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지하의 추억

by 미뇽작가

첫아이를 낳고 우리 부부는 할머니 댁 근처 빌라 지하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남편은 갓 취업한 사회 초년생이라 새벽같이 나가 밤늦게 돌아왔고, 이제 돌이 지난 아들과 나는 종일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조용한 일상을 보냈다.


그날도 남편이 새벽같이 출근한 지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적막을 깨고 현관 벨이 울렸다. 설거지를 하던 나는 남편이 물건이라도 두고 갔나 싶어 현관으로 향했다. 그때, 아빠를 기다리던 어린 아들이 반가운 마음에 나보다 먼저 현관 손잡이를 잡으려 했다.


순간, 왠지 모를 서늘한 기운이 엄습했다. 본능적으로 아들을 뒤로 밀치며 '방범 걸쇠'를 툭 채웠다. 문이 한 뼘 정도 열리는 찰나, 문틈으로 쑥 들어온 손을 본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내 남편의 마르고 가는 손이 아니었다. 거칠고 두툼한, 낯선 남자의 손이었다.


"악!"


나는 온 힘을 다해 문을 잡아당겼다. 문틈에 손이 낀 남자가 밖에서 비명을 질렀고, 그 틈에 나는 문을 쾅 닫고 이중 삼중으로 잠근 뒤 112에 신고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곧장 할머니께 전화했다.


"할머니! 누가 문을 열려고 해! 너무 무서워!"

"기다려! 내가 금방 갈게!"


할머니의 짧고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경찰이 5분 만에 도착했지만,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도 범인은 도망갈 기미가 없었다. 경찰관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아저씨! 왜 여기서 주무세요?

여기가 본인 집이에요?"


조심스레 문을 열어보니, 술에 만취한 아저씨 한 명이 계단에 앉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여보, 문 열어!"라고 고함을 지르며 아예 드러눕는 꼴이라니. 경찰이 아무리 일으켜 세우려 해도 요지부동이던 그때, 저 멀리서 할머니가 헐레벌떡 뛰어오셨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상황을 파악한 할머니의 입에서 전설의 '속사포 랩'이 터져 나왔다.


"야 이 18조 새끼야! 네가 뭔데 남의 집 앞에서 이 지랄이야! 조팔개새시조새 같은 놈이 감히 어디라고!!"


천지를 뒤흔드는 할머니의 욕설 세례에 경찰들도 얼어붙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경찰도 못 일으키던 취객이 번쩍 일어나더니, "죄송합니다..."라며 세상 얌전한 양이되어 경찰차에 올라타는 게 아닌가. 경찰관조차 어이없는 표정으로 할머니께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넸다.


상황이 종료된 뒤에도 나는 손이 발발 떨렸다.

할머니는 익숙한 듯 우황청심환을 사 오시더니 본인 입에 하나, 내 입에 하나를 넣어주셨다. 그러고는 문밖에는 소금을 쫙쫙 뿌리고, 현관 신발장 위에는 성경책을 턱 하니 얹으셨다.


할머니는 허공을 향해 호통을 치셨다.


"야, 전 서방! 여기가 미뇽이 집이다! 똑바로 안 지키냐! 네 새끼 시집갔다고 이젠 모른 척이야?"


돌아가신 아빠를 소환해 호통을 치는 할머니의 모습은 그야말로 '토템 신앙+미신+기독교'가 어우러진 대환장 콜라보 비방이었다. 하지만 그 기괴하고도 든든한 뒷모습을 보며 나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제는 그 무시무시한 할머니도 곁에 계시지 않는다. 이제는 이 험한 세상을 나 혼자 다 뚜까 패며 살아야 하지만, 가끔 무서운 일이 생길 때면 그때 그 지하 빌라에서 들리던 할머니의 시원한 욕설이 그리워지곤 한다.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