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동안 어두웠던 기억을 다시 들춰내서 그런지 정신이 피폐해지는 기분이다.
기분전환 겸 엄마의 또 다른 모습을 소개하려고 한다.
내가 청각장애를 판정받게 된 시기는 아마 한글을 아직 떼지 못한 나이인 4~5살 쯤이다.
당시 살던 아파트는 2층이었는데, 놀이터와 가까워 베란다에서 놀이터 전체를 관망할 수 있었다.
하루는 엄마가 베란다에서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나를 불렀는데, 내가 좀처럼 반응이 없자
의아하게 여겨 대학병원에 검진을 받았더니 청각장애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아직 우리말을 배우지도 못한 단계였으니, 엄마도 언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그러던 중 유치원 입학을 앞둔 해에 본격적으로 한글 공부를 위해
큼지막한 한글 자음모음 표와 양초와 라이터를 구비하셨다.
엄마에게 매일 한시간 씩 꾸준히 한글 수업을 받았는데,
엄마는 항상 한 쪽엔 사랑의 매를, 내 눈 앞엔 촛불을 켠 양초를 하나 놔두셨다.
벌건 대낮에 조그맣게 이글거리는 촛불이 무서웠는지 아니면 그 옆에 놓인 회초리가 무서웠는지는
모르겠으나, 무서운 분위기가 조성되어 항상 수업시간엔 두려운 마음이 컸다.
엄마는 수업시간에 항상 엄격한 표정으로 가,나,다로 시작하는 자음과
아,야,어,여로 시작하는 모음을 따라하게 했다.
그러면서 촛불이 꺼져야 정확하게 발음한 것이라고 하셨다.
당시에는 그 의도를 몰랐지만 성인이 된 후 하필 촛불로 교육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청각장애인은 대체로 발음이 어눌한 편이다. 자기 목소리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어서 그런 편인거 같은데,
엄마는 어눌한 발음을 교정하기 위해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 같다.
촛불이 꺼지면 힘있고 강한 발음으로 알아들을 수 있게 잘 말한 것이고,
촛불이 꺼지지 않으면 힘이 부족해 어눌하다는 것을 불꽃으로 보여준 것이다.
어떻게 저런 방법으로 가르칠 생각을 하셨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언어발달 센터에도 다닌적 없고, 병원에서 언어교육에 대해 조언을 해주신걸까?
아니면 특수교육 책에서 보셨을까?
내 기억이나 집의 책장엔 언어교육이나 특수교육과 관련된 책은 전혀 없었기 떄문에
교육에 그다지 관심없는 엄마가 어떻게 이 방식을 알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만약 특수교육 대상자를 위한 학습법이 따로 있다는 걸 알았음에도
언어발달 센터나 전문 교육 센터에 다닐 생각은 왜 안하고 직접 가르쳤는지 의아하다.
결국 비용이 문제였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그 방식이 나에게 최고의 교육 방식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모국어를 배워 적어도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지는 남들과 큰 차이없이,
아니 적어도 남들이 듣기에 크게 이상하다는 인식없이 '발화'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공부 욕심이 생긴 나는 부모님이 나에게 조금 더 지원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솔직히 대기업에 다니는 아빠가 있어 그렇게 경제적으로 힘든 환경은 아니였다.
내가 초등학생 고학년이 되면서 엄마는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어서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
물론 나와 오빠가 커가는 만큼 생활비도 늘어났겠지만
모든 것에 돈,돈 거릴 정도로 여유가 없는 집은 객관적으로 절대 아니었다.
부모님은 항상 어렸을때부터 우리 남매에게 큰 지원을 못해주지만
본인들의 노후는 알아서 준비할테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자식 교육에 몰빵하다가 자식이 잘 되지 못하고, 부모도 늙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빠지는
가정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건 아니었으나,
교육에는 시기가 있고 그 시기를 놓치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멀리 돌고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런 양육 방식은 조금 서운했다.
사춘기때는 조금 더 삐딱해져, 우리 남매가 장애인이라서, 전문직이나 대기업 직원 등의
고소득 연봉을 받지 못할 것이 뻔하니 애초에 지원은 별로 하지 않고,
본인들 살 길부터 궁리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그런 불손한 마음이 내 정신을 갉아먹고,
부모님을 원망하기 직전에 내 마음 한 켠 그 촛불 하나가 떠오르면서 부모님에 대한 믿음과
가족에 대한 신뢰를 밝혀주었다.
5살, 1년 동안 양초를 펄펄 태워가며 나를 무섭게도 살게도 했던 촛불은
힘들었던 학창시절 나를 지탱해준 유일한 빛이었다.