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2년 차, 남편과 크게 다툰 적이 있다.
코로나가 만연하던 시기, 서울 집값이 고공행진하면서 나는 어차피 1주택은 있어야 하니
어느정도 모은 돈과 대출을 받아서 집을 마련하자고 했었다.
그러나 남편은 자기도 동의하지만 지금 매수하는건 너무 고점인 것 같다고 꺼려했다.
그러면서 부모님께서 어느정도 지원해줄때 까지 기다려보자고 했다.
나는 지원을 받을 생각도 없었고, 실제로 지원을 해주실지도 의문이 들고,
구체적인 금액과 시기 등의 사전 약속없이 마냥 무기한 기다려야 하는 무력함이 싫었다.
우리는 한동안 의견 불일치로 감정이 상해 있었고, 한 집에 있어도 서로를 무시하며 지냈다.
한창 다투고 있을 때, 남편의 입에서 쌩뚱 맞게 '나는 뭐 너랑 사는게 쉬운거 같냐?',
'나도 고충이 많아.' 라는 말이 흘러 나왔다.
애초에 갈등의 주제가 같이 사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아니였는데,
어쨋든 남편이 나의 난청이 불편하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도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게 많았던 모양인지 이참에 그동안 속으로 삭혔던 얘기를
본격적으로 꺼내려는 모양이었다.
냉장고 문을 꽉 닫지 않다거나, 정수기 레버를 끝까지 잠구지 않아서 물이 바닥에 흥건히 흘러내린다거나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냉장고 문이 안닫히면 경고음이 난다고 하고, 정수기 물이 뚝뚝 흘러 내리는 소리로
보통은 바로 알아차리겠지만, 나는 소리로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청력이 불완전하더라도 충분히 눈으로 확인하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스스로도 부주의하고 창피하다고 느껴 항상 눈으로 다시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또한 평소 집에 있으면 그동안 밖에서 보청기를 끼며 답답해진 귓 속을 편하게 하려고
보청기를 빼고 있는 편인데,
이때 남편과 대화하기 어려워 두번 이상 묻게 되고, 내 목소리가 커져서 남편 귀에는 거슬렸던 모양이다.
대화 중 남편은 답답하니 보청기 끼고 오라고 한적도 있다.
나는 집에서 만큼은 편히 있고 싶었지만, 남편은 대화가 안되는 상태니 답답했을 것이다.
또한 남편이 요리 중이거나 청소 중일 때 먼가 요청하거나 하면 한번에 알아차리지 못하니
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짜증나겠다 싶어 지금은 대화가 길어지면 내가 먼저 '잠시만 끼고 올게~'
하며 배려하는 편이다.
그러나 갑자기 뜬끔없는 주제 전환에 기분이 상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비장애인이 장애인과 사는 것에 고충이 있다고 말하는 남편의 발언 때문인지, 나도 참지 못하고
'고충? 나도 너랑 같이 사는 고충 있어. 왜, 나는 당연히 없는 거 같애?'라고 매섭게 쏘았다.
뒤이어 '비장애인끼리 살면 고충 없는 줄 아냐?' 라고 차갑게 말하니 남편의 당황한 표정이 뚜렷했다.
당황해서 그랬는지 남편은 또 갑자기 여행을 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언급했다.
예전에 남편과 해외여행을 가며 투어를 했었는데,
일행 중 어떤 한국인이 '저 사람은 아까 한 말을 왜 또 물어봐.' 라고 했던 것을 남편이 들었던 것이다.
남편은 '사람들한테 제 여자친구가 청력이 좋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어.'라고 말했다.
잠시 '그래서 어쩌란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준에는 별거 아닌 흔히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뒤이어 남편은 또 친구에게 들은 얘기를 언급했다.
우연히 남편의 회계사 친구가 내가 다니는 회사에 외부감사인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친구가 남편에게 '혹시 아내분 외국에서 자랐니?' 라고 했다고 했다.
이런 반응도 내겐 지금까지 자라면서 그런 말을 수도없이 들었던 터라 그러려니 하지만,
남편은 이런 당혹감이 처음일 것이다.
그래서 요지는 아마 '너로 인해서 내가 안겪어도 될 뭇사람들의 시선이나 오해가 불편하다. '
라는 것 같은데, 내겐 별일도 아니지만 자기 딴에는 나름 고충인가 보다.
남편은 휴일에도 집 앞 편의점이나 세탁소에 갈때도 항상 머리를 감고
츄리닝보다는 적어도 청바지를 입어야 하는데 내가 볼땐 굉장히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편이다.
남편의 말에 기가 찼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그렇게 신경 쓰이면 어떻게 나랑 결혼할 생각을 했냐'라고 하며 내가 할 수 없는 부분까지 바라지 말라고 대꾸했다.
나는 살아오면서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이를 적당히 치워내거나 선을 넘은 사람에게 할 말은 해야한다고 배웠다며 건청인의 기준으로 정상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건 내가 어떻게 고칠수가없는 부분이니 잘생각해보라고 하며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에게는 잘 보라는 말 따위는 잘 하지 않으면서,
난청인에게는 잘 좀 들으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고
나한테 2차가해를 하는 사람이 내가 가장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게 믿을 수 없다고 감정을 쏟아 냈다.
우리 사이에 한번쯤 다뤄야할 주제에 대해 이렇게 쏟아내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한국인 평균보다 예민한 남편과 평균보다 무감한 나 사이에 오랜 세월이 쌓이고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점점 쌓이다 보면 균형을 찾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