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카네이션의 계절

by 오늘핌

초등학교 1학년 때 옆자리 짝한테 괴롭힘을 당했다.

나는 유당 알러지가 있어서 배식되는 우유를 먹지 않고 집으로 그대로 가져왔는데,

그게 뭐가 그렇게 눈엣가시였는지 그 남자애는 매일 내 배에 주먹을 내려쳤다.


아프고 억울했지만 공포감이 커서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다.

그래도 하루에 한 번이고 그 외에 다른 폭력은 없어서 다행이다하며 견뎌냈다.

그 일은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다른 동네로 전학가기 전까지 계속 되었다.


처음 겪은 초등학교 생활이 그 지경이라 트라우마로 남아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반 아이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았다. 초등학교 1,2학년때는 거의 혼자 다니다시피 했다.

소풍가는 날에도 혼자 구석에서 도시락을 먹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래도 학년이 점점 올라갈수록 사정이 나아져

가끔 마음에 맞는 반 친구 1명은 사귈 수 있어서 초등학교 시절의 반 정도는

그나마 외롭지 않게 학교를 다녔던 것 같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는 초등학교 3학년때 단짝이다.

그 친구는 나와 달리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런 아이가 쉬는 시간에 혼자 앉아있는 내 자리를 먼저 찾아와 말을 걸어주고

점심시간도 같이 보내줘서 고마웠다.


하루는 5월 8일 어버이날을 하루 앞두고, 그 친구와 학교 마치면 집으로 가서 카네이션을 만들자는

계획을 세웠다. 초등학생이라면 으레 할법한 기특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단짝을 집으로 데려왔더니, 엄마는 싸늘한 표정으로 평일인데 왜 친구를 데리고 왔냐고

차갑게 말했다. 공손하게 인사를 하던 친구의 표정은 굳어졌고 나는 그 상황이 너무나 민망했다.

나는 기죽은 목소리로 '뭐 할게 있어서... 30분만 있을거예요.' 라고 둘러대고 친구를 방으로 데리고 왔다.


엄마는 그닥 바쁘지 않았다.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나, 성경책을 읽고 있었나...

우리의 방문이 엄마의 시간을 방해하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좀 더 크고 나니 엄마의 행동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통은 친구가 놀러왔으면 간식이라도 주면서 '우리 딸이랑 친하게 지내~' 하며 딸 친구의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스몰 토킹이라도 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당연히 엄마는 우리에게 물 한잔도 주지 않았고,

나는 엄마가 언제 큰소리를 치는 등의 폭력성을 드러낼지

몰라 친구에게 카네이션 만드는건 어려울 것 같다며 친구와 함께 조용히 집을 나갔다.


엄마에게 받은 상처도 있지만, 어릴 땐 그래도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더 강해서

카네이션을 선물하며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었다.


'카네이션을 선물하면 엄마가 나를 조금이라도 친절하게 대해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내 마음속에 그런 기대감이 뚝 끊어졌고,

'제발 더이상 나를 망치지 말아주세요.' 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우리 집에서 환대받지 못한 친구는 학교에서 엄마의 이상한 반응에 대해 험담했을 수도 있지만,

워낙 그 나이답지 않게 진중한 면이 있어 그런 행동은 하지 않고 그 후에도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잘 지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친구의 부모님은 맞벌이 가정이라 집에 모두 안계셔서 특별히 뭔갈 챙겨주시거나 그런 환경은 되지 않았지만, 가정주부로 계시는 엄마는 우리의 방문을 달가워 하지 않았으니,

오히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냉장고에 있는 간식을 먹고, 자유롭게 떠들고 지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 친구가 갑작스레 여름방학이 지나고 전학을 가게 되었을 때 매우 슬펐다.

그 이후 연락이 끊겨 지금까지 소식을 모르고 살지만,

그 이름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고 지금 떠올리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몇 없는 유년 시절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고마워 소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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