕 아래 사는 대가족이 된 것이다.
무엇보다 상징적인 변화는 바로 그 '문'이었다. 원래 세미네 안채와 우리 방 사이에는 서로 통하는 문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그 문은 늘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고, 우리는 그 앞을 커다란 옷장으로 가로막아 벽처럼 쓰고 있었다. 그런데 두 엄마가 친구가 되면서 마침내 그 육중한 옷장이 치워지고 자물쇠가 풀렸다.
밤마다 나는 자는 척 누워 귀를 기울이곤 했다. 그러면 옷장 너머에서 어른들의 정겨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세미네 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화투도 치고, 맛있는 야식도 나눠 먹으며 밤새도록 이어지던 이야기꽃. 그 소리는 어린 내게 세상에서 가장 안심이 되는 자장가였다.
가난하고 비좁은 단칸방이었지만, 산 밑 그 집에서의 하루하루가 축제처럼 즐거웠던 건 서로에게 또 다른 가족이 되어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우리가 마침내 그 집을 떠나 독립하던 날, 세미 엄마는 할머니 손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그 눈물은 단순한 이별의 아쉬움이 아니라, 척박했던 삶을 함께 버텨온 전우이자 가족을 보내는 진심 어린 슬픔이었다.
산 아래 푸르른 정기가 가득했던 그 셋방, 그곳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 따뜻했던 '진짜 집'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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