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했던 그 겨울

by 오늘핌

IMF를 느끼지 못한채 자랐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어려운 경제 환경에서도 아버지가 직장에 살아남은 덕분이지만,

따뜻했던 집안의 분위기도 한 몫 했다.


3,4살때 쯤이라 당시 기억 자체는 별로 남아있지 않지만, 혹독한 IMF의 겨울 앞에서 우리 가족은 10평대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나름 화목하게 지냈다.


그 집은 방이 따로 없고, 부엌과 거실 사이의 중문으로 두 공간이 분리되는 사실상 원룸 형태였다.

다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거실에 TV를 좀 보다가,

잘 시간이 되면 거실 한 구석에 있는 이불장에서 베개와 이불을 꺼내 다같이 한 이불을 덮으며 잤다.

나는 그 집에 있는 동안 따뜻한 가족의 온기를 느끼며 모난 구석 없이 무럭무럭 자랐다.


엄마는 살림을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셨다.

큰 돈을 들이지 않고 식탁 다리를 잘라 낮은 식탁으로 바꾸거나, 오래된 가구를 새로운 색으로 페인트칠을 해 새로운 느낌을 낸다거나, 카펫이나 러그를 바꾸거나, 작은 장식품을 직접 만들어 가볍게 셀프 인테리어를 하며 집을 가꾸며 집이 지겹다는 인상이 들 틈도 주지 않은채 집의 분위기를 한번씩 바꾸었다.


이처럼 엄마는 소소한 것을 꾸미고 가꿔나가며 행복을 느꼈다.

화분 몇 개를 갖다 놓으면 식물은 쭉쭉 자라 열매와 꽃을 피웠다.

작은 물고기를 키우면 그 물고기들이 번식하고 그 새끼들이 또 번식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정도로 생명을 피워냈다.


우리 집은 비록 밖에서 힘들고 모진 일을 겪어 몸과 마음이 엉망진창이었어도, 집에 돌아오면 위로가 되는 공간이었다. 우리 가족은 어느때 보다도 생기가 넘쳤고, 건강했고, 밝았다.


초등학생 1학년 여름방학 때, 부모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환경과 더 넓은 공간을 주고 싶어서 그동안 알뜰히 모은 돈에 조금 대출을 받아 다른 동네로 이사했다. 이사를 앞두고 다같이 가구점에 가서 오빠와 내 방에 놓을 책상과 의자, 침대와 책장, 옷장을 고르며 행복해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도 행복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아끼고 저축해서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여 아이들에게 각자의 공간을 줄 수 있음에 감격하는 엄마의 모습을 느꼈다. 나도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새로운 초등학교과 낯선 동네에 잘 적응해서 좋은 친구를 사귀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지'하며 속으로 다짐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사한 집에서 엄마에게 받은 상처와 무서운 기억들 때문인지, 예전 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좋은 새 집에서 지내고 있음에도 종종 좁고 낡은 옛날 집에서 다정다감 했던 가족의 온기를 그리워했다.


새 집으로 이사하면서 우리 가족의 분위기가 달라진데에는,

어린 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집안에 어떤 큰 위기가 있어 매섭게 변한 것이라 믿고 싶다.

어린 아이에게는 말하지 못할 어른만의 복잡하고 어려운 사정이 있어, 견디고 견디다가 어린 자녀에게 그 스트레스가 순간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특별히 어렵고 궁한 사유 없이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그런가 보다'하고 이해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

그 모든 상처와 학대에는 아무 이유 없었다고 도저히 믿고 싶지 않다.


당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엄마의 감정 변화가 커서 그 기분을 맞추기 어려웠던 점이다.

차라리 일관적으로 항상 화를 내거나 차가운 모습이었다면,

나도 그렇게 엄마의 기분을 헷갈려하며 마음을 졸이고 눈치를 보진 0않았을 것이다.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기대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씩 예전처럼 따뜻한 모습과 옛날의 다정다감했던 기억들을 추억하며,

나도 모르게 엄마의 눈치를 보게 되고 기어코 기대를 또 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모를 가짜 위기를 만들어 나를 위로하듯 엄마를 위로하고 싶다.

꾸며낸 이야기라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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