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 1

by 잊숙

벽이었다. 촘촘한 가시와 거무죽죽한 초록잎이 엉켜 만들어낸 살아 있는 벽. 그 벽들이 끝도 없이 겹겹이 이어져 있었다. 나는 그 벽을 따라 걷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는지는 모른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서 태어난 것처럼. 나는 방향도 이유도 없이 미로 속을 헤매고 있었고. 그런데도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편안했다. 안도감에 가까운 평온함.


발밑엔 거칠고 부서진 흙이 뭉쳐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덩굴 같은 것들이 엉켜 있었다. 죽은 식물도, 살아 있는 것도 아닌 그 덩굴은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본능처럼 발을 올려봤다. 의외로 단단했고, 내 몸을 지탱할 만큼 강하게 얽혀 있었다.


한 걸음. 두 걸음. 덩굴 위로 천천히 올라서자, 벽 너머가 겨우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사람들의 머리통이 보였다. 벽 너머, 멀지 않은 어디쯤. 덩굴을 밟고 선 사람들. 불쑥 솟아오른 머리들이 이따금 벽 위로 언뜻언뜻 드러났다.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 모두가 나를 보지 않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들은 저마다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말없이, 미동도 없이. 끝없는 벽 너머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나는 소리를 질러 그들과 이야기해보려 했다. 하지만 너무 멀었고, 그들에게는 내 목소리가 닿지 않는 듯했다.


덩굴에서 내려온 나는 다시 흙길을 걷기 시작했다. 눈대중으로 어림짐작한 방향으로 걷고 또 걸었다. 얼굴을 타고 흐른 땀이 흙바닥에 떨어졌고, 나는 지친 걸음을 뒤로한 채 또다시 근처의 덩굴을 밟고 올라섰다.


이번엔 그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져 있었다. 내 목소리가 닿을 만큼. 기대감에 그들을 부르려던 순간, 나는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그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거울 앞에 선 사람처럼. 정확하고 기계적인 표정으로. 그 웃음은 익숙함의 탈을 쓴 미지의 것이었다. 사람의 얼굴에 걸린, 사람이 아닌 어떤 표정.


사람이 아니구나.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너무 작아서 공기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그때. 어딘가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벽 너머 가장 왼쪽.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나를 바라보는 하나가 있었다. 아니.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 웃음은 여전히 입술 위에 걸려 있었지만, 눈빛이 변하고 있었다. 카메라 렌즈가 초점을 맞추듯. 비어 있던 눈이 천천히 나로 채워지고 있었다. 짙은 안개 속에서 무언가가 고개를 치켜드는 것처럼. 그것은 나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덩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얼어붙은 채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벽에 가려져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숨이 그제야 터졌다. 나는 꺽꺽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조용하던 공기 중에 소리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풀잎을 헤치고 지나가는 소리. 지면이 미세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찾아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