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청인으로 살면서 여러가지 고충이 있겠지만,
가장 일상적으로 느끼는 불편함 하나를 꼽자면 대화에 못따라 갈때 얼마나 솔직할 수 있는지다.
나는 주로 4명 이상의 자리에서는 대화를 잘 못따라가는 경우가 많아, 모임을 잘 나가지 않는 편이다.
게다가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흐르는 식당에서는 거의 알아듣기 힘들어서 묵묵히 밥만 먹기도 한다.
그래서 친한 지인들과의 모임이 있으면 참가 인원수나 식당의 특징 등을 고려해서 약속을 잡는 편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만난 관계는 아무래도 편하게 요청 하기가 어려운 편인데,
나름 짬밥을 먹다보니 여러가지 유용한 대화 스킬이 생겼다.
주로 상대방의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많이 하고, '아 그렇구나.', '정말요?' 하는 식으로
적극적으로 호응해서 상대가 신나 더 많은 얘기를 하길 바란다.
상대가 수다쟁이라면 당연히 땡큐이다.
초반에 상대의 말이 빠르다거나, 대화를 잘 못따라가도 얘기를 듣다 보면 점차 힌트를 얻게 되고
'아 대강 이런 얘기를 하는구나'하며 파악할 수 있다.
그러고 전체적인 문맥이 파악되면, 나도 한 두번의 에피소드를 풀어놓는 식으로 적당히 대응하며
대화를 마무리 하는 편이다.
어떤 커뮤니티에서 알게된 한 난청인 선배는 내가 자신의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걸 눈치채고,
절대로 다 알아들은척 하지 말라며 매.우. 안좋은 습관이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
그 선배가 왜 그렇게 얘기하는지는 당연히 잘 알고 있고 이해할 수 있다.
나 또한 직장에서는 중요한 일이고 반드시 알아야 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눈치가 보여도
두,세번 물으면서 확인하거나 가능하면 이메일이나 사내 메신저로 남겨달라고 요청하는 편이다.
첫 직장에서 팀장님께서 청력이 좋든 좋지않든,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뜻하지않는 분쟁에 휘말릴 수 있으니
항상 문서로 남겨놓는걸 습관화하라고 조언해주셨기 때문이다.
구두로만 하다보면 의사소통에 미스가 생겼을때 책임 입증도 쉽지 않고,
법률적 문제로 커질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증거를 남겨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러나 타인과의 일상 대화에서는 100% 다 이해하지 못했을 때, 몇번이나 되물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실제로 두,세번 되물었을 때 표정이 급격히 안좋게 변하는 경우도 있고,
이후에는 나를 아예 배제하고 다른 사람의 눈만 보며 대화를 하는 경우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의자를 다른 상대방 쪽으로 방향을 휙 돌려 고쳐 앉는 불쾌한 경험을 몇번 겪다 보니
나도 '적당히 눈치껏 넘어가자'라는 마인드로 바뀐 것 같다.
당연히 그 사람의 입장에선 대화의 흐름이 끊기고, 몇번이나 똑같은 말을 반복해야하니 짜증이 날법도 하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티타임을 가지거나 회의를 할때면,
나를 콕 집어 묻지 않는 이상 대부분 대화에 별로 끼어들지 않고 그냥 알아들은 척을 할 때가 더 많다.
이런 자리는 별 영양가 없는 일상적인 대화이고, 이에 온 신경을 집중해 이해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정신적으로 피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에서 만난 분들은 나를 시크하거나 무감하다, 조용하다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친한 지인들 사이에서는 수다쟁이고 재밌는 편이다.
남편도 결혼 전 우리 부모님이 '우리 딸이 어디가 좋아서 만나니?'라는 질문을 했을 때
'재밌잖아요' 라고 할 정도로 유머에 진심인 편이다.
처음엔 직장에서의 모습과 개인적인 모습이 일치하지 않는 면에
'겉과 속이 다른건가...'하는 기분도 들었지만, 누구나 사회적 가면을 쓴다고 하니
부정적인건 아니구나 하며 받아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